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공무원이 말하는 설득의 기술
#5. Case 2. '융통성'이 중요한 유연한 사람 : '쟤'는 되는데 '나'는 왜 안되나?
'적극행정'이란 용어가 있다. 이 용어의 정의는 이렇다.
"공무원이 불합리한 규제의 개선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창의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행위"
공무원의 업무 처리 시 관행이나 불합리한 절차를 따름으로 인해 국민의 권익을 침해하지 않게끔 하고자 하는 것이다. 행정업무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사회에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도 있고, 취지 역시 공감한다.
지금까지 '설득'에 대해 이야기하다 갑자기 이게 웬 이야기인가 싶을 수 있다. 적극행정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한 이유는 이 개념이 오늘 내가 소개할 '설득'의 이야기의 주인공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주인공은 '적극행정'의 등장 이후 자주 만나는 부류인 '융통성'을 강요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은 다 괜찮은데, 왜 나는 안됩니까?"
정말 억울하게 들린다. 그리고 진짜로 억울하게 이야기한다. 과연 공무원이 뭘 안된다고 했을까?
길을 걷다가 오래된 주택이 모여있는 지역들을 보면 옥상에 건물의 기존 소재와 다른 소재로 흡사 '뚜껑'처럼 지붕을 씌워놓은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하다면 산책을 하면서 관심을 가지고 한 번 살펴보길 바란다.(알고 보면 정말 많다.)
이런 형태 지붕은 원래 건물을 지을 때 건축한 것이 아니라, 주로 옥상에서 발생하는 누수를 막기 위해 나중에 설치한다. 옥상 방수시공을 해도 2,3년이 지나면 물이 새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계속 돈을 써가며 방수시공을 하기보단 지붕을 씌우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기존에 없던 기둥과 지붕이 생기는 이 과정이 건축법에 따르면 '증축'에 해당한다. 증축은 당연히 건축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 사항이다. 그렇다 보니 설계비, 시공비 등 생각지 못한 비용이 많이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건축법을 모르는 일반인의 입장에선 이런 내용을 인지하고 적법하게 진행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위, 아래로 방을 더 만든 것도 아니고 비가 와서 지붕만 씌운 것뿐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게 증축이고 내가 불법을 저질렀다니.(간혹은 알면서도 비용 때문에 신고를 안 하는 경우도 있다.)
앞서 억울함을 호소한 사람도 이와 같은 경우였다. 누군가의 신고로 무단 증축 행위가 적발되었고, 원상복구를 명령받은 것이었다.
이 상황에서 상대방이 보이는 반응은 주로 2단계로 이뤄진다.
1단계. 좋은 방법이 없는지 물어본다.
수년간 이렇게 살아왔고, 정말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공무원이 말하는 방법을 들어보니 갑자기 멀쩡한 지붕을 뜯어내거나 비용을 들여서 인허가를 다시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지붕을 뜯어내면 물이 새는 옥상은 어떻게 하며, 인허가를 받는 것도 전부 가능한 것은 아닐 수 있다고 한다. 막막한 상황이다.
2단계. 화를 내며 유연성을 강요한다.
최근 시비가 있었던 이웃 주민이 신고를 한 것 같으나 공무원은 누가 신고했는지 알려줄 수 없다고 한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으니 화는 나는데 마땅한 대상이 없다. 이웃집들 다 똑같이 생겼는데 우리 집만 단속이 된 것도 기분이 안 좋고, 공무원이 말해주는 방법 역시 정설일 뿐 딱히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느껴질 것이다.
"다른 사람은 다 괜찮은데, 왜 나는 안됩니까?"
이게 이 말이 나오게 된 전말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선 본인의 억울함에 공감해주지 않는 공무원에게 화가 나며, 누가 신고를 했는지 몰라도 다른 집을 가만히 두는 공무원과 신고자가 얄밉다.
이때 서두에 말한 '적극행정'이 등장한다. 상대방이 보기에 나는 '융통성'이 없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해주지 않는 꽉 막힌 사람이 된다.
상대방의 주장에 따르면 법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일어난, 위법에 대한 의도가 없는 행위인데 시민을 도우려고 하지 않는 공무원은 '융통성 없이 꽉 막힌 사람'이라고 말한다. 딱딱하게 법과 규정만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도움이 될 이야기를 하라고 화를 내기 시작한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우리 집이 신고된 것에 대해 '융통성'을 발휘하지 않으면 나 역시 법대로 다른 집들을 다 신고할 것이고 공무원은 이로 인한 업무와 민원을 감당해야 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억울한 심정을 이해는 한다. 하지만 명백한 불법을 눈감는 것이 적극행정은 아니다.(융통성의 영역도 아니다.) 공무원이 준법정신을 가지고 행정을 해야 되는 건 맞지만, 단속을 많이 하는 것이 일신의 안위에 도움이 되는 일은 없다.(오히려 화난 사람을 더 자주 만나게 될 뿐이다.)
자, 이제 오늘도 이 화가 난 '상대방'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화가 난 사람들이 왜 이리 많은지)
여러분이 공무원이 아닌 이상 불법사항을 단속할 일은 없으니 불법사항을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불편한 요소'로 확장해서 생각해 보면 각자의 경우에 적용하기 좋을 것 같다. 예약 시간에 도착하지 않아 예약이 취소된 고객을 응대하는 상황이라던가, 개인사정으로 노쇼를 했지만 위약금이나 수수료를 납부하기 싫어하는 고객을 응대하는 상황같이 말이다.
