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달 동안 시도와 발견들을 정산하고 회고하며 새해맞이
2021년에는 익숙하지 않은 시도를 만나고 만들어가기도 하면서 한 해를 보냈다.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지친 일상에 묻히지 않으려고 새로운 시도들을 꾸미기도 했고, 회사에서는 커리어의 방향이 바뀔 만큼 역할의 변화도 있었다. 지난 열두 달의 ‘새로운 시도’와 ‘발견’으로 떠올리며 회고를 시작해본다.
1월 다이어리 첫 장에 적은 문구를 발견했다.
‘귀엽고 밝은 에너지를 발견하며, 쌓고 나누는 삶을 살기’
귀여운 것들을 좋아하던 나는 그 귀여움의 에너지를 전파하고 싶은 사람으로 자라났다. 난데없이 귀여움 타령으로 시작하는 회고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에너지를 0.01초 만에 얻을 수 있는 방법은 귀여운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다. 아기자기한 귀여운 물건들을 소유하는 것보다 애정이 솟아나는 귀여운 순간에서 밝은 에너지를 받는 감정을 좋아하는 편이다. 퇴근 후 일상에서는 귀엽다고 느꼈던 무언가 들을 그리고 기록하며 소소하게 밝은 에너지를 전파해보기로 했다.
올해의 미션을 되새기며 퇴근 후에 넷플릭스와 유투브로 시간을 채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귀여운 순간들’을 그림이나 글로 기록하며 에너지를 충전하고 전파했다.
#오초이스튜디오
묘하게 귀여운 순간을 그리고 나누는 그림 계정 ‘오초이 스튜디오(@ochoee.studio)’를 만들었다. 어떤 그림체로 계정 피드를 쌓아갈지 고민했지만 초안클럽 멤버들의 ‘그냥 많이 해보자’라는 의견에 따라 시간이 날 때마다 하나씩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년 말에 20일 동안 매일 한 개의 그림과 글을 기록한 것을 모아 ‘요즘 집에서 뭐해’ 브런치 북을 발간했다.
그 덕에 1시간 만에 글과 그림을 쓸 수 있는 나름의 내공이 쌓이고 편한 그림체를 발견했다. 손에 잡히는 무언가도 만들고 싶었는데, 주말 동안 종일을 매달려 만든 달력을 2021년 내내 많은 이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막상 달력을 우당탕탕 만들어내고 보니 12달의 색상을 구현하기 쉽지 않아 시행착오 속 탈락한 달력도 수십 장이었고, 포장부터 전달까지 오프라인 경험까지 더 잘하고 싶은 부분도 보였다.
달력을 만드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좋은 점도 있었다. 매 월마다 새로운 달을 맞이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달력을 꺼내는 일과, 그렇게 일 년 내내 계속해서 필요성을 떠올리게 하는 선물이라 좋았다. 달력 월마다 조각 엽서들이 누군가를 통해 다시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된 순간도 기억으로 남았다.
점점 바빠진 일정에 그림을 반 년동안 그리지 못했는데 다시 시작하려니 손이 더 무거워졌다. 내년에는 더 쉽게 그리고 자주 그리고 기록하며 귀여움을 전파해야지.
올해는 팀을 새롭게 빌딩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도 많은 변화와 시도가 있었다. 이 전보다 바빠지고 마음의 여유가 줄었지만 크게 배워 기록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팀장의탄생
처음 매니저 역할 제안을 받고, 팀 리드에서 매니저 역할까지 영역을 넓힐 수 있을지 고민할 때 ‘팀장의 탄생’ 책을 선물 받았다. 팀장의 역할도 배워가면 된다는 걸 깨닫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기도 했다. 시행착오를 하면서 더 잘할 부분들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반년만에 노트 한 권을 채웠다. 좋은 사람이면서 좋은 매니저가 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 마음속으로 다짐한 일이 있다면 멤버들과 함께 성장하는 리더 혹은 매니저가 되고 싶다.
