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공무원이 말하는 설득의 기술
#4. Case 1. 계획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난 사람 : 왜 '나'만 손해를 봐야 하는가?
'내가 하려던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그리고 '그로 인해 남들보다 내가 손해를 볼 때'
만약에 여러분에게 이런 상황이 닥칠 경우, 어떤 생각이 들까?
나라면 짜증이 많이 날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설득해야 하는 사람이 이렇게 '짜증이 많이 난 상태의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요즘은 건축자재와 인건비 상승, 높은 이자율, 진입장벽이 높은 대출 등 다양한 이유로 주춤한 추세이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건축 시장은 호황이었다. 땅 값 비싸고 사람 많은 서울을 떠나, 고즈넉한 지역에 단독주택을 짓고 편안한 은퇴 후의 삶을 보내려는 사람도 많았다.
"아니, 그게 말이 돼요?"
각자의 꿈을 가지고 기분 좋게 방문한 민원인이 건축 인허가 상담을 하다 보면 본격적인 상담은 이 말과 함께 시작한다.
대게는 본인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짜증'이 난 것이다. 인허가 요건은 생각보다 까다롭고, 그 외에도 내가 생각하지 못한 비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흔하다. 또는 손해를 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건물을 지으려고 하는데, 내가 내 땅을 손해를 봐가면서 왜 도로를 만들어야 해요?"
"앞집 사람은 건물 지을 때 그런 것 없었다는데."
"옹벽은 내가 이 땅 사기 전부터 있었고, 이걸 점검해야 한단 얘긴 땅 살 때 못 들었어요."
세상에 같은 가치의 부동산은 없다는 말이 있다. 땅의 모양, 위치, 특성이 다 다르기 때문에 비슷해 보여도 동일한 부동산은 없단 의미이다.
그러니 지인의 이야기, 유튜브, 다른 지역에서 사업을 한 경험이 있는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완성된 계획이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나의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처음 경험하는 것'이기에 내 계획에 훼방을 놓는 공무원에게 화가 나는 것도 놀라운 것은 아니다.
자, 그럼 이제 이 사람을 어떻게 설득해야(나의 편으로 만들어야) 할까?
우선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사례를 조금 더 확장해 보겠다.
위의 사례뿐만 아니라 '어떤 제한 또는 규제로 인해 손해를 입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설득하는 경우라고 생각해 보자.
앞에서 이야기를 했던 '설득의 구성요소'를 적용해 보자.
○ 상황 : 제한(또는 규제)을 부여하는 '나'와 제한당하는 사람인 '상대방'이 만남
- 왜 만나나? 상대방의 요구사항을 진행하기 위해서
-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적법하게 상대방의 요구사항을 진행
- 다른 상황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규제'와 '제한'이 아닌 '요구사항'을 대화의 핵심으로 유지
- 연속성 또는 지속성이 있는가? 설득하기 전까지 여러 차례 만날 수 있음
○ 상대방 : 원하는 바를 진행하는 데 있어 '제한' 또는 '규제'로 어려움이 있는 상황
- 상대방의 의도는 무엇인가? 요구사항의 진행
- 상대방의 역량은 어느 정도 인가? 제한과 규제의 존재 및 필요성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함
- 상대방의 태도는 어떠한가? 제한과 규제를 언급한 '나'를 상대방의 계획에 지장을 주는 인물이라고 여김
○ 나 : '제한'과 '규제'에 대해 안내하고 적법하게 요구사항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함
- 나의 의도는 무엇인가? 적법한 요구사항의 진행, 상대방과의 마찰 최소화
- 나의 역량은 어느 정도인가? '제한'과 '규제'에 대한 이해와 유사 사례에 대한 처리 경험 보유,
'제한'과 '규제' 자체를 없애거나 완화할 수는 없음
- 기대하는 성과? 상대방에 대한 설득
아마 처음 시도하는 것이라면 구성요소를 나누고, 각 구성요소에서 내가 어떤 것을 활용할지 질문을 뽑아내는 것도 어려울 수 있다. 이번에 내가 활용한 질문은 앞의 글에서 구성요소를 설명했을 때 제시한 질문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므로, 질문은 각자에 맞게 편하게 수정하면 된다.