○ 상황 :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불편 요소(위법행위)에 대해 이야기하는 상황
- 왜 만나나? 불편 요소(위법행위)에 대한 통지 및 사후절차 안내(또는 협의)
-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불편 요소(위법행위)의 해소
- 다른 상황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상대방을 설득하지 못하면 다른 상황이 유도될 수 있음
(상대방의 보복성 행위)
- 연속성 또는 지속성이 있는가? 상대방을 설득하지 못하면 연속성 또는 지속성 발생 가능
○ 상대방 : 귀책사유에 대해선 이해하지만,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불편한 상황을 수용할 수 없는 상황
- 상대방의 의도는 무엇인가? 불이익에 대한 회피
- 상대방의 태도는 어떠한가? 상황에 대해 이해하였으나, 결과를 납득하지 못함.
'나'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본인'의 불이익을 회피하고자 함
○ 나 : 사건의 원인보단 결과에 집중하는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
- 나의 의도는 무엇인가? 불편요소(위법행위)의 해소, 상대방에 대한 통제
- 나의 역량은 어느 정도인가? (공무원) 법률과 규정에 따라 제한적
(고객 응대) 직책에 따라 제한적
- 기대하는 성과? 불편요소(위법행위)의 해소
첫 번째 사례와 달리 이 경우에는 명박하게 '나'와 '상대방'은 의도가 다르다. '상대방'은 불편요소(위법행위)에 대한 결과를 회피하기를 원하지만, '나'는 회피를 도울 수없다. 더욱이 '상대방'은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일을 더 크게 만들 심산이니 첫 번째 사례보단 더 심각한 상황이다.
이번 '설득'의 핵심은 '불편요소'이다.
'상대방'의 입장에 놓인 분이나 그 입장에 놓인 경험이 있으신 분에겐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이 경우엔 '나'는 설득을 위해서 이 '불편요소'를 꼭 쥐고 있어야 한다.
상대방의 모든 반응(화를 내고 다른 사람을 신고하는 등 사건을 확대하려는 태도)의 원인은 결국 '불편요소(위법행위)에 대한 회피'라는 목표에서 기인한다. 상대방에 입장에선 마땅한 해결책도 없고, 고립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회피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따라서 대화의 시작부터, 진행과정 중간중간에 상대방에게 현재 상황은 '회피'가 불가능함을 각인시켜야 한다. 그 부분을 상대방이 수긍하는 시점부터 설득은 다 된 것이나 다름없다.
어떤 감정을 섞지 말고, '사실'이자 '현재의 상황'임을 이해시키자. 여길 시작점으로 봐야 앞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줘야 한다. 이 '사실'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만든 것이며, 그 과정에서 '나'는 개입한 적이 없다. 그 부분은 누가 봐도 사실이고, 상대방의 입장에선 시간이 걸릴지언정 납득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하지만 똑같은 이야기, 심지어 상대방이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를 반복하면 상대방은 화를 내지 않을까?
이제 '상대방'을 내 편으로 끌어와야 한다.
내가 제공할 수 있는 '재량'의 영역을 하나씩 사실을 이해시키는 과정에서 풀어준다.
"이 건물은 현재는 위반 건축물입니다. 방수 목적으로 지붕을 설치하셨다는 부분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만약에 설치하시기 전에 저에게 문의를 하셨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상대방이 원인을 만든 사람임을 언급하고 공감을 표현함 - 사실을 이해시키는 목적)
"위반 건축물은 원상복구가 원칙입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원상복구를 하시면 불이익당하실 건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대로 두시면 원상복구가 될 때까지 반복적으로 이행강제금이 부과됩니다. 이건 옆건물을 선생님이 신고하신다고 해결될 이야긴 아니니, 선생님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해 볼게요"
(다른 상황적 요소로 현재 상황을 회피할 수 없음을 강조 - 사건의 확대 방지)
"해당 위반 내용의 구조와 시기, 용도에 따라 이행강제금이 다르게 부과되기 때문에 현장 조사 결과에 따라 이행강제금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크진 않을 수 있습니다."
(회피하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피해는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있음 - 자신의 피해를 줄이는 것으로 초점을 전환)
보통 나는 이런 식으로 '설득'을 진행해 간다. 손실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면 '상대방'의 다음 목적은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내 손실은 그대로 두고 불특정 다수에게 손실을 주겠다고 결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늘 이야기를 공무원이 아닌 일반적인 경우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조금 확장해 보겠다.
공무원은 법과 규정을 을 근거로 행정을 하기 때문에 '강제성'을 가지지만, 일반적인 경우에는 이처럼 진행하기 조금 어려울 수 있다.
긴 이야기에 조금 가려졌을지 모르지만, 핵심은 불편요소의 원인자는 '상대방'이란 사실과 그 사실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는 것이다. 무리한 요구나 사태를 확장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없음을 인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다음 상대방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은 '나'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본인의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목적 때문에 '나'의 편이 된다.
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 정도가 작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내'가 필요하다는 걸 인지하면 '설득'은 충분히 가능하다.
오늘과 같은 경우는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설득을 잘해서 시원하게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안 좋은 소리를 잔뜩 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이야기를 곱씹으며 마음의 상처를 키우지 말자. 작년에 했던 새해 다짐을 또 하는 나처럼 나 역시도 내 마음같이 잘 되지 않는다. 하물며 화가 난 상태의 남은 오죽하겠나.
설득이 잘 되었다면, 이제 그 사람을 다신 보지 않을 테니 퇴근과 동시에 훌훌 털어버리길 바란다. 나쁜 소리 들어가며 잠깐 만든 '내 편'이 아닌 '진짜 내 편'인 사람들과 시원한 맥주라도 한 잔 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