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도에서 만난
축구 덕후 할아버지

축구로 욕먹다 농구로 대동단결한 이야기

by 이상준

스페인 마드리드 근교인 톨레도에 방문했을 때였다. 작은 도시다 보니 예정보다 시간이 많이 남았고, 골목 구석구석을 훑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강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벽돌들을 만져보기도 하고.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 건물들이 둘러싼 좁은 길 덕에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했다.


큰길로 나와보니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을 때, 길가에 위치한 바르(Bar)에서 한 목소리가 들렸다. 스페인에서 자주 듣기 힘든 영어로.


"어디서 왔어?"


고개를 돌려보니 한 할아버지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답했다.


"그럼 축구를 좋아하나 보군. 레알 마드리드 경기를 보러 왔겠네. 어떤 선수를 제일 좋아해? 당연히 호날두겠지? 유니폼은 샀어? 마드리드에 내가 아는 가게가 있는데 거기가 싸"


질문을 빙자한 답정너 할아부지. 아이처럼 초롱초롱한 눈으로 연신 질문을 던지시는 모습에 따뜻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저 여행을 왔을 뿐이며, 축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축구에 대한 호불호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았을 텐데.


"세상에, 스페인에 왔는데 어떻게 축구를 안 좋아할 수가 있지? 도대체 왜 스페인, 그것도 마드리드에 온 거야? 레알 마드리드는 세계적인 축구팀이라고. 호날두는 세계 최고의 선수고. 그걸 모르는 거야?"


할아버지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아차 싶었다. 얼른 사실 NBA를 정말 좋아하고, LA Lakers의 오랜 팬이라고, 특히 스페인의 대표적인 농구선수이자 LA Lakers에서 우승을 일궈냈던 '파우 가솔'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할아버지 얼굴에 서려있던 노기가 눈 녹듯 사라졌다. 이윽고 옅은 미소까지.


"더우니까 일단 들어와. 농구 이야기나 하지"


바르로 들어가서 앉자 할아버지는 샹그리아 한잔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짧은 영어로 이어진 폭풍 수다. 파우 가솔이 올타임 몇 위인지, 팀 동료이자 에이스였던 코비 브라이언트와 얼마나 잘 맞았는지, 유기적인 팀 전략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등.


타파스 다섯 꼬치와, 샹그리아 한 잔, 맥주 한 병으로 마무리된, 꽤나 유쾌했던 기억 한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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