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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장르 Sep 06. 2021

컨텍트(Arrival)

언어는 우리의 무의식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가





- 소통에 관하여


#소통, 버릇처럼 열어보는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많이 발견할 수 있는 태그가 아닐까 싶다. 무엇이 우리를 소통에 대하여 꾸준하게 갈망하도록 하는가. 또한 우리는 그토록 바라던 소통을 얼마나 하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가 갈망하는 만큼 소통을 하고 있는가. 다른 말로, 우리에게는 지금 소통의 대상이 얼마나 있는가.


타인과 음성, 텍스트를 주고받는 것만이 소통은 아니다. 나 스스로를 타 인화시켜 행하는 소통 또한 소통이 될 수 있다. 세상이 우주의 가장 작은 단위로부터 확장되듯, 나 또한 나 자신으로부터 타인으로 세상으로 확장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타인과의 소통에 앞서 스스로와의 소통방법을 익히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 언어에 관하여


어떠한 언어를 배우게 되면 그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방식으로 사고하게 된다는 대사가 꽤나 인상적이었다. 적어도 나에겐 말이다.


우리나라 언어에서는 젊음과 늙음을 사전에서부터 다르게 정의하고 있다. ’ 젊은 ‘은 형용사로, ’ 늙은 ‘은 자동사로. 어쩌면 젊음은 한때이며, 나이 드는 것은 선택 없이 진행된다는 것이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언어에서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 젊은 ‘과 ’ 늙은’이 모두 형용사로 되어있는 타 언어와는 다른 점이라는 것이 꽤나 흥미로웠다.


언어는 삶의 흔적이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삶에 임하는지, 언어를 보면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외계인의 언어를 익힘으로써 외계인처럼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 아마 이 말을 상징화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저 알파벳 모양이 달라 생기는 차이가 아닌. 문장의 구성과 단어 배열 그리고 그들이 주로 선택하는 단어에서 그들이 사고하는 방식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타인들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등.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우리도, 한국어라는 틀 아래 각자 다른 어투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주로 환경, 경험, 그리고 꾸준히 듣고 자랐던 말 등에 영향을 받아 형성되며, 각자의 모국어가 만들어질 때 중심축으로 사용되는 요소인셈이다. 어쩌면 우리가 평생에 걸쳐 다듬어야 하는 대상은 각자의 모국어이지 않을까.





- 미래에 관하여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어 하곤 한다. 적어도 내 주변은 그렇다. 아마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스스로의 미래를 아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닌듯하다. 미래를 알게 되었다고 했을 때 그 모습이 내가 원하던 모습이 아니라면 그것 또한 불행일 것이고, 원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해도 이미 결과를 보았기 때문에 인생에 대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아직 미래의 그 시점을 맞이하기에는 준비되지 않았더라도. 물론 결론을 알고도 노력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는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어쩌면 미래의 불확실성이 우리의 인생을 조금 더 빛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치 있는 것은 결과가 아닌 결과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일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떠한 일을 이룬 것을 회상하곤 할 때, 결과보다는 힘들었던 과정을 스스로가 더 비중 있게 다루는 것을 보면 말이다.





- 폭력에 관하여


사람들은 대부분 최후의 방법으로 폭력을 제시하곤 한다. 혹은 사람들의 주위를 분산시키기 위해, ’ 우리는 당신들을 위해 이렇게 까지 합니다.‘ 따위의 목적으로 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어쩌면 폭력은 문제를 가장 단시간에 마무리 짓는 가장 효율적인 임시방편이 아닐까 싶다.


자극적인 행동은 자극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영화’ 컨텍트‘에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가장 먼저 이 방법을 사용했으며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것을 지켜본 다른 국가도 같은 방법을 택하려 했다. 무능하게 보이고 싶지 않은 조급함에서 나온 선택이 아닐까 싶다.


다시 말하자면, 폭력은 사람들의 불안함을 나타낸다. 대화를 통하여 불안함을 해소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불안함을 감추기 위해 폭력이란 망토를 둘러 강한 사람으로 보이는 쪽을 택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후자는 빠르고 강렬하다. 하지만 빠르게 타오른 불은 쉬이 꺼지는 법. 어쩌면 둘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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