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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준 Dec 09. 2018

기억을 머금는 글의 '향기'

2018년 9월 23일의 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일 중 하나는 글을 읽고, 쓰고, 다듬는 일이다. 한 사람의 생각과 지식을 온전히 정제하는 일. 그것이 '일'이 되면 괴로운 부분도 있지만, 그 본질은 다른 이나 나 자신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인지라 참 재미가 있다. 몰랐던 것도 알게 되고, 공감하기도 하고, 글쓴이의 '맛'을 느낄 수도 있고. 

 

 그 '맛'이라 함은 글쓴이의 '향기'와 다름없다. 글에 담긴 향기를 좇다 보면 글쓴이의 자아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 기대가 있다. 비록 그것이 글쓴이의 모든 것을 담고 있지는 않더라도. '향기'란 본디 모든 것을 담지는 못하지 않으니까. 


 그중에서도 특별히 좋아하는 향기는 '기억'이다. 마치 할머니의 담요가 풍기는 냄새를 맡았을 때 할머니와 함께한 순간 한토막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글도 그렇다. 코 끝이 시려올 때 끼적거렸던 글을 다시 들춰보면 서늘하고도 따뜻한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어제가 딱 그랬다.


 홍대를 거닐었던 토요일, 바람이 솔솔 불던 테라스에서, 나지막이 '벌써 가을'이라고 읊조렸다. 뻔한 표현이지만 시간은 참 빠르다. 다만 그것을 느끼는 순간순간의 쓸쓸함은 가벼워지지 않는 듯하다. 그래도 가을이 머금은  추억들이 있다. 저녁에는 꽤 오랫동안 산책도 했고. 덕분에 온기도 느꼈다. 문득 그 순간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짤막한 글에 어제의 향기를 담아 두기로 했다.


 전을 부치고, 밤을 까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글을 다듬고 있는 밤. 어제를 돌아보니 머릿속에 희뿌연 것이 가시질 않는다. 어제는커녕 오늘 하루라도 오롯이 기억할 수 있을까. 오늘을 기억하지 못하는 내일은 달갑지 않은데. 오늘이 사그라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더듬더듬 기억을 더듬어가며, 고르게 늘어진 단어들을 골라가며 짙은 향기를 맡았던 순간들을 두 페이지에 눌러 담았다. 어제와 오늘의 기억이 진하게 배었으면. 다시금 글을 읽었을 때 그 순간의 기억이 오소소 쏟아졌으면.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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