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 프로젝트, 그리고 한옥에서 만난 취향들
오늘의 취향 : 서촌, 한옥, 위스키, 고양이, 남의 집 프로젝트
한옥과 가장 어울리는 단어 2개를 채워보자.
이 전에는 우퍼가 빵빵한 스피커, 와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위스키, 그리고 고양이라고 생각한다. 왜? 남의 집에 다녀와서 취향이 조금 옮았다.
취향에 있어서 편식하진 않는 편이다. 때로는 무딘 편이다. 그래서인지 남의 취향을 살펴보는 것이 꽤 흥미롭다. 무엇이든 깊은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면 새삼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남의 관심사 또는 취향에 귀 기울이다 보면 동공까지 확장되는 느낌이 든다. (근래에는 스테이크를 좋아해서 두께만 5cm짜리 고든 램지 요리 책을 산 친구가 대단스러웠다.)
이번엔 주거 취향을 탐하고자 남의 집에 다녀왔다.
'남의 집 프로젝트'는 집주인이 주거공간과 취향, 삶을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준다. 남의 집 피드에서 내 취향이 나오기만을 호시탐탐 살펴보고 있다가 '한옥' 그리고 '위스키 장'이라는 두 키워드에 끌려 고민할 틈도 없이 신청서를 작성했다.
한옥만으로도 매력적이지만 위스키 전용 장이 있는 건 로망, 아니 풍류가 있는 삶이 아닌가요.
그리고 다행히도 초대받은 6인에 포함됐다.
서촌지역은 북촌보다 주거지역에 가까운 분위기다. 사람이 바글거리는 시장을 지나면 한적한 길가가 나오고 사이 골목을 따라가서야 동네가 눈에 보인다. 호스트의 한옥 집을 찾아가기까지 비슷한 대문 앞에서 3번 정도 헤맸다. 물론 사진이 친절하게 첨부되어 있었지만, 감을 믿고 걷다 보면 나올 것이라는 길치의 직감을 믿고 여기저기 기웃거렸기 때문이다.
안내글 중 초인종이 없으니 문을 두드리거나 '이리오너라'를 외쳐달라는 내용이 있었다. 막상 남의 집 앞에 서니 두드리면서 '이리오너라'를 외칠 엄두가 나지 않아 기웃거렸다. 열리지 않을 것 같던 대문이 갑자기 열렸고 시원하게 펼쳐진 마당공간과 그 가운데 크게 자리한 원목 테이블이 시선을 끌었다.
어떻게 들어갔는지 기억나지 않는 이유는, 들어가는 순간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탓이다.
서둘러 앉은자리에서 눈이 바빠졌다. 호스트 두 분, 남의 집 문지기 한 분, 초대된 손님 여섯 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한옥 편에 초대받은 손님처럼 총 아홉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고양이가 마당에 모여 앉았다.
직접 우려 주신 차와 담긴 그 찻잔이 좋았다. 그런데 모든 손님의 찻잔이 달라서 더욱.
원목 도마 위 올려진 빵이 먹음직스러운 좋았다. 그런데 정말 효자 베이커리가 이름값을 해줘서 더욱.
커피, 차, 직접 만든 뱅쇼까지 여러 이유 때문에 속으로 여러 번 감탄했다.
살기 적합한 한옥을 만들어나간 고민들은 곳곳에 있었다.
천장을 높여 공간을 더 넓게 꾸몄고, 다락방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소중한 것(위스키, 만화책)들을 즐길 수 있는 아지트를 만들었다. 다락방에는 햇빛이 잘 들어올 수 있도록 창문을 내었다. 그리고 마당에는 원목 테이블을 놓아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들을 수 있고 겨울이 되면 난로를 켜둘 수 있는 온도감 좋은 공간으로 만들었다.
채광이 잘 드는 주말 아침. 마당에서 커피를 내려마시면 얼마나 여유로울까.
다락 공간에선 만화책을 보면서 고양이와 함께 뒹구르-하면 얼마나 좋을까.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열린 공간이 스피커 같은 음악 울림. 창호지 사이사이로 건너오는 음악 소리들.
남의 집 문지기, 카피라이터, 북한 관련 기자일을 하시다가 독립출판을 시작하신 분, 2명이서 잡지를 만든 적이 있는 분, 인공지능과 미래의 봇을 고민하시는 분, 공간을 공부한 분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한 공간에 만났다.