구성요소와는 차차 친숙해지기로 하고, 사례로 다시 돌아와 보자. 구성요소를 살펴본 결과, 좋은 소식이 있다. '설득'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수 있단 것이다.
혹시 이유를 찾은 분이 있을까?
그 이유는 '나'와 '상대방'의 의도가 '같기'때문이다.
그럼 서로의 의도가 같은데 왜 이와 같은 마찰이 생기게 된 걸까? 상대방이 인식한 '상황'이 변화해서, 그에 따라 상대방의 '태도'가 변했기 때문이다.
정리해 보면 이렇다. 상대방은 자신의 요구사항을 듣고, 도움을 줄 사람으로 '나'를 인식하고 방문했을 것이다. 하지만 규제와 제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요구사항을 달성하기가 어렵다고 느낀 상대방은 내가 설명한 내용을 '장애물'로 인식하고, '나'를 그 장애물을 만든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상대방'과 같은 의도를 가진 사람이니, 오해만 풀어줄 수 있다면 상대방은 내 편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 오해는 어떻게 풀 수 있을까? 단서는 '상대방의 태도'에 있다.
화가 많이 났다면, 굳이 길게 그 자리에서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내가 상대방과 같은 의도를 가졌다는 것만 적극적으로 어필하면 된다. 내가 상대방과 같은 의도를 가졌으며 상대방의 생각에 충분히 공감한다는 것을 표현한다. 그리고 장애물로 작용하는 규제와 제한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는 예외사항은 없는지 알아보겠다고 한다. 그렇게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
첫 대면때와 다르게 다음에 만났을 때 내가 하는 설명은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로 비치게 될 것이다. 일상적으로 하는 딱딱한 안내가 아닌 '상대방'만을 위한 답변이고, 그 답변을 찾는 과정엔 나의 '적극성'이 담겨있다. 최선을 다했지만 규제와 제한을 없애긴 힘들다는 점을 진솔하게 전달하면 된다.
만약 내가 제공할 수 있는 도움이 있다면 함께 제공하는 것도 좋다. 그 외에 흔히 실수하는 부분이나 추가적인 제약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할 것 등 다른 방향의 도움을 제공하는 것도 오해를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상대방의 입장에선 만족스러운 답은 아닐 수 있지만 우리가 대화를 하는 목적은 '오해의 해소'이기 때문에 이 정도면 충분하다.
화가 나지 않았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답변을 주면 된다. 다만 주의를 환기하면서 약간의 연출을 가미하면 좋을 것 같다. 차나 음료를 한 잔 제공하고, 관련된 법령을 뽑아서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다.
"제 판단의 근거는 이것이고, 챙겨가셔서 천천히 보시고 만약 다른 방법이 있다고 생각되시거나 궁금하신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편하게 연락 주세요."
다음에 만날진 모르지만, 다음에 만날 수 있다는 듯이 소설의 열린 결말처럼 여운을 주는 것이다. 이로써 두 가지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이 자리에서 당장 나를 설득시키지 못하면 안 된다는 조급함을 가라앉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시간이 생기면서 '상대방'은 천천히 규제 관련을 내용을 이해하면서 '나'와 언성을 높이며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핵심은 '나'와 '상대방'이 같은 의도를 가졌음을 상대방에게도 알려주는 것이다.
만약 구성요소를 살펴보지 않아 각자의 상황에만 집중했다면 같은 의도를 가졌음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가 조절할 수 없음에도 상대방이 요구하는 '규제와 제한의 완화'를 놓고 답답해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선 안된다는 말만 반복하는 나와 다투는 상황이 벌어진다. 앞서 말했듯 수평선을 걸으며 서로 감정만 상하는 길에 접어드는 것이다.
이제 오늘의 이야기를 마무리해 보자. 오늘의 사례처럼 같은 의도를 가졌음에도 상대방과 의견을 좁히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만약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2가지를 실천해 보기 바란다.
첫째, 내가 직면한 상황을 구성요소별로 나눠 분석해 볼 것.
둘째,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과열된 상황을 환기시켜 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