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거미는 손바닥보다 클 수 있지
거미가 또 나타났다. 그것도 손바닥보다 큰.
호주에서는 아주 흔한 광경이다. 이들은 다리 두께도 두껍고 빠르고 점프까지 할 줄 아는, 살아남기에 유리한 조건들을 두루 갖춘 인재상이다.
이런 친구들은 모기처럼 탁 치기도, 뭘 어떻게 하기도 참 난감하다.
호주에 온 첫 해에는 놀라 약으로 뿌려 처리하고자 했는데, 힘없이 죽어가고 있는 큰 거미를 보며 남자 친구가 기겁하며 물었다.
‘Why do you kill it?’
왜? 그러게. 왜지?
이 문장은 한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람들은 집에 벌레가 나타나면 죽인다. 왜? 글쎄, 징그러우니까? 개체 수가 늘어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거미가 나한테 무슨 해를 끼쳤지?
그냥 나타난 게 죄였다. 그 존재 자체가 위협을 주었다. 그런데 거미에게도 인간의 존재는 마찬가지다. 오히려 인간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생태계에서 독재자이자 군주다. 물리적 힘을 가볍게 넘어서서 종의 씨앗을 말려버릴 수도 있다.
아. 역시. 나는 인간이었구나. 또 지극히 인간 중심적 사고를 했구나. 오만하다.
사실 거미는 아주 무해한 동물이다. 생태계에서 중요한 임무을 맡고 있는 것은 물론, 오히려 해충을 잡아먹는 유익한 존재다. 인간은 강약약강을 비판하면서 우리보다 약한 존재들은 너무 손쉽게 해한다. 그래야 마땅하다 혹은 그래도 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가장 우월한 종이라고 생각한다.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라고 흔히들 하지 않는가. 이 말은 사실일까. 우리가 맨 손으로 사자나 곰, 호랑이와 싸워 이길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면 답은 간단히 나온다. 자연에서 늑대 한 마리와 마주친다 해도 벌벌 떨 테다.
아. 비겁하고 또 인간 중심적이다. 내 친구의 말을 빌려 모든 것은 인간의 자의식 과잉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우리가 다른 종들을, 지구를 개척하고 통제하고 다룰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물론 우리가 한 지붕 아래 이불 덮고 함께 살 수는 없겠지. 하지만 너는 그저 지나가던 길일 텐데, 해하지 않고 다른 길로 안내해줄게.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오래오래 자연에서 정해준 너의 수명을 다 채워 살았으면 좋겠어.
호주 데일리 라이프 & 비거니즘 콘텐츠 업로드: @genevieve_jiw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