나 또한 매니저에게 그런 기회들을 받았을 때 가장 많이 성장했고, 작은 디테일 가이드에서 구체적인 도움을 받기보다 큰 맥락에서 방향성을 잡아 주었을 때 리더의 시야를 배웠다고 믿는다. 그리고 회식장소를 찾는 스킬이 조금 업 되었다.
+ 팀과 함께 포장 서비스, 마트 서비스 등 큰 프로젝트를 런칭하면서 서로를 빛쟁이라고 불렀다. (빛처럼 빠른..)
#스펙트럼콘
디자인 스펙트럼과 두 번째 연이 닿아 스펙트럼 콘에서 쿠팡이츠 프로덕트 팀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Reframing’ 이라는 주제를 듣고, 어떤 이야기를 소개할지 고민이 많았다.
쿠팡이츠가 기존 배달시장에서 새로운 관점에서 도전하는 조직인만큼 우리 팀의 문화와 문제 해결 관점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빠른 한집 배달을 위해 배달 파트너를 재촉하는 일이 아니라, UX를 개선하면서 사용자 경험과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는 사례를 이야기했다.
스크립트를 쓰고, 피피티를 만들고, 발표 연습을 하고, 생방송 라이브를 하고…그 과정에서 우리 팀의 도움을 받지 않은 순간은 하나도 없었다. 만약 혼자 했다면 이렇게 준비할 수 있었을까 떠올려보면 아찔하다. 스펙트럼 콘을 봤던 시청자에서 발표자로 참가하니 감회가 새로웠고. 함께 알던 디자이너들도 각자의 팀에서 발표를 준비하고 있는 걸 보면서 각자 고군분투하며 많이 성장했구나 싶었다.
(특히 지훈 님과 마켓컬리를 주제로 디자인 스펙트럼에서 각각 발표를 해봤는데, 이제는 쿠팡이츠, 멋쟁이 사자처럼을 대표해 발표하는 모습이 새삼스러웠다.)
글 쓰는 일도 계속되었다. 언젠가 UX, 프로덕트 디자인 관련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올해는 업과 관련된 기록을 남겨서 개인적으로 의미 있었다.
#쿠팡디자인브런치
올해는 쿠팡 디자인 브런치에도 콘텐츠 전략팀과 함께 글을 발행했다. 처음 서비스 런칭 후 쿠팡이츠 디자이너로서 회고했던 ‘로켓배달을 위한 디자이너의 고군분투’ 글에 이어서 2년 뒤 ‘보이지 않는 문제를 찾아 움직이는 쿠팡이츠 디자이너’ 라는 제목으로 회고를 다시 쓰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님과 함께 리뷰하며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렸지만, 이번에는 엘라님의 하드캐리와 리암님의 아트워크 덕분에 또 다른 시각들이 모여 콘텐츠를 완성도 있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어서 클럽 하우스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을 기반으로 엘라님이 작성한 ‘PO를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법’ 콘텐츠도 발행되었다.
DSBX팀에서 브랜딩 한 로켓 연구소 후기에서 일하는 모습을 찍기도 했는데, 이제 보니 좋아하는 사람들이 새삼 가득하다.
#온라인명상
생각들과 일이 쌓였고 비워내는 일도 필요했다. 눈을 감고 가만히 명상을 하면서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 앉히는 일은 함부로 엄두가 나지 않는 고급진 취향이라 생각했다. 명상을 한다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치며 대단하다는 말을 했을 뿐 나와는 거리가 있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넷플릭스에서 헤드스페이스의 명상 가이드 콘텐츠를 보고 압도당해서 한 달 온라인 명상 프로그램을 결제해버렸다.
