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공무원이 말하는 설득의 기술
#2. '설득'의 3요소 : '상황', '상대방', 그리고 '나'
'설득'은 정말 다양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다.
조금 마음이 아린 이야기지만,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나 스스로도 마음대로 하기가 힘들 때가 있는데 다른 사람이 내 뜻 같기를 바라는 것은 분명히 욕심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 '설득'을 해야 할 상황을 마주쳐도 이상할 게 없다.
여러분을 설득하겠다고 약속한 내 입장에선 이러한 다양한 상황에서 '언제나' 활용할 수 있는 '설득의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기술은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서 설득에 '정답'은 없다.
매번 다른 상황, 다른 사람과, 다른 이유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상대방을 설득하는데 정답이 있다는 게 더 비상식적이지 않을까?
(만약 있다면 정답도 없이 여러분을 설득하겠다고 나선 나에게 돌을 던져도 좋다.)
하지만 분명히 '설득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한다.
잠시 눈을 감고 '내가 누군가를 설득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 '내'가 어떤 장소에 앉아있다.
- '상대방'이 맞은편이 앉아있다.
- '나'와 '상대방'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구체적인 장소나 상대에 대한 묘사는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들이 있다.
'상황', '상대방', 그리고 '나'
언제, 어디서, 누구를, 어떤 내용에 대해 설득하든 이 3가지는 항상 존재한다.
그리고 앞서 말한 '설득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의 단서는 이 3가지 구성요소에 있다.
'나'와 '상대방'이 같은 주제를 가지고 서로를 설득하기 위해 만나면, 이 구성요소에 대해 미리 고민해 보고 '설득'을 준비한 내가 상대방보다 조금 더 앞서서 출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3가지 요소는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각 요소별로 고민하면 도움이 될 내용들을 살펴보자.
1. 상황
우선은 설득을 위해 상대방을 만나게 된 '상황 자체'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 왜 만나나?
- 얼마나 만나나?
-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 다른 상황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 연속성 또는 지속성이 있는가?
앞서 3가지 구성요소가 우리에게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는 이유를 '항상성'에서 찾았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확실한 요소를 찾아 기반으로 삼는 것은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3가지 구성 요소 중에 변화 가능성이 가장 낮은 것은 무엇일까?
바로 '상황'이다.
상대방을 만나는 목적은 무엇인지, 설득(협상)의 과정 중에 지금은 어느 정도의 단계인지, 서로의 목적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무엇인지, 상대방을 앞으로 또 만나 설득해야 할 일이 있을지는 '설득'을 시작하기 전에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이 역시 물론 변동이 있을 수 있지만, 상대방과 나의 의도와 태도 등 여러 가지 부분이 이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을 고려할 때, 상황에 대한 이해는 가장 필수적이다.
또한 상대방과 아직 대면을 해본 적이 없는 경우엔 '상황'에 대한 분석은 더욱 빛을 발한다. 반복적인 경험이 있다면 동일한 상황에서 나올 상대방의 반응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선 이러한 예측이 설득 과정에서 빛을 발한다.
2. 상대방
상황에 대해 이해했다면 이제 곧 '내 편'이 되어줄 '상대방'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 상대방의 의도는 무엇인가?
- 상대방의 역량은 어느 정도 인가?
- 상대방의 태도는 어떠한가?
- 상대방의 성향은 어떠한가?
"지피지기(知彼知己) 면 백전불태(百戰不殆)"
내가 마주할 상대방을 알아야 하는 경우면 항상 등장하는 고사성어다. 내 편이 되어줄 사람에 대해 잘 안다고 해로운 일이 있을까. 간단하게 몇 가지 질문을 나열했지만 사실 많은 내용을 알면 알수록 설득엔 유리하다.
