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육일

수신자 부담

by 잔르

여름이면 응당 매미소리가 들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많던 매미들은 어디 갔을까 하는 찰나 그들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매미 소리, 같이 듣고 계신가요?


긴 시간 자라나, 열흘 간의 울음 끝에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문득 저에게도 그런 열흘이 생긴다면 무엇을 할지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돈과 시간의 제약이 없다는 조건 하에서요.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간다거나, 못 먹어봤던 비싼 음식을 먹는 걸 떠올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꽤나 규칙적으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시간에 자고, 제 때 일어나 아침인사하고, 직접 만들어 먹는 밥.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야겠다고요.


그들이 좋아했던 것들 하나씩 사들고 가, 전해줄 수 있는 여유와 다정한 단어들이 뭉친 문장들을 말로, 할 수 있는 용기를 겸비하는 건 기본이고요.



지난번 싱잉볼 소리가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며칠이 지난 지금은 그때의 공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그 소리가 몸을 휘감는 느낌이에요.


아, 제가 요가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나요? 건강상의 이유로 무게와 싸우는 운동은 잠시 멈추고, 요가를 하고 있습니다. 늘 힘주어 사는 저에게 힘을 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해보니, 요가는 힘이 있어야 더 할 수 있는 운동 -잘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표현하지 않은 건, 요가는 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그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의 더 나은 점을 관찰하는 시간, 그 자체- 인 것 같습니다.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반대로 뺄 수 있더라고요.


요가에서 또 어떤 시간이 좋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사바아사나를 하고 매트 옆에 웅크리고 누운 후, 바닥에 손을 대고 조심스레 일어나는 그 순간과 가슴 앞에서 합장하고 스스로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그 시간을 가장 좋아합니다.


요가 수업이 끝나가기 때문 아니냐는 농담을 하신다면 아니라고는 못하겠습니다만, 하루 중에 유일하게 나를 향한 시간이라 좋습니다.


몇 년 전, 몽골 여행 내내 게르에서 지낸 적이 있습니다. 게르에 들어가고 나갈 때면 문 틀에 계속 머리를 부딪혔습니다. 그때 문득 내가 얼마나 꼿꼿하게 서있는가, 그게 단단함이 아닌 고집스러움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곱씹었습니다. 그렇게 겸손을 부르는 문이라는 칭호를 붙여주며, 이 여행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웃으며 넘겨야겠다는 다짐도 했었죠.



요즘 자꾸만 사람을 떠올립니다.

좋아한, 싫어한, 불편한, 미안한 등등 여러 꼬리표를 붙인 채 말이죠. 좋아하는 꼬리표를 단 이가 한순간에 그리움으로 바뀌는 걸 보면 인간의 감정이 한 끗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더더욱 좋아하고, 즐거운 것들을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다짐도 하고요.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 계속 길어지네요.

오늘은 이만하겠습니다.



- 연보라색 우산을 들고 퇴근하는 길에 드림



P.S. 복숭아는 드셔보셨나요? 어제는 냉장고 한편에 있던 콩나물을 김치찜에 잔뜩 넣어먹었습니다. 콩나물의 아삭함과 김치의 아삭함이 오래간만에 무언가를 씹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각각의 다른 재료가 어떤 행위로 같은 소리를 낸다는 게, 그게 즐거움이자 사랑 아닐까란 엄청난 의미부여를 하다 목에 콩나물이 걸려버렸습니다. 또 -첫눈에 반한다는 게 이런 건가라는- 생각을 그만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나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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