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트라미 퀸 (Pastrami Queen)
너굴군이 말했다.
“오늘 점심은 샌드위치야. 위치가 좀 애매한데.. 그래도 오늘은 그걸 먹어야 돼.”
뉴욕 시내에 넘치고 넘치는 게 샌드위치였다. 이곳에서 피자, 햄버거보다 훨씬 더 흔한 점심메뉴가 샌드위치라고 해도 토를 달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빵 사이에 온갖 종류의 채소, 고기, 소스 등을 켜켜이 끼우기만 하면 샌드위치의 이름을 붙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간단하면서도 광범위한 음식이 또 있을까. 맛있는 집도 물론 많다.
하지만 너굴군이 콕 집어냈으니 평범한 집은 아닐 터였다. 샌드위치는 만드는 과정이 너무 간단해서 어디에서나 팔지만 그만큼 좋은 집을 찾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온갖 유행의 풍파에 가게들이 추풍낙엽처럼 나타졌다 사라지는 일이 순식간인 뉴욕에서 한 가지 메뉴로 150년이나 이어온 것만 봐도 충분히 먹어볼 만한 것이었고 불평을 하려던 것도 아니었지만, 파스트라미 퀸까지 터덜터덜 걸어가서 샌드위치를 포장한 뒤 16석 남짓한 좌석은 꽉 차 달리 앉아서 먹을 곳이 없어 밖으로 나왔을 땐 나도 모르게 투덜거리고 있었다.
“파스트라미는 그냥 소고기 훈제 햄 아니야?”
한 손에는 샌드위치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센트럴 파크 쪽으로 걸어가면서 너굴군에게 뭐 그런거 먹자고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곳까지 오느냐는 말을 돌려서 했다.
그러자 너굴군은
“다 먹고 나서 네가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겠어.”라고 하며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테이블도 없이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풀어헤친 뒤에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일반 샌드위치용 식빵보다 훨씬 커다란 빵 안에 지름이 10센티미터도 넘게 빼곡히 들어앉은 검붉은색의 고기들을 목격하자 내 입에서 이상한 탄성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이게 도대체 뭐지?
내가 상식적으로 먹어온 샌드위치의 이미지는 총 천연색을 동원해 단면이 아름다운 음식이었다. 미색의 보들보들한 빵 안에 녹색의 로메인과 레타스, 붉은색의 토마토, 노랑색의 달걀, 선홍색의 햄 사이사이 새콤달콤한 소스가 들어있는. 그런데 이 커다란 빵 사이에는 녹색채소라곤 눈곱만큼도 없다. 오로지 잘게 다진 붉은 파스트라미뿐. 심지어 식빵조차 파스트라미를 먹고 싶은데 차마 수저로 퍼먹을 순 없으니 손잡이로 쓰도록 양옆에 붙여놓은 느낌이다. 무슨 맛일지보다 어떻게 먹어야 할지를 먼저 고민해야 하는 비주얼이라니 이렇게 파격적일 수가.
그런데 한 입 베어 물자 잘 숙성시켜 얇게 썰어낸 패스트라미가 안 먹어봤으면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내게 말한다. 그 찰진 감칠맛은 배가 불러도 마지막까지 먹을 수밖에 없게 하는 악마의 맛이다. 양상추나 오이 같은 채소의 아삭함이 샌드위치의 생명이라 믿어왔는데 보기 좋게 한 방 먹었다.
따로 넣어준 오이피클은 예상했던 새콤달콤은 없고 우리나라의 양념하기 전 오이지처럼 오직 짠맛만 있었다. 그래서인가 생각만큼 입안을 후레시하게 만들어주진 못했지만 상관없었다.
“Our World Famous Hot Pstrami”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맛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