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사일

수신자 부담

by 잔르

오랜만입니다, 벌써 8월이네요.
저 문장에서 어느덧과 벌써를 고민하다 늦었다면 믿으실까요.

유난히 더운 여름입니다.
그래도 어제의 비 덕분인지 오늘은 선선한 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나 더운 여름이면, 이 온도에 편승해 다른 이에게 뜨거운 감정을 전달하고 있는 건 아닌지 늘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몸 안에 열이 가득해진 것 같습니다. 가득하다 못해 몸 안의 모든 것이 기화된 느낌입니다.


최근에 어떤 분이 본인의 인생 이정표를 하나 알려주셨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면 화병이 나는거여. 말을 참다 보면 조커 되는 거."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죠.
"요령껏 하는 게 어른의 기술이고, 해봐야 느는 것."

그렇게 통달했냐고 묻는 제 질문에
통달하지 못한 본인은 "욕" 할 사람을 항상 만들어둔다고 하더라고요.


하고 싶은 말, 근래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하고 지낸 것 같긴 합니다.

말하기 대신 침묵을 택하고, 침묵 대신 사라짐을 택하고.

근 6개월간 있었던 모든 일들을 함축해서 말하면 그렇게 될 것 같네요.

물론 그 사이에 즐거웠던 기억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벌써 8월"이란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저는 요즘 의도치 않게 장기 프로젝트 중입니다.
작년에는 리듬게임을 만들더니, 상반기에는 음악에 대한 데이터를 모으고 시각화 작업을 했는데,

이번에는 음악과 관련된(치료가 섞인) 서비스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주제가 비슷하니, 고만고만할 것이라는 생각은 큰 착각이었습니다.

고려할 것도, 새롭게 만들어야 할 것도 너무나도 많지만 그럼에도 재밌게 해 보자는 다짐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재미, 그 재미라는 단어가 저한테는 꽤나 중요한 녀석이었더라고요.

재미가 없으니, 그만두는 것도 쉬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언제까지 재밌는 것만 하고 살래"라는 질문이 꼭 따라붙지만, "언제까지 살지 모르니 재밌는 걸 하면서 살겠다"라는 이야기로 답하고 싶어 졌습니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근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것들이

어느 노트에 스쳐 지나가면서 쓰였던 문장들이더라고요.
어떤 곳에서 일을 하고, 누구를 만나고, 언제쯤 공부를 하고, 그리고 사람이 되고 싶다던 다짐들.


자꾸만 부족했던 것들이 떠오르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꽤 그리운 나날이기도 하고요.

예상보다 글이 길어졌습니다.
긴긴밤 평온하시길.


- 싱잉볼 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있는 사람 드림


P.S. 아, 복숭아가 제철입니다. 딱딱이와 말랑이 그 사이에서 복숭아와 눈치게임 중입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말랑이가 되어버리는 녀석을 보면서 늘 똑같이 살 수 없음을 깨닫고, 매일의 내가 조금씩 다르게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란 생각을 합니다(라는 진지한 생각은 1초 정도 하고). 말랑한 복숭아를 어떻게 하면 잘 잘라먹을지, 나오는 과즙을 흘리지 않고 잘 먹는 방법에 대해서만 계속해서 생각하는 나날입니다. 이 계절에 복숭아를 먹고, 그 복숭아를 잘 먹는 게 멋진 어른의 일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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