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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iusduck Oct 27. 2018

어퍼 웨스트 사이드_뉴요커처럼 장을 볼까요?

자바즈   Zabar’s

지금으로부터 십수 년 전, 미국 드라마 ‘프렌즈’를 보고 또 보던 시절이 있었다. 딱히 영어공부를 하려던 건 아니고 그저 가벼운 유머가 좋아서였는데, 가끔 가다가 레이첼이나 로스의 손에 ‘자바즈’의 종이봉투가 들려져 있었다. 거의 소품처럼 지나가는 신에서나 나온 하찮은 물건이었지만 신기하게도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었다. 그때는 뭐, 우리나라 이마트나 그런 비슷한 대형 마트체인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의외로 유서깊은 식료품점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드디어 뉴욕에 가보는 날이 왔고, 당연히 가보고 싶은 가게 리스트에서 상당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그건 아마 나뿐만 아닐 것이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시트콤에서 슬쩍슬쩍 ‘자바즈’의 쇼핑봉투가 등장하는 걸 봐 온 사람이라면 묘한 기대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퍼 웨스트 사이드는 관광객의 입장에서 볼만한 것이나 먹을만한 것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래서였을까. 이 지역에서 가볼만한 곳들은 저마다 임팩트가 남달랐고 ‘자바즈’ 역시 그랬다. 

1934년부터 지금까지 지역민들에게는 품질 좋고 신선한 식료품을 공급하고, 관광객들에게는 미국적인 먹거리를 체험하게 해주고 있었다. 어느 책에선가 본 기억이 있는 구절이 생각나는데, 뉴욕에 사는 젊은 친구들이 밖에서 사 먹는 밥에 질렸을 때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그만큼 완전조리 식품 코너에 있는 음식들 모두 가정의 따뜻함이 있다.

 

오래된 붉은 벽돌 기둥에 선명한 주홍색 글씨로 새겨놓은 ‘자바즈’의 로고는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네 개의 입구는 똑같이 생겼지만 첫 번째 입구는 스낵바, 두 번째 입구는 식료품점으로 들어가도록 되어있다. 

계산을 마치고 이동하면 자연스럽게 네 번째 문으로 나오게 되는데 들어갈 수는 없다. 각각의 문은 상당히 엄격하게 그 역할이 정해져 있다.

입구 가까이의 올리브 절임 코너는 원산지와 절임 방법, 재료 등이 상세히 적혀있는 안내판을 달고 있는 데다가 맛도 볼 수 있어서 나처럼 올리브 절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발을 떼는 일이 쉽지가 않다. 서울에서 늘 유리병에 들어있는 것들만 먹다가 이렇게 신선하고 맛있는 올리브를 만나니 천국이 따로 없다. 미국 전역이 아닌 세계 전역에서도 손에 꼽히는 산지들에서 가져온 것들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올리브 절임 코너에서 눈을 돌리면 바로 어마어마한 양의 치즈들과 만난다. 뉴욕에서 손에 꼽는 치즈 숍이 몇 군데가 있는데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머레이 치즈 숍'과 윌리엄스버그의 '베드포드 치즈 숍', 그리고 이곳 '자바즈'다. 마음먹고 제대로 마음에 드는 치즈를 사려고 한다면 아마 하루는 꼬박 가게 안에 있어야 할 듯싶다.

우리는 완전 조리식품들과 샐러드, 정육, 생선을 바로바로 손질해 받을 수 있는 코너, 자루에 담아파는 신선한 커피 코너, 빵 코너들을 돌아보며 족히 두 시간도 훌쩍 넘는 시간을 자바즈 안에서 보냈다. 

머리 위에는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와 프라이팬이 주렁주렁 걸려있는데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아래서 식료품을 주문하고 손질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보다 보면 재래시장의 수선스러운 이미지가 오버랩되면서 한층 더 활기차 보인다.


2층으로 올라가면 각종 주방용품을 판매하고 있다. 조그마한 티스푼에서 덩치가 엄청난 가게용 에스프레소 머신까지 없는 것이 없는데, 그중 절반 정도는 자바즈의 상표를 붙이고 있다. 아니, 붙였다기보다는 두르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물건보다는 로고가 중요해 보이는 느낌을 주고 있어서다. 

주걱이나 앞치마, 머그컵 등에 '자바즈'의 주황색 로고가 새겨진 물건들을 보고 있으면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넣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우리는 가게 안에서 장을 보고 있는 많은 뉴요커들과 다름없이 시식도 하고 이것저것 비교도 하며 장바구니를 채워나갔다. 따끈하고 먹음직스럽게 오븐에서 구워낸 치킨과 화려한 샐러드들, 품질 좋은 바게트와 크라상, 예쁜 유리병에 들어있는 갖가지 음료 등 먹어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것들을 센트럴 파크 한 귀퉁이에 풀어놓고 피크닉을 즐길 때의 기분이란! 

게다가 따뜻한 햇살 아래 펼쳐진 음식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쏙 들었다. 이런 좋은 가게는 앞으로도 오래오래 같은 자리를 지켜주면 좋겠다. 






위치 : 2245 Broadway (지하철 1ㆍ2ㆍ3선 79th St. 역)

전화 : 800-697-6301

오픈 : 월-금(08:00~19:30), 토(08:00~20:00), 일(09:00~18:00)

홈피 : www.zabars.com


안에서는 많은 수의 직원들이 고객의 주문에 맞춰 물건을 손질하고 무게를 달아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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