'장사의 신'을 소재로 한 만화나 드라마를 보면 자신이 설득해야 할 상대의 집 앞에서 며칠씩 숙식을 하면서, 상대방을 관찰하거나 쓰레기통을 뒤지는 이야기가 곧잘 나온다. 그만큼 상대방을 안다는 것은 설득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번번이 만날 사람의 집 앞에서 그 사람을 관찰하고 쓰레기를 뒤질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했다가는 설득은커녕 스토킹으로 신고를 당할 수 있으니,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를 최대한 활용해서 상대방에 대해 예측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제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상대방의 의도'이다. 우선 상대방을 만난다면 해당 주제에 대해 상대방도 본인의 시간을 들여서 만날만큼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만남을 위해 유선으로 연락을 취해 약속을 잡았다면, 일정을 얼마나 빨리 잡고자 하는지를 통해 관심도를 예측해 볼 수 있다. 통화 중간에 상대방이 여러 가지 질문을 한다면 그 질문의 양과 내용 역시 상대방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좋은 단서이다.
또 상대방의 성별, 연령대, 직업 등도 단서로서 작용할 수 있다.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 있다고 일반화를 하긴 어렵겠지만, 특정 집단의 통용되는 특징을 고려하면 생각보다 매끄럽게 설득을 진행할 수 있다.
이렇게 상대방을 잘 관찰하고, 상대방에 대해 고민했다면 마지막으로 이 내용을 확인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된다.
"우리는 상대방을 전부 이해할 수 없으며, 상황에 따라서 상대방은 언제든 내가 알던 모습과 달라질 수 있다. 대화의 목적과 이유를 잊어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자."
3. 나
상황과 상대방을 이해했다면 이제는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볼 차례다.
- 나의 의도는 무엇인가?
- 나의 역량은 어느 정도인가?
- 기대하는 성과는 어느 정도인가?
"이렇게 팔면 저희 밑지고 파는 거예요."
많이 들어본 말이다. 장사를 준비하시는 분이라면 들어봤겠지만 가장 흔한 거짓말이기도 하다. 이런 멘트를 하시면서 장사하시는 분들이 다음에 가도 문을 닫지 않고 영업을 하시는 이유는 하나다.
'내가 원하는 바와 내가 할 수 있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내가 원하는 바, 즉 고객에게 물건을 팔아 얼마의 수익을 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끝난 상태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바, 즉 내가 망하지 않고 물건을 팔기 위해선 고객과 얼마까지 협상을 해서 내어줄 수 있는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바에는 조금 못 미칠 수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것은 고객을 놓치는 것보단 이득이다.
우리가 상대를 '설득'할 때 필요한 모습이 바로 이 모습이다. '설득'과정이 늘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물 흐르듯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 실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을 확률이 월등히 더 높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방의 제안에 당황하지 않고, 내 의도에 맞게 상대방을 유인하기 위해선 내가 가진 수단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단, 내가 가진 수단과 방법은 '나만' 알고 있어야 한다. 장사꾼이 원가와 수익을 가격표에 다 적어놓는다면 그 어떤 고객도 원가 이상의 가격을 지불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진 수단의 '목적'은 설득에 있어 여지를 가지기 위함이다. 이런 여지가 없으면 서로의 주장만을 외치게 될 뿐 '설득'은 불가능하다. 슬프지만 서로 평행선을 걸으며 감정만 상해갈 뿐이다.
이렇게 '나'에 대한 준비도 마친 상태로 '설득'을 하게 되면 상황의 변화, 상대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문성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상대방은 어느샌가 여러분을 믿고 싶어질 것이다.
이 정도면 '설득'의 구성 요소에 대한 이해는 충분하다. 세상은 이론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이 요소들 역시 상황의 다양성에 모두 대처할 순 없다. 다만 이런 준비 과정을 거치기 전과 후의 '설득'의 양상은 확연히 다르고, 확률도 다르다.
긴 글을 마무리하며 한 가지 생각할 거리를 제시해드리고자 한다.
최근에 자신이 경험한 '설득'과정을 위와 같이 나눠서 생각해 보길 바란다.
만약 내가 설득을 하는 입장이었고, 설득을 잘하지 못했다면 이 내용을 알고 준비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