아직도 명상은 익숙하지 않다. 특히 명상을 하는 중 어려운 점은 생각을 비워내는 것이었다. 처음 1분 동안 눈을 감고 누워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의 수를 세어 보라고 했을 때, 내가 세었던 생각의 수는 50개가 넘었다. 하지만 이제는 좋은 생각은 담아내고 나쁜 생각들은 꼬리를 끊어내거나 흘러 보내는 일이 조금 더 자연스러워졌다.
명상 중 발견한 문장 :
생각은 현실이 아니다. 당연한 사실인데 생각에 나도 모르게 무게를 실어주는 경우가 많다.
왜곡된 생각에 쉽게 압도당하지 않도록 생각의 무상한 속성을 종종 상기하면 더 현명하게 생각을 다룰 수 있다.
득도를 한 도인 같은 회고 모먼트지만, 사실은 생각은 줄이고 그 시간에 행동을 하려는 올해의 기억에 남는 시도 중 하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각 없이 몸만 움직이는 운동이 최고인 듯하다. 운동을 할 때 거의 멍 때리고 눈에 초점도 없이 아무 생각도 안 하는데 그 시간을 좋아하는 편이다.
#즉흥여행
비행기 표가 저렴해서, 장작불을 피우고 싶어서와 같은 이유로 여행을 떠나기에도 충분했다. 해외여행은 아직 엄두가 나지 않아 여름 제주와 겨울 전주를 찾았다. 많이 먹었고 많이 웃었고 때로는 조용히 말없이 음악을 듣기도 했다. 제주는 언제 가도 새로웠고 전주는 엄마의 고향이라 새삼 반가웠다. 전주 교대 앞에 자리한 숙소를 보면서 지원할 뻔했던 학교를 이렇게 만나는구나 싶기도 했다.
온라인으로 그리고 소규모로 모임들도 이어갔다.
#클럽하우스
지난 코로나 시기 동안, 그리고 더 지난해 들 동안에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올해 초 클럽 하우스에서 모두 만난 듯하다. 폭풍처럼 붐이 일어난 뒤 많은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클럽하우스에 다양한 주제로 삼삼오오 모였다. 특히 재밌는 무언가를 찾던 IT업계 사람들이 모두 모인 듯 업계 관련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았다.
회사에서 재택근무 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도 클럽 하우스에서 종종 이야기를 나누었고, 쿠팡 Product UX팀에서는 Ella&Jonny 님이 함께 여러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내용을 3가지 시리즈 콘텐츠로 만들었다. 그 시리즈 중 PO와 협업하는 과정을 이야기하는데 참여하기도 했다.
#초안클럽
마지막으로 가장 재미있게 놀았던 초안클럽. 올해도 꾸준히 서로의 초안들을 공유하고 나누었다. 작년에는 오초이스튜디오 달력을 만들었고, 올해는 팀장일기와 쿠팡 브런치 글을 쓰면서 고민의 방향을 가볍게 공유했다. 이런 기록들이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지 또는 고민들에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추천받기도 했다. 김키미, 흔디, 림고, 루시, 진초이, 양수의 초안들이 모여 또 재밌는 무언가가 되는 날까지.
루시와 초안클럽 멤버들의 플리마켓도 초안클럽에서 이야기 나누던 어느 초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플리마켓을 열고, 이야기는 남았지만 쓰임이 필요한 물건들은 알맞은 주인을 찾아갔다. 카페 파고의 도움 덕분에 좋은 공간에서 플리마켓도 성공적으로 마무리.
플리마켓을 앞두고 내놓을 물건이 많지 않은 나는 급하게 2022년 달력을 만들었다. 작년에 한 번 만들어봐서인지 이번에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만들고, 시행착오는 줄었다. 만질 때 기분이 좋은 종이 재질을 선택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한 해를 보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슬리퍼씨의 평안한 한 해’라는 이름까지 지어주고 나니 2022년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시도들을 했고, 그만큼 느끼고 발견한 일들도 많았던 한 해. 잘 보냈다, 잘가 2021년!
(작심삼십일의 연말정산 키워드 중 일부를 참고해서 작성한 2021년 회고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