2017년 11월 4일의 글
요양원에 모셨던 외할머니가 목요일 오전 5시께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왔고, 오늘 발인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다.
어머니에게 꽤 많은 유전자 지분을 상속해주신 외할머니는 매우 가난하셨고, 때문에 젊은 날 일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셨다고 하다. '어떤 일'을 하셨다고 명명할 수 없는, 그저 '일손을 거드는' 수많은 일들. 그래서 외할머니는 등이 굽어졌고, 나이가 많이 드신 후에는 그 등 때문에 많은 불편을 겪으셨다.
몸이 불편한 일상과 점점 쇠하는 기운. 때문에 외할머니는 식사를 거르시는 일이 많았고, 간단히 먹을 수 있으면서도 씹을 필요가 적은 만두와 초코파이. 그 두 가지를 주식처럼 드셨다고 한다. 그걸로 기운을 차리시기에는 부족했기에 외할머니의 몸은 점점 약해져 갔다.
작년 초 오랜만에 찾아뵌 외할머니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이제 죽어도 되겠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 외할머니는 여름께 요양원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한 달 전쯤 찾아뵌 외할머니는 깡마른 몸에 잦아들지 않는 두통으로 미간에 주름이 가시지 않는 모습으로 누워계셨다. 그래도 만두는 맛있으셨는지, 작은 크기의 냉동만두는 얼마 남지 않은 치아로 연신 씹어 삼키시던 장면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이후부터 그 만두를 먹을 때면 외할머니가 떠오른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목격한 처음 광경은 담담해 보이는 가족들의 얼굴이었다. 급속도로 쇠약해지셨지만 그 속도로 보았을 때 얼마 안 가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오갔었기에, 새벽에 날아든 부고가 크나큰 슬픔으로 다가오진 않은 듯하다. 분향소에서 오가는 대화는 외할머니를 살뜰히 챙기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너무 괴로워하지 않고 편안하게 가셨다는 안도감을 머금고 있었다.
'염'과 '입관' 때 외할머니를 처음 뵈었다. 손의 감촉은 매우 차가웠다. 표정은 편안해 보이셨다. 외할머니는 옷을 입고 곱게 화장까지 하신 후, 가족들과의 마지막 대화를 마치고 관에 들어가셨다. 생전 안 하셨다는 입술까지 바르신 모습, 그리고 지난 세월 동안 굽어 있던 등이 올곧게 펴진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시신은 화장 후 외할아버지가 잠들어계시는 납골당에 함께 모셨다. 마지막 제사를 했던 그 장소는 작년 초 외할머니가 '그래도 얼굴 봤으니까 이제 죽어도 되겠다'라고 말씀하신 그 장소 바로 앞이었다. 그렇게 외할머니는 하늘로 가셨다.
난 소중한 사람을 하늘로 떠나보내는 시간 뒤에는 남아있는 사람들의 웃음과 행복이 찾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례식 내내 우리의 마스코트가 되어주었던 4살 배기 천방지축 조카는 분향소에 웃음꽃을 피웠다. 나와 엄마 손바닥에 '엄마 하트, 애기 하트, 언니 하트'도 그려주었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