한옥(그리고 위스키라고 읽는다)이라는 공간 취향 하나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색함이 없는 것이 오히려 어색했다. 왜 때문인지 오래간만에 만난 사람들처럼 이야기를 하는데 그 취향 코드가 어찌 다 맞는지. 관심 있는 브랜드와 그 추이, 지역 이야기까지 어느 하나 서로 모르는 부분이 없어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공간이 주는 편안함 때문인지 맞장구와 이야기는 길어졌다.
무려. 집주인 두 분께서 직접 요리까지 준비해주셨다. (여러 음식을 준비해주셨는데, 아마 위 사진을 찍은 이 후로는 먹부림에 더 집중한 듯하다.)
구름이가 잠들 시간. 모두의 잔도 찻잔에서 위스키 잔으로 바뀌었다.
마셔보고 싶은 위스키 타입을 이야기하면 정훈님께서 하나씩 꺼내어 추천해주셨다. 그리고 결국 사람 수보다 더 많은 위스키가 나왔다. 대만, 네덜란드, 제주도, 일본 등 전 세계에서 넘어왔지만 한옥에 있어서 '풍류'라는 말이 어울리는 위스키들.
마음에 드는 위스키도 하나 생겼다.
#한옥
한옥은 처마 형식의 지붕. 삼각 형태의 천장을 쓸 수 있다. 작은 평수여도 천장을 높이면 공간이 주는 여유감이 다르다.
빗소리가 들리는 한옥은 운치가 있고 눈 오는 풍경이 느껴지는 천장 창문은 또 아름답겠지. TV가 있는 아파트 거실 대신에 마당과 테이블이 있는 한옥이 주는 라이프 스타일. 그리고 다락방은 한옥 로망의 꽃.
#고기 본연의 맛
고기는 오븐에 구우면 더 맛있구나.
향신료를 살짝 가미한 본연의 고기가 역시 최고다.
#바닐라 향
위스키의 맛 표현 예시는 바닐라 향이 난다, 피티 하다. 등이 있다. 위스키는 마시고 또 새로운 것을 마셔도 뒷 맛이 깔끔하다.
#프랑스
프랑스 여행을 가야겠다. 자전거를 싣고 차는 렌트를 하고. 여행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파리에 가면 안젤로 아저씨를 만나보자.
#악당
악당도 부지런하다. 집에서 뒹굴면서 세상을 좋게나 나쁘게나 바꾸긴 어렵겠구나.
#다다익선
맥시멀리즘의 삶은 역시나 행복하다.
사람이 2명 있다고 컵이 2개 있으리란 법은 없지. (약 50여 개의 잔을 보았다....)
내게 맞는 자전거 1개를 소유하기보다 길마다 맞는 자전거 여러 개를 가지는 것도 방법이다.
#존중
전혀 다른 취향이 있어도 충분히 함께 공존하며 살 수 있다. 오히려 맞으면 럭키지!
#위스키 마시는 법
바에 가서 위스키를 마시는 것도 좋지만 위스키를 하나 사서 친구들과 나누어 먹는 맛도 있지 않은가.
#마트료시카
마트료시카(러시아 인형)처럼 큰 트렁크 안에 작은 기내용 트렁크를 넣어서 여행을 가자.
#남대문
아이하시 젓가락을 사자. 정말 예쁘다.
남대문에 가면 구경할 것이 많다. 선물하기에도 좋은 수저 젓가락부터 맛 좋은 위스키까지.
#쉬운길
'내 것을 하고 싶은데 뭘 할까' 보다 '나는 뭘 좋아하는데 이걸 어떻게 하지'가 더 쉽다.
#빈틈
마지막으로 나무는 빈틈 있게 끼워줘야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무의 형태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인생도 한옥네 나무 같아야 함께 공존하며 흐를 수 있다.
세미나를 다녀오면 오히려 허할 때가 있었는데 남의 집에 다녀오니 배도 마음도 든든했다.
아직 취향이 뚜렷하지 않다면 꾸준히 남의 취향을 탐해 보는 것도 좋다. 새삼 '취향'이라는 말이 제너럴 하면서도 새롭게 느껴진다.
남의 집, 잘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