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드 • 숨결로스터리
1.
너드에서
작년 영어 그림책 읽기 모임에서 알게 된 친구들.
종종 만나서 브런치를 먹는다.
삼십대 후반 여자 셋이 카페에 모이면 무슨 얘기 하게-요?
엄마, 아내이면서
'나'를 잃지 않으려고 바지런히 꼼지락대는 우리.
그간 무엇을 하고 있는지, 뭘 하고 싶은지를 탈탈 털어 놓는다.
실행력 좋은 H는 만날 때 마다 새로운 일을 벌이고 있다.
사업자를 내고 브랜드를 만들고 수업을 들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성큼 성큼 나아가고
S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내어 AI 수업도 듣고 두 아이까지 케어한다.
그 와중에 직접 만든 딸기잼을 챙겨와 선물하는.
반면 나는
하...그게 참.
하고싶은게 있긴 한데 실행력 부족, 남편의 냉담, 망설임으로 늘 제자리걸음인 것 같다고 한탄했더니
가진 역량에 비해 너무 움츠러든것 같다고!
얼른 하라고!! 응원한다고!!!
오늘 할거 딱 하고 인증샷 보내라고!!!!
힘나게 궁디팡팡 해 준다.
셋 중 내가 제일 언니임에도 나는 늘 응원을 얻어가는 쪽이다.
아, 늘 도돌이표인 둘째 고민도 잔뜩 늘어놨네.
나는 이래서 저래서 안될 것 같다고 절레절레하고
아이 둘의 엄마인 S는 좋다고, 낳아 보라고?!
결국 다 내 결정이지만 이야기 하는것 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
H, S 와 헤어지고 금리단길 뒷골목에서 마주친 흐드러진 장미 포토스팟.
찍어줄 사람은 없는데 사진은 남기고 싶어서
10초 타이머 맞추고 냅다 뛰었지유 -
내 양쪽에 앉아서 얼른 해 보라는 사람들의 말을 돌비 애트모스로 듣고 나니까 용기가 샘솟아서
한달간 미적대던 기획서를 보냈다.✌️
다음 만남에선 나도 종종걸음이나마 내딛는 모습이고 싶다.
2.
숨결 로스터리에서
새로 생긴 대형카페에서 요정을 만나는 날.
멋진 곳이긴 했지만 앗차 했다.
신상 카페라 평일 오후임에도 사람이 너-무 많았던 것.
우리한테 필요한 공간은
스케일이 크지 않고, 사람의 밀도도 높지 않고 조용해서
서로의 이야기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곳인데 흠흠..
아무튼 자리를 잡고
어쨌든 커피도 주문했다.
서록서록 기록을 함께 할 때는
묻지 않아도 무슨생각을 하며 지내는지 알았는데
기록모임을 마무리하고 나니까 한달여만에 만나는데도 재빠른 근황체크가 필요하다.
그리고는 준비해 온 선물 주섬주섬 꺼내기 -
나는 요정에게 서록서록 에코백과, 살냄새 향수, 하트 입자가 뿅뿅 나오는 치약을 선물하고
요정은 'I Love Writing' 티셔츠를 준비했다.
매일 하던 기록 인증을 안 하니까
혼자서는 기록을 잘 안하게 되고 일상도 느슨해지더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최근 하고 있는 작은 시도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챗지피티 무한 긍정모드처럼
"너 지금 대단한거야, 잘 하고 있어!" 하며 물개박수 쳐 주는 요정.
눈이 맑아서 그런가,
이 친구와 같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저 깊은 속마음까지 꺼내보이게 된다.
이 날도 한참 얘기하다가 눈물 콧물을 한바탕 쏟았다.
다음에 커플 티셔츠 입고 소금강 등산 하자며 마무리.
가방 수납력이 참 좋다며 책이며 쓸 거리 잔뜩 들고 외출하는 인증샷도 보내주고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도전과 실패에 대한 영상과, 소금강산 새소리를 보내는 요정.
나는 카페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