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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강 Jul 22. 2018

도쿄 도심 속의 작은 숲
: 네즈미술관 카페

남다른 도쿄 여행, 여기에서 시작해보자.

이 모든 건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되었다.

인스타그램을 보며

#도쿄여행 #도쿄카페 를 열심히 검색 중이었다.

수십개의 썸네일 속에서도

내 취향은 한 눈에 알 수 있어서,

만난 사진 한 장.


대략 이런 구도였다.


<너무 좋아서 같은 구도에서 사진을 꼭 찍고 싶었다. 네즈미술관의 첫인상은 직선과 직선과 직선이었다.>


내가 생각한 고즈넉한 일본은

이런 곳이었기 때문에,

생애 첫 번째인 도쿄 여행에서

나는 이 곳을 꼭 가야만 했다.


이 곳은

네즈미술관이다.


<오모테산도 역에서 네즈미술관으로 걸어가는 길에 만난 콩나무(?). 9월이었는데도 참 푸르렀던 도쿄>





일본인 지인에게
네즈미술관을 가고싶다고
말했더니 너무 놀라더라.


업무상 알게 되어

지금까지 연락을 하는

좋은 관계의 (아니 정말 내가 사랑하는)

일본인 50대 후반 여성 엔조씨가 있다.


내가 도쿄에 간다고 하자

그분은 선뜻 본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말해주셨다.


나더러 꼭 가고싶은 곳이 있냐 물은 그녀에게

"나 네즈미술관에 가보고 싶어" 라고 말을 하니

50대 후반의 그녀가 너무 깜짝 놀라며 웃었다.


"거긴 정말 요즘 일본 젊은이들도 잘 안 가는 것 같아.

내가 20대 때에 남편과 데이트 하던 장소야.

너의 입에서 네즈가 나올지 정말 몰랐어!!

근데 너 정말 훌륭한 취향을 가졌다고 말하고 싶어."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사실 네즈미술관 안에

카페에 가보고 싶다고.


그랬더니 그녀는

본인도 네즈미술관 자주 갔지만

카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며

너무 좋아했다.


그리고 우린 아주 좋은 날씨의 9월 어느 날,

네즈미술관으로 향했다.





직선과 초록으로 이루어진
무릉도원 같았다.


네즈미술관을 들어가자마자 만나는 건

첫 번째 사진의 길다란 중정.


그리고 중정을 돌아서 왼쪽으로 꺾으면

또다른 직선이 나를 반긴다.


<네즈미술관의 두 번째 인상 역시 직선이었다. 직선의 향연>


고개를 들어

지붕을 보게 되었는데

정말 지"평선"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만큼 수평이 잘 맞는 일본식 기와가 가득했다.

직선의 물결같았다.


네즈미술관 안의 전시는

우리나라 리움미술관 상설전 같은 느낌이다.

오래된 유물들이 있고

유명한 작품은 수장고에 숨겨져 있다.


특별전을 하긴 하는데

내가 방문한 기간에는 특별전마저

쉬고 있어서


우리는 바로 네즈미술관 안의 카페로 갈 수 있었다.

서울에서부터 기대하던 그 카페 안에는

또 다른 직선과 초록이 있었다.


<카페의 탁트인 정원 전망만큼 유명한 천장의 빛 투과를 보라. 정말 감탄만 나올 뿐>





두 면으로 이루어진
창가에는 정원의 초록이 쏟아진다.


사실 네즈미술관은

공간적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조경이 더 유명하다.


인간이 만든 인공정원인데

그 규모가 엄청나다.


또한 한국으로 치면

삼성역 한복판에 있는

봉은사역 같은 위치에 존재하는 정원으로

도심과 갑자기 분리되는 느낌이 든다.


도쿄 도심에서 만난 작은 숲.
숨이 쉬어진다.


<창가를 내다보면 끝도 깊이도 알 수 없는 초록이 나를 반긴다. 압도적 풍경>


한참 초록에 빠져들었다.

