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칠일

수신자 부담

by 잔르

지난 글에 좋다, 즐겁다, 그립다 등 동사들이 많아 살아있는 것 같다고 하셨죠. 그 말을 듣고 보니, 유독 감정이 들어가는 동사들을 자주 말하고 썼던 것 같습니다.


짧은 기간에 빠르게 가까워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늘 끝에 물어보더라고요.

"오늘 즐거웠어요?"

"즐거웠으면 된 거예요."


어떤 사람과 빠르게 가까워지는 것이 동사의 일이라면, 그 사이에서 동사의 역할이란 서로를 긍정적으로 연결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동사들과 함께 지내려고 한 이유는 올해 겨울부터 여름까지가 저에게 너무나도 모질었던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들었던 말들, 문장들, 단어들 모두 생채기를 남기더니 구멍이 나버렸습니다. 이쯤 되면, 어른이라면,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무너지는 건 여전합니다.


듣지 않아도 되는, 말도 안 되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직도 그런 걸 골라내는 능력은 부족한가 봅니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자주 하시는 말이 있으신가요? 저는 지난 시간 동안 "이기셨네요."라는 말을 자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줄곧 막내여서 그랬나 싶긴 한데요.


요즘 드는 생각은 그냥 지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 졌습니다. 이기고 지는 게 없다고 하지만 굳이 정해야 한다면 늘 지는 편이 되고 싶어요. 이길 줄 아는 이가 질 줄도 알 테니깐요.


사촌동생이 유치원생 때쯤 윷놀이를 하다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습니다.

"모가 제일 좋은 거야?"


저는 그런 건 없다고, 네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했는데, 이제는 모가 제일 좋다고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모를 던지고, 말을 움직이고 그래도 남는 게 있다면 그 속에 재미를 담아 함께 하는 이들을 한 번 더 떠올리라고 말이죠.



언젠가 저에게 사람을 만나는 게 지치지 않냐고 물어보신 적이 있죠.


글쎄요, 지치다가도 힘을 얻는 게 사람인 것 같아요.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습니다. 특히나 요즘 같이 혼란스러울 때는요.


조심스럽지만 저는 제 팀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정신없는 와중에도 프로젝트를 합니다. 저와 프로젝트를 하면 좋은 점이라고는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과 무제한으로 칭찬이 공급됩니다. (물론 수요 없는 공급이지만요)


그럼에도 계속 공급하는 건, 입가에 미소 가득한 사람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더 하면 피하겠다, 도망가겠다고 하지만 그것과 다른 몸의 반응을 늘 저에게 들키곤 합니다. 저는 그 미소를 수집하고 싶나 봐요, 한 때는 미소수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웃음수집가가 아니라 미소수집가가 되고 싶은 건 왜일까요..)


근래 보고 싶은 미소가 있습니다.

언제쯤 볼 수 있을지 참 모르겠네요.


이 글을 보는 내내 미소를 짓고 계셨을까요?

어떤 표정이셨는지 궁금해지는 저녁입니다.



- 오래간만에 얇은 긴팔 셔츠를 입은 이 드림



P.S. 어제가 입추였습니다. 처서 매직이라는 말이 있던데 날이 선선한 거 보니 입추도 마법을 부렸나 봅니다. 긴긴 더위에서 잠시 벗어나 시원한 주말 보내시길 바라며. 그리고 내일은 말복이더라고요. 초복, 중복 때 드시지 못하셨다면 꼭! 몸보신을 하시고, 챙겨드셨더라도 또 드시길 바랍니다. 아, 좋은 거 드신다면 잠시 제 생각도 해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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