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작별: 우리 모두의 어제

by 진이

생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나 여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살아내는 것이다.


혜인의 큰 상실이 다시 내게 떠올랐다.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비교적'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조차 친구에게 생채기를 낼까 마음이 아린다. 그럼에도 활자로 그의 일을 기록해본다. 김인정 기자가 <고통 구경하는 사회>에서 말한 것처럼, '슬퍼하려면 기억을 나누어야 하고, 필요한 만큼 충분히 오래 슬퍼하려면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


혜인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갓 서른 남짓한 동생을 잃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 공사 현장의 작업 동선을 보고 있던 중, 언덕길에서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우지 않은 트럭이 그를 덮쳤다고 한다. 뉴스 활자로 먼저 접한 아픔은 상복을 입은 혜인을 보자 기정사실의 슬픔으로 변했다. 우리 모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혜인 조차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처음 겪는 고통 앞에서, 그 깊이를 가늠하지 못해 목놓아 울었다. 그것 말고는 방법을 몰랐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는 둥, 어차피 다 죽는다는 둥 우리가 죽음에 대해 상투적으로 내뱉는 말들이 스쳤다. 헛웃음이 났다. 우리가 죽음을 대하는 그간의 태도는 오만이었다. 이 시점에서 기어코 변명을 해보자면, 그건 사실은 죽음이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다.


평생 잊히지 않을 것이다. 아니 잊을 마음도 없을 것이다. 이 생에 가졌고 잃었던 사랑, 그것이 우리 생의 전부 아니었나. 오래오래 기억하자고 했다. 언제고 원한다면 이야기를 꺼내거나, 너무 아파 떠올리기도 힘든 날에는 마치 저기 어딘가 잘 지내고 있다는 듯이 스스로 조차 속이며 그렇게 살자고 했다. 무슨 말인들 혜인에게 위로가 되긴 할까 하는 무력함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역시 나을까 하는 망설임 사이에서 고민했지만, 내게는 그가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 세워야 할 책임이 있었다. 그 역시 내 생의 전부, 이 생에 가졌고 또 언젠가는 잃게 될 사랑이므로. 오랜 친구라는 명분으로 서툰 활자를 늘어놓으며 혜인에게 또 살아가자고 했다. 그저 산 사람은 살아야 된다는 유명무실한 논조로 남지 않도록 단어를 부단히 다듬었다. 혜인의 살아 있는 고통을 납작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존중받길 바랐다.


혜인에게 말했다. 인간이 가진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가 망각 아니겠냐고. 그게 없으면 우리 존재가 도무지 생이라는 이 지옥을 살아갈 수가 없어서 망각하는 능력이 있는 거라고. 우리가 순간순간이라도 잠시나마 우리의 슬픔, 비애, 상실을 잊을 수가 없으면 숨 쉬고 살 수가 없을 거라고. 쉽게 잊힌 인연들마저도 망각을 거쳤음에도 불구 한 번씩 기억을 따라 아련하게 오는데, 생을 흔드는 지금의 네 아픔은 망각이 일을 안 할 때 그 틈새를 비집고 얼마나 아리게 오겠냐고. 그래도 나는 살아보자 했다. 우리가 결국에는 할 수 있는 게 하루하루 살아내는 일뿐이니까. 이것 자체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슬픔이지만 또 반대로 생각하면 이토록 명확하게 방법을 보여줄 수 있는 건가 싶다고. 꾸역꾸역 해보자고 했다.


사실 죽음은 한 번도 우리 곁을 떠나 있던 적이 없는데 우리는 자꾸만 그것을 잊는다. 두려워서다. 감당하지 못할 '무(無)'의 무게에 압도돼 상상조차 사라지는 게 아닐까. 묵직한 죽음의 존재감은 내게 계속해서 말한다. 생이 있어 죽음이 있는 게 아니라, 죽음이 있어 생이 있다고. 삶이 죽음에 부수되는 것임을 자각하라고. 이 거대함 앞에 어찌나 초라한지. 우리는 내 의지로써 강해진다거나 의연해진다기보다는 그것 이외에 달리 방법이 없기에 여기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착잡한 마음으로 잠 못 들던 서울을 뒤로하고 아비규환의 월요일 밤은 망설임 없이 흘렀다. 출근길 버스에서 내려 광화문 8차선을 가로지르는 스타벅스 앞 십자형 횡단보도를 건너는 길, 근처에서 보통의 지난한 월요일을 살았던 어제의 타인을 떠올리니 표현할 길 없는 마음에 속이 시렸다. 타인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가까운, 나와 같은 월요일을 보낸 당신들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그랬을 것이다. 보통의 이름으로 애도했다.


그리고 남겨진 이들, 아니 남겨진 우리의 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한다. 그러나 여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살아내는 것이다.


그러기에 계속해서 실재할 것이다. 이 생에서의 만난 모든 당신들과의 기억은. 내 생이 사라지는 날, 그 지점에 닿아서야 비로소 함께 사라질 터이니. 남은 우리는 오래오래 기억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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