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석궁 • 솔거미술관 • 엘로우
무려 육개월만에 반려친구 주영이 만나는 날
손님맞이 하려면 꽃부터 사야지 -
요석궁 1779 @교촌마을
경주에는 '파인다이닝' 이라 할 만한 식당이 많지 않은데,
최부잣집 스토리와 한식 파인다이닝이 접목된 곳이라 기대하며 요석궁의 자미코스를 예약했다.
구불구불 소나무가 중심을 잡아주고 계절꽃이 잘 어우러지는 정원.
한국 정원의 원형을 그대로 가져온 건 아니고
일본식 정원과 접목된 퓨전 스타일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다른 세상에 온 느낌.
기러기인지 원앙인지 귀여운 받침대에 묵직한 놋쇠 수저가 누워 있다.
바깥은 습하고 더운 날씨
안은 시원해서 문을 빼꼼 열어 놓고 정원 구경하기 좋다.
한여름에 에어컨 틀고 겨울 이불 덮는 기분이랄까 ㅎㅎ
수랏간 상궁 차림새를 하신 분이 내 온 에피타이저.
단새우와 성게알을 감태에 싸서 먹고
최부잣집 고추장 된장으로 색과 맛을 입힌 황태포와 짭짤한 김부각을 안주삼아
체리향 나는 술을 짠 - 한 뒤
콩국수 국물로 입가심.이히 기분 좋다.
이 이후에 음식 사진은 하나도 없는데
주영이와 반년동안 묵혀둔 이야기를 다다다 꺼내느라 사진찍을 틈이 없었
이 얘기를 하면 나한테 실망하려나?
이 이야기는 너무 내 밑바닥인가?
고민 할 것도 없이 아무렇게나 꺼내 놓아도 먼지 탁탁 털고 살살 다독이며 괜찮다고 해 주는 내 친구.
후식 나올때 쯤 부모님 이야기를 하면서 둘 다 눈물을 찔끔 흘렸던 것 같기도.
영아, 얼굴에 뾰루지가 10개가 나서 꼴보기가 싫으다.
코옆에 화장 뜬거봐라 못났다야. 오늘은 사진 안찍어줘도 돼 -
했더니 알았셔 - 하면서 얼굴 안나오는 갬성샷 위주로 찍어주네 고맙게
뒤로는 낮은 담과 대나무가, 바닥에는 이끼가 카펫처럼 깔린 곳에 귀여운 석상과 수반이 있는 장면.
나는 이 공간을 좋아했고,
조금은 하찮은 불상과 눈향나무와 계절꽃이 피어 있는 이 곳은 주영이가 참 좋아했다.
솔거미술관 @경주엑스포대공원
주영이가 경주에 오면
배도 마음도 꽉꽉 채워주고 싶어서 코스를 고민한다.
제자들한테 어떻게 새롭게 가르칠지 고민하는 열쩡 선생님이라 영감을 주고 싶은 마음이랄까.
우주대스타 RM이 경주에 와서 들렀다는 미술관이 있다니, 바로 여기닷!
경주엑스포대공원 입구에서 어른 걸음으로 10분여를 걸어야 나오는 솔거미술관.
땀이 뻘뻘 나지만 오케이 괜찮아 이 정도면 갈만 해 좋아 좋아 하면서 언덕길을 올랐다.
솔거미술관 하면 떠오르는 박대성 화백.
작가 소개에서 '5살때 부모님과 한쪽 팔을 잃었다' 라는 구절에 마음이 아려 오면서도 한편 궁금해진다.
이런 배경을 가진 사람은 그의 세계를 어떻게 표현할까.
처음 만난 작품은 [인드라망]
압도되는 크기의 그림.
동그란 액자 속에는 석굴암 본존불이 있고 주변은 삐죽삐죽 솟은 석산이 둘러싸고 있다.
엄청난 힘이 느껴지면서도 명상에 잠겨 있는 부처님이 중심을 잡고 있어서 한없이 고요하다.
그림의 소재와 도구는 지극히 한국적인데 표현 방법과 구성은 또 한국화가 아닌 것 같다.
낯설다.
이런 그림은 처음이다.
[청산백운]
이 그림은 뭐랄까, 먹으로 그린 추상화다.
선 몇 개로 표현한 산과 흩뿌리듯 표현한 구름.
방울방울 떨어지는 파란 공과 세모 네모 동그라미 프레임 안에 적어 놓은 글자까지.
박대성 화백에 대한 무지를 반성하며 나무위키에서 검색해보니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직접 그림 의뢰를 해서 집무실에 걸어 놓을 정도로 존경했다고 한다.
이건희 컬렉션에 있는 유일한 생존 작가가 박대성 화백이라고.
박대성 화백, 이응노 화백의 그림을 연달아 감상하며 만난 솔거미술관의 포토스팟.
창 밖으로 넓-은 연못과 곧 피려고 한참 준비중인 연꽃이 평화롭다.
경주 느낌 13%쯤 가미된 모네의 물가랄까.
마침 사람도 없어서 혼자서 또 둘이서 인생 사진을 여러장 남길 수 있었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같이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그지?
[천년배산]
우리엄마 수학여행때도
나와 주영이가 초등학교 체험학습때도 단체사진 찍던 바로 그 곳,
담담한 불국사 앞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소나무가 유난히 인상적인 그림을 보면서
"그래, 다음에는 불국사 가자. 가을에 가면 좋잖아"
하며 다음 만남을 구상한다.
엘로우카페 @보문호수 근처
노키즈존이라 삥이데리고 가기 어려웠던 엘로우카페.
오늘 가야지.
그나저나 나를 이런 분위기로 찍어주는 사람은 주영이밖에 없다니께
창밖에는 호수와 벚나무
커피 한 잔, 차 한 잔 시켜 놓고 보문 호수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올해 상반기 결산과 하반기 목표를 공유한다.
상반기에 이룬건 딱히 없는데,
아! 운동해서 근육이 0.5kg 늘었어.
하반기에도 운동 쭉 열심히 해서 득근하는게 목표야.
그리고 맞다. 주부로서 역할을 잘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
집 깨끗하게 청소하고, 저녁 준비도 하고, 삥이 읽을 책도 세팅해 놓고
훈하고 삥이가 편하게 생활 할수 있게 해 주는거.
내가 이런말 하니까 진짜 웃기지?
돈도 못 벌고 집안일도 못하는 주부라고 신세한탄만 했거든.
지금 내 위치에서 잘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어 낄낄
상반기에 학교에서 학년부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큰 행사도 여러번 치르고
부모님까지 챙긴 주영이 앞에서 참으로 소박한 포부를 풀어본다.
그리고 그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친구가 고맙다.
영이의 하반기 목표도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할게!
우리집
그리고 우리집.
삥이는 오랜만에 만나는 주영이 이모가 낯설면서도 관심도 받고 싶어서
좋아하는 가방을 주렁주렁 메고 어슬렁대더니 코끼리 책을 가져와서 읽어달라고 한다.
훈은 주영이가 오기 전날 마트에서 고심해서 장을 보더니
뚝딱뚝딱 스테이크를 굽고 파스타를 만들어서 저녁을 차렸다. 고마워!
아쉬운 일요일이 지나간다.
예쁜곳 맛있는 곳 좋은곳 모아 놓을게 또 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