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손맛, 계절을 담다 : 프롤로그
프롤로그
"장금아, 이리 와서 간 좀 봐봐."
그렇다. 할머니 집만 가면 나는 장금이가 된다.
맛에 대한 뛰어난 감각이 있는 것도 미식가도 아니지만,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말했다던 어린 장금이의 대사처럼 나도 입안에 머무는 것들을 얘기한다. 짜다, 싱겁다, 맵다, 시다, 달다 등등. 가끔 어떤 맛이 나는지 몰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때면 사투리가 튀어나온다.
"거시기 쪼오까, 음."
간을 맞추고, 맛있게 먹는 것. 그것이 할머니 음식에 대해 내가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이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쏟는 정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할머니의 음식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진짜 맛있다." 이러한 반응을 보내면 할머니는 내가 본인의 손맛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렇다고 이야기하지만 할머니의 음식은 정말 맛있다.
단순히 맛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때를 잊어버리지 않고 맞춰 먹어야 하는 음식들을 만들어주신다. 동지에는 팥죽, 정월대보름에는 찰밥과 나물 반찬, 생일에는 시루떡 등 할머니의 음식들과 함께하다 보면 달력을 확인하지 않아도 어떤 절기가 작은 글씨로 쓰여있을지 가늠할 수 있다.
어릴 때와 비교해 보면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을 꼽으라면 할머니 음식에 대한 나의 입맛이다. 예전에 먹었던, 만들었던 것들이 이따금 떠오를 때면 할머니한테 전화를 한다.
"그때 이거 어떻게 만들었더라?"
"먹고 싶어? 주말에 해줄게."
요리를 하는 것이 힘들다는 걸 아는 나는 에둘러 물어봤고, 그걸 눈치챈 할머니는 만들어주신다고 먼저 이야기하신다. 혹은 우연처럼 먼저 전화가 오기도 한다.
"주말에 추어탕 만들어둘 테니깐 와서 먹어."
이 이야기는 할머니의 요리법을 담지 않는다. 그저 자라오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할머니의 주방에서의 일들을 기록한 것들이다. 시간이 지나면 잊게 될까 불안한 것들이 생겨나는데 그중 하나가 할머니가 해주신 음식들에 대한 맛과 할머니가 해주셨던 말들이었다.
불안해서 쓰기 시작했고, 불완전한 이야기들을 담아낼 것이다. 그렇게 할머니를 사랑하는 손주가 할머니의 요리를, 할머니의 달력을, 할머니의 지혜를 담아낸 글의 모음이 될 것이다.
할머니의 손맛 : 계절을 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