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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evieve Nov 12. 2022

3년 만의 한국 첫 입국, 전날 코로나에 걸렸다.(하)

외국인 남자 친구의 배식은 화만 불렀다

https://brunch.co.kr/@genevieve/51


3년 만의 첫 한국 입국 전날 퇴근길, 코로나 양성 문자를 받았다.

주말부터 며칠 동안 이유모를 두통이 있었지만 열이나 기침도 없었고, PCR 검사 바로 전날 밤에 안티젠 테스트도 음성이 나와 코로나를 의심할 겨를이 없었다.

PCR 검사 당일 날 아침 5시쯤이었나, 온몸이 저려 잠에서 깨기는 했다. 당시 입국심사가 아주 까다로웠어서 거절당할까 봐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태였기 때문에 스트레스 때문인 줄 알았다. 그게 코로나 때문에 몸이 아파서였구나.


우선 회사에 알렸고, 숙소 예약을 한 친구들과 엄마 차례로 연락을 했다.  

회사에서는 일이나 휴가 날짜는 걱정 말라며 일주일 간 집에서 푹 쉬고 날짜만 조정해서 나중에 알려달라고 했다. 친구들도 숙소를 취소했고 진심 어린 걱정과 위로를 해주었다.

가장 위로가 되었던 말. 친구들에게 항공권 날짜 변경 가격이 한화 50만원 정도라고 칭얼댔었다. 나는 기회비용에 견주었을 때 위로가 크게 되더라.

문제는 엄마였다. 3년 넘게 보지 못해서 많이 기대했을 테고, 걱정을 사서 하는 사람이라 큰 근심을 안겨줄 것 같았다.


‘엄마 나 내일 한국 못 가게 됐어.. 나 코로나래. 우선 호텔에 전화해서 날짜 변경되냐고 물어봐야 할 것 같아.’


다행히 호텔 측에서는 추가 비용 없이 흔쾌히 날짜를 미뤄주었고 나는 4주 후로 일정을 변경했다. 엄마도 속은 상했겠지만 전화 상으로는 침착한 모습을 보여줘서 마음이 조금 놓였다.


집으로 가는 길에 약국에 들렀다. 들어가지 않고 약사를 밖에서 불렀고, 방금 코로나에 걸렸다는 문자를 방금 받았으니 약을 달라고 했다. 특별한 약은 아니었고, 지긋지긋한 파나돌과 비슷한 약을 받았다. 나는 최대한 멀찍이 서서 팔을 길게 뻗었고 카드 단말기에 결제를 했다.

바이러스 덩어리가 되었음을 실감하며 집에 가 샤워를 했다. 그렇게 방으로 그대로 들어가 일주일 간 격리를 시작했다.




7일 동안 그냥 내내 침대와 하나가 되어있었는데, 3-4일 차에 가장 크게 앓았다. 숨을 쉴 때 앓는 소리를 내지 않고는 그냥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아파서 눈물이 났던 건 아주 어릴 적 이후로 처음이었다. 화이자 3차 부스터까지 착실하게 맞고 매일매일 마스크 착용도 했는데 대체 어디서 바이러스가 들어온 걸까.


병원에 갈 수 없으니 전화로 진찰을 받았다. 의사는 코로나 약은 따로 없다며 파나돌의 자매품인 뉴로펜을 처방해 주었다.

호주에서는 정말 파나돌과 뉴로펜에서 벗어날 수 없는건가

플러스 라니 딱 봐도 강한 약인데, 몸이 너무 아프니 아침을 먹고 복용하는 것을 참지 못해 일어나자마자 빈 속에 여러 번 복용을 했다. 그리고 며칠간 위경련을 겪어야 했다. 약을 빈 속에 복용하지 말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 머슈룸버거까지 남자친구가 방으로 넣어준 배식

심지어 이 기 간동안 문화 차이 때문에 크게 싸웠다.

표면적으로는 음식 때문이었지만 한국 사람이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니 근본적으로는 문화 차이이다.

나는 몸도 아프겠다 오래간만에 쌀을 먹고 싶었고 죽을 기대 했다. 하지만 잊고 있었다. 내 남자 친구는 호주 사람이고 주식이 밀인지라 밥 만드는 법도 모른다는 걸. 저 점심 배식 다음으로는 저녁에 비건 버거를 만들어 주었다.

돌이켜보니 몸이 아프니까 예민하고 그냥 다 짜증이 났던 것 같다. 사실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일이었는데 환자한테 버거를 만들어 주냐고 구박을 했다.


회사 컴퓨터에 원격을 걸어서 전화로 업무 지시를 했다. 거래처들에서도 연락이 많이 와 있었지만 일부만 확인했다.

당시 회사에서 나의 팀에 신입이 있었는데, 인수인계를 해 주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어 몸이 덜 아픈 날 잠깐 재택근무도 했다.




자가격리를 하는 7일 내내 정말 침대에서 보냈다. 약에 취해 내내 자다가 4일 차쯤이었나, 기운을 조금 차렸을 때에는 유튜브와 뜨개질, 코바늘만 하며 지냈다. 기침과 콧물, 몸살로 그렇게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도 없고 머리를 쓰는 일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건강이 최고라는 건 왜 항상 몸이 아파야만 느끼는 걸까.


그중 다행이었던 , 코로나에 걸린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은 양성이 나왔던 검사 결과지와 현재 완치가 되었다는 의사 소견서를 가져가면 입국할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한국에 가서 아주 마음 편하게 돌아다니고 외식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그냥 조금만 일찍 찾아와 주지 그랬니.


앞으로도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계속될 것이고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이로부터 피할 방법이 거의 없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디작은 바이러스에 일상이 무너져 내리고, 살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을 보자니 인간은 정말 나약한 존재다. 면역력에 좋다는 따뜻한 티 한 잔이 몸을 녹이고 창 밖에 주황빛 해가 서서히 사라지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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