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뱅 베이커리 Levain Bakery
뉴욕에 오면 꼭 먹어야 하는 게 있어.
뉴욕에서 제일 맛있는쿠키지. 안 먹고 돌아가면 언젠가 후회할 거야.
달콤하고 기름진 음식을 잘 안 먹는 줄 알았던 푸들양이 어느 날 내게 '뉴욕 최고의 쿠키'에 대해 말했다.
쿠키처럼 어디서나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뉴욕 최고라니, 나는 그런 단어들에 약해서 그 말 그대로 안먹고 서울로 돌아간다면 틀림없이 후회할 터였다. 마침 한가하게 차나 마시고 있던 우리들은 서로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벌떡 일어나 르뱅으로 향했다.
가게 이름인 르뱅(Levain)은 라틴어 levare를 기원으로 하는 프랑스어로, 부풀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발효종의 이름이다. 이름만 놓고 본다면 겉은 딱딱하고 속은 보드라우며 살짝 시큼한 맛의 사워도우빵을 전문으로 해야할 것 같은데 어째 발효와는 그닥 관계가 없는 쿠키로 유명한 집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막상 가 보니 가게의 한켠에 사워도우빵도 몇가지 팔고 있긴 했다. 음.. 그러고보니 고베의 모리야쇼텐 정육점이 정육 고기로 유명한게 아니라 고로케로 유명한 것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뉴욕 최고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으면서도 가게는 굉장히 조그마했다.
반지하인 데다 너댓사람 들어가면 입구까지 꽉 차는 그 조그만 가게 앞에 어찌나 사람들이 많던지 새삼 놀라고 말았다. 질서감이라고는 없는 사람들의 뭉텅이를 눈으로 잘 가려낸 후 줄처럼 보이는 곳의 끝에 서서 우리도 조그만 가게 입구로 빨려 들어가기를 기다렸다. 20여분을 개미 걸음으로 이동해 만난 작은 쇼케이스 안에는 심플하게 네 종류의 쿠키, 서너 종류의 빵이 들어있었다. 다만 무서운 속도로 점원들이 그 쇼케이스를 채우고 더 무서운 속도로 손님들이 그것들을 빼내가는 광경은 아주 볼만했다.
생각하고 고를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정신없이 주문과 계산을 끝내고 밖으로 나온 내 손에는 세 종류의 쿠키가 들려져 있었다. 쿠키 하나가 4달러. 5천원 가까이 되는 돈이다. 비싸다면 비싸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크기의 납작한 쿠키가 아니라 스콘처럼 동그랗게 부풀어 있는데 이거 한개로 끼니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억울하진 않다. 말아 쥔 아이의 주먹같은 쿠키는 방금 구워져 나와 따끈따끈 했다.
사실 쿠키라고 하면 납작하고 다소 딱딱한 식감에 파사삭 부서지는 모양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하지만 르뱅의 쿠키는 빵과 쿠키의 중간같은 식감이었다. 오븐에서 나온지 얼마 안되는 쿠키가 다 그렇긴 하지만 주먹처럼 동그란 모양이니 따끈한 르뱅쿠키는 더욱 그럴터였다.
동그랗게 부푼 초코칩 월넛 쿠키를 반으로 가르자 내 손가락에 버터기름을 묻히며 덩어리 초콜릿이 녹아 늘어져 내린다. 겉면이 살짝 바삭하긴 하지만 속은 보드랍고 촉촉한 질감이다. 버터의 폭향과 호두가 주는 고소함, 초콜릿의 단맛까지 조화가 어찌나 좋은지 과연, 왜 뉴욕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은 건지 이해가 됐다. 그래도 이런 음식에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엄청난 버터와 충격적일 만큼 단맛을 내는 설탕이 내 몸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리얼하게 느껴져서 차마 하나를 다 먹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르뱅 근처 계단에 앉아 쿠키를 하나씩 들고 오물오물 맛있게도 먹고 있는 청년들에게는 그런 걱정 따위를 하는 내가 이상하게 보일 것 같기도 하다.
위치 : 167 West 74th St.
전화 : 212-874-6080
오픈 : 월-토(08:00-19:00), 일(09:00-19:00)
홈피 : www.levainbake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