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절망속에서 건져낸 것은?
지난 여름.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 동네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비건 메뉴다.
미드센추리 모던에 스페이스에이지가 가미된 컬러풀한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어
주인분과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비건 식단에 관심이 많았고 인테리어도 직접 했다고.
주변 사람들과 밴드를 만들어 매주 공연도 한다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람들과 교류하는 삶이 참 멋있어 보였다.
나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다고 했고
식당 주인분은 에어비앤비를 해 보는게 어떻겠냐고, 본인은 지금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혹시 정보가 필요하면 도움을 주겠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어제, 오랜만에 그 식당을 다시 찾았다.
여전히 재치있고 키치한 인테리어와 메뉴들.
오랜만에 나와 남편을 보더니
"어? 그때 에어비앤비 고민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하기에 뜨끔했다.
처음 식당을 찾은 그 날, 나는 새벽 세시까지 에어비앤비 어플에서 경주에 있는 모든 숙소를 검색해 보고
그 다음날에는 도서관에서 '워케이션' '에어비앤비'가 들어간 책을 잔뜩 읽었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일이 늘 그렇듯, 그게 다였다.
한바탕 나를 휘저어 놓고는 끝내 흘러가버린 -
6개월 사이에 식당 주인은 아파트를 계약하고, 가구도 들이고, 몇 단계의 인증 절차를 밟아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고 있다며 사진을 보여준다.
이 도시만의 느낌이 나게 목재로 된 거실 사이드보드 위에 걸어 놓은 석굴암 본존불 사진이 멋졌다.
내 이야기를 한참 듣더니.
"집에 있지만 마세요. 도서관 이제 가지 마세요. 책 그만 보고 밖으로 나가요. 부담 갖지 말고 동네도 둘러 보고 부동산에 들어가 봐요. 도서관 가던 차를 돌려요.해 보면 별거 아니에요." 한다.
자기소개를 할 때는 '책을 좋아하는 샌님' 이라고 나를 표현하곤 했는데
내가 책을 좋아했던건지 무언가 실천하고 실현하기 무서워서 책 속으로 도망치려했던건지 혼란스러워서 밤에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결국 나를 구할 수 있는건 비건식당 주인도, 옆에서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남편도 아니고 나다.
나를 집과 책 속에서 꺼낼 수 있는 것도 나다.
그래서 오늘은 - 원래는 도서관을 가기로 한 날이었지만 - 아직 부동산의 문을 두드릴 자신은 없어서 관심있던 지역 근처로 가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올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