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뉴욕 라이프
상점의 입구에서부터 인도를 가로질러 차도 부근까지 이어지는 긴 차양막을 포치라고 한다. 사실은 그걸 뭐라 부르는지 잘 몰라서 건축과 관련된 자료를 마구잡이로 찾아봤었다. 내가 건축업에 종사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당연한 일이었다.
뜬금없이 왜 그것이 궁금했는가.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는 포치가 드리워진 건물이 꽤 많았는데, 도로에 멈춰 선 고급 승용차의 문을 벨보이가 열면 거기서 우아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나왔다. 그들이 포치의 그늘 아래를 똑바로 걸어가 건물 입구에 다다르면 도어맨이 예의를 갖춰 인사하며 문을 열어주는 장면을 왕왕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어퍼 이스트 사이드라는 동네는 그런 곳이었다. 바비 인형을 연상케 하는 조각 같은 미녀가 그림같이 차려입고 10센티미터도 넘는 하이힐을 신은채 애완견과 함께 우아하게 돌아다니는 광경을 식료품 가게 모퉁이에서 불쑥 접한다. 누구나 아는 명품 브랜드들이 동네 구멍가게처럼 입점 해 있고, 예술을 사랑한 갑부들 덕분에 마음 설레는 세계 일류의 뮤지엄들이 걸어서 이동할 만한 거리에 산재해 있다. 어퍼 웨스트 사이드가 일정 소득 이상의 유복한 가정을 가진 뉴요커의 보금자리라면, 어퍼 이스트 사이드는 화려한 뉴욕 라이프를 보여주는 뉴욕의 0.1% 최상류 층의 보금자리인 것이다.
무신경한 나지만, 간혹 정체를 알 수 없는 주눅이 들었다. 고급 브랜드의 플래그십 매장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거리에서는 아.. 괜찮은 옷들도 좀 챙겨 올 걸, 왜 이렇게 후줄근한 여행자 차림의 옷들만 가져온 걸까 나도 모르게 후회도 했다. 수십 개국의 백여 개가 넘는 도시들을 돌아다녔어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생각이다.
그제야 다른 도시에서는 그다지 볼 수 없었던 차려입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떠올랐다. 특히나 젊은 아가씨들은 너도나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잘 꾸민 채 돌아다니고 있었다.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뉴욕이 뭐 그렇게 특별히 다른 도시라고 여행자의 차림새까지 바꾸나 싶어서. 어퍼 이스트 사이드라는 동네에 발을 들여보니 막연하게나마 그런 현상들이 이해가 됐다.
뭐, 초 긍정의 성격인 나는 그런 주눅 따위 금방 떨궈내고 여행자의 자세로 돌아가 맛있는 커피 한 잔 들고 대로를 천천히 걸어다니는 일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기분 전환이 되어 이곳을 무대로 하는 드라마의 한 장면 속에 뛰어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곤 했다.
화려한 동네답게, 이곳에서 만난 음식점들과 샵들에서는 특유의 고상함과 고급스러움이 있었다. 매장의 작은 크기나 허름함은 그것들을 가리기는커녕 더 드러내 준다. 작은 단추 박물관을 방불케 하는 텐더 버튼스, 음식에서 알 수 없는 파워가 느껴지는 파스트라미 퀸, 독일 이민자들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쉘러 앤 웨버 등은 수없이 방문한 다른 지역의 많은 가게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이미지로 뇌리에 남아있다.
뮤지엄 관람을 목적으로 몇 날 며칠 어퍼 이스트 사이드를 오가는 사이사이, 그곳들은 그래서 또 다른 즐거움이 되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