밑을 내려다 보니 정말 끝을 알 수도 없을 것 같이 깊은

초록이 기다리고 있었다.


9월인데도 이렇게 푸르르다니.

내가 운이 좋은 건지,

도쿄가 운이 좋은 도시인건지,

둘 중 어느 쪽이라도 참 좋았다.


카페 내부에는 일본 전통 차와 화과자, 커피가 있었다.

이런 풍경을 두고 먹는 다과니만큼

화과자와 호지차를 주문했다.


<호지차가 나오기도 전에 물 한잔에 감탄한 나란 사람이란. 정말 물 그림자마저 경이로웠다.>





작고 예쁜 일본 문화를
압축해서 만난 것 같다.


물 한 잔에도 사진을 찍는 나를 보던 엔조는

정말 귀엽다는 듯이 웃어주셨다.

그리고는 자신에게도

이런 공간을 소개해주어서 너무 고맙다고,

일본인 특유의 야사시-한 말투로 말해주셨다.


<물 사진을 한 일이분쯤 찍었을까, 호지차 팟이 하나 나왔다>


호지차를 마셔보던 엔조는

나에게 말차를 하나 더 마시길 권했다.

화과자와 말차를 같이 마시면

더 일본같지 않겠냐며.


그래서 나온

화과자 하나와 솔로 정성스레 덖어만든 말차 한잔


<연꽃처럼 해사하게 핀 화과자는 정말 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귀여웠다>


화과자를 평소에도

매우 좋아하는 편이라서

마음 같아서는 열 개도 먹을 수 있다.


그렇지만

왠지 여기서는

양껏 먹는 것보다

정성껏 하나를 먹는 게

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한 조각 자르려고

나무 도구를 들었다.


<마지막 잎새처럼 손을 벌벌떨며 한 조각을 잘랐다. 그리고 먹은 순간 기분이 너무 아이처럼 좋아졌다>


모양보다도

맛이 더 좋았다.

그러기 쉽지 않은데.


말차 한잔과

화과자를 싹싹 비우고

정원에 산책을 나가고 싶었다.


내가 계속 감탄한

초록 바다를 만나러 가야했기 때문이다.





그 동네를 잘 아는
현지인과의 동행은 참 좋다.


내가 일본어를 몰라서

생기는 문제만 해결되는 여행이 아니다.


40년 전부터

이 정원에 쌓여온 사연과


지나가는 이 팻말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신이 올때마다 느낀 공간의 변화.


인터넷엔 나오지 않는 생생함이 있다.

그냥 예쁜 초록색 공간이

이야기를 통해

사람냄새 나는 이웃집 초록으로 변한다.


모두가 아는 감탄이
나만의 기쁨으로 체화되는 것.


나이 많은 현지인은

정말 Wise한 여행 동행이 되어준다.


<정원으로 내려가는 계단. 다시 봐도 두근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어쩌다보니

쓰고 있는 몇 가지의 글들이

모두 풍경을 극대화하는 장점을 가진

공간에 대한 내용들이지만,


그런 공간들은

사실 그렇게 흔치 않다.


내가 만난 한 장의 사진이

도쿄라는 도시를 정말 좋은 곳으로

기억하게 해준 것처럼,


이 브런치 글을 보고

혹시나 네즈미술관 카페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독자가 있거든,


그것만으로
이 글의 존재이유는 충분하다.


나만큼 좋은 경험을 하기를.

모두 다 아는 도쿄에 질린 사람이라면

조용하고 차분한 도쿄를 만날

(그것도 도심 한복판에서)

기회를 만들어보자.


완주의 아원고택이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초록을 만난 공간이었다면


도쿄의 네즈미술관은

세상에서 가장 깊은 초록으로

우리를 안내할 것이니.


2018년 7월 22일

무더위를 견디려고

되새겨보는 나의 도쿄.

(여행시기: 2017년 9월 24일)


<호지차로 마무리하는 호젓한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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