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멘신겐 (らーめん信玄)
삿포로에 살기로 마음먹은 후로, 밑도 끝도 없는 환상을 품었던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삿포로 라멘이었다. 그렇게 유명한 음식이니 현지에서 먹으면 엄청 맛있지 않을까 하는 환상. 기대치가 높으면 실망도 크다고 그렇게 환상 만으로 처음 맛보았던 삿포로 라멘에 충격을 받았다. 엄청 맛있었냐고? 아니, 엄청 기름지고 무지막지 짰다. 이런 게 도대체 왜 유명한 거야, 맛있는 건 둘째치고 건강에 괜찮은 거야?라는 물음표가 머릿속에 마구 떠올랐다. 지금은 길고 긴 추운 날을 보내는 삿포로의 겨울에 알맞은 음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땐 그걸 몰랐으니까.
어쨌든, 굳이 그 가게의 이름을 밝히진 않겠다. 나름 라멘 요코초 안쪽에서 잘 나가던 집이었고 삿포로 시내의 많은 라멘 가게들이 비슷한 맛으로 내어놓고 있었으니 그건 나름대로 '삿포로 라멘의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삿포로 라멘의 특징 중 하나는 ‘짠맛’이라고 말할 수 있다. 꽤 많은 일본인들이 맛으로 즐기는 이 짠맛은 한국인들에게는 좀 생소한 개념일 수도 있겠다. 미간이 띵 하도록 달게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 단맛을 짠맛으로 살짝 바꾸어보자. 이해가 되었는가. 삿포로 라멘이 일본인들에게 맛집이 될 수 있었던 요인중 하나는 그래서 그 짠맛에 있기도 하다. 분명 고급스러운 짠맛이나 맛있는 짠맛은 존재하지만 싱겁게 먹는 것이 트렌드가 된 요즘 이 부분을 잘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역시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 바로 이곳, 신겐이다.
물론 삿포로 시민들에게도 인기 있는 곳이긴 하지만 짠맛이 익숙하지 않은 유학 초기의 학생들에게는 독보적인 인기가 있었다. 내로라하는 가게들을 돌아다녀봐도 도무지 그 짠맛에서 매력을 찾을 수 없어 난 일본 라멘을 좋아하는 건 아닌가 보다 하고 포기할 무렵, 친한 한국인 유학생이 좋아하는 라멘집이 있다고 같이 가자는 제안을 했다. 그 손에 이끌려 신겐을 처음 찾았다. 위치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스스키노의 아래쪽 유동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골목 어귀에 있는 가게는, 외관도 동네 사람들이나 찾을 것처럼 수수해 보였다.
음식점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는 풍경은 너무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어서 그것만으로 심상치 않은 가게인가 보다 생각하는 일은 그다지 없었지만, 신겐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풍경은 살짝 묘했다. 서류가방을 든 아저씨와 유카타를 차려입은 연인, 꼬마아이의 손을 잡고 서 있는 아줌마,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여고생까지 다양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이런 걸 보면 신겐의 매력은 전 연령층을 아우르는 듯하다.
유독 추운 겨울이 긴 도시라 그런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집이면 대기의 앞줄은 가게 안쪽까지 들어가서 기다리게 된다. 배가 고픈데 밥 먹는 사람 바로 뒤에 서서 그 광경을 보고 있어야 하는 처량함이라니... 추우니까 따뜻하게 가게 안에서 기다리라는 상냥한 배려였을 거란 생각은 들지만, 생각지도 못한 잔인함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나도 자리에 앉아 겨우겨우 된장라멘을 받아들었다. 깔끔하고 연한맛의 국물이 마음에 쏙 든다. 짜지 않아도 이렇게 맛있는데 이런 집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 내게는 미스터리할 뿐이다. 보들보들한 차슈를 조각내고 온센 타마고를 곁들여 면과 함께 후룩후룩 라멘을 먹기 시작한다. 커다란 국자로 국물까지 마구 퍼먹고 나면 어느새 그릇은 바닥을 드러낸다.
거기에 내가 외국인임을 알면서도 열그릇 먹으면 한 그릇을 서비스로 주는 쿠폰을 줄까 하고 묻는, 얼굴 가득 수염을 기른 후덕한 주인아저씨의 개구진 미소가 사람의 마음을 훅 끌어당긴다.
주소 札幌市中央区南6条西8丁目
오픈 11:30~익일 오전 1:00
휴무 없음
가격 라멘 전품 760엔, 라멘 교자 공깃밥세트 5:00까지 1030엔, 5:00 이후 1360엔
홈피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