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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tle Latte 젠틀라떼 Nov 29. 2018

[퇴사일기 #1] 저, 퇴사하겠습니다

버티는 건 답이 아니란 걸 알았거든요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아침이었다. 오전 6시에 기상알람을 듣고 게슴츠레 눈을 떴다. 하지만 따뜻한 이불 안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팔을 뻗어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 알람을 끄고 다시 누웠다. 10분 후에 알람이 다시 울리면 그때 일어나기로 했다. 잠시 후 알람이 신나게 울어댔다. 10분이 1분처럼 느껴졌다.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켜 침대를 나와 욕실로 향했다. 세수를 하고 지난밤에 감은 머리는 물기를 살짝 묻혀 정돈했다. 방으로 돌아와 정장을 입고 타이를 맸다. 기분전환을 위해 향수도 뿌렸다. 그리고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겨울을 향해 가는 10월 중순의 이른 출근길에는 어둠이 섞여있었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 동작역에 가서 9호선 여의도행 일반열차로 환승했다. 평소엔 급행열차를 탔지만 그날만큼은 사람들 틈에 꽉 끼여 출근하고 싶지 않았다. 출근길 지옥철은 회사에 도착하기 전부터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존재였다. 열차 안에서 그날의 업무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음악 소리도 위안이 되진 못했다. 답답한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에 아침의 상쾌한 공기를 더 맡고 싶었다. 재직중이던 S사는 여의도역에서 가까웠지만 한 정거장 전인 샛강역에 내렸다. 밖으로 나와 바닥에 떨어진 은행과 낙엽 사이를 걸어 회사로 향했다. 그러던 중 문득 결심이 섰다.

“퇴사를 해야겠다.”


  순간적인 결정이었지만 고민의 시간은 길었다. 커리어 골과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었고, 이 상황이 가까운 시일 내에 바뀌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 수 개월 간 큰 스트레스였다. 내 자신이 소모되어갈 뿐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월급 외에 회사를 다니고 있는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직장생활에서 자신의 경력을 바꾸는데에는 부서이동과 이직이라는 선택이 있다. 그러나 부서이동은 불가능했고, 이직은 불확실했다. 주어진 상황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천천히 걷다보니 무조건 버티는 것은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남은 것은 퇴사 뿐이었다. 퇴사는 경력관리나 경제적으로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컸다. 하지만 인생을 길게 봤을 때 나 자신을 재충전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만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있었다.


  퇴사를 결심하고 난 후 팀장에게 내 뜻을 전하기까지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당장 처리해야 할 현안들이 많아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웠다. 팀이 돌아가는 상황과 팀장의 기분까지도 고려해야 했다. 그러던 중 팀 주간회의를 마친 후 개인면담을 요청했다. 그리고 퇴사하겠다는 말을 꺼냈다. 결심은 확고했지만 퇴사라는 단어를 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말 끝에 괜히 어색한 미소가 지어졌다. 팀장의 눈빛이 흔들렸다.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가능한 선에서 배려를 해줄테니 이직을 준비해보라는 제안도 했다. 하지만 직속상사가 뻔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다른 회사에 면접을 보러 다닐수는 없는 일이다. 팀장의 성품이 워낙 착했기에 한 번쯤 지나가는 말로 해볼 수 있는 제안이었다. 양해를 구하며 바뀌지 않을 결정이라고 답했다. 회의실의 공기가 무거웠다. 반대로 내 마음은 다소 가벼워졌다.


  인사팀에도 퇴사 의사를 밝혔다. 인사팀장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간 고생이 많았고 내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으레 하는 말일수도 있었겠지만 힘들었던 회사생활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주는 것 같아 고마웠다. 다음으로 옆자리 사원에게도 커피 한 잔 함께 하며 사실을 전했다. 똑똑하고 눈치가 빠른 그 녀석은 내가 팀장과 인사팀장을 차례로 면담하는 걸 보고 짐작했다고 말했다. 순간 직장 사수인 내가 회사 문제로 고민하는 모습을 너무 내비친건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퇴사라는 단어를 말하는 시간은 짧았지만, 그로 인한 체감 상의 하루는 참 길었다. 그만큼 꺼내기 어려운 말이었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퇴근길에 시원섭섭이라는 말로 담지 못할 복잡한 감정들이 교차했다. 이 결정이 과연 맞는 것인지에 대한 일말의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주사위는 던져졌고 후회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그 순간의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퇴사를 한 사람들 중 간혹 후회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이유는 대부분 재취업과 경제적인 어려움이다. ‘그때 좀 더 버텨볼걸’하는 생각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미 지난 일이다. 취업에 대한 조급함만 키울 뿐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되는대로 취업을 하면 퇴사 전과 똑같은 고민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퇴사를 후회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 회사에서 주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드는 생각일 수 있다. 살다보면 가끔씩 과거에 왜 그런 결정을 했었는지 아쉬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뿐 당시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자기합리화일지언정 내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다.


  나처럼 퇴사라는 선택을 한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후회라는 단어를 되뇌이며 또 다른 종류를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면서 미래를 준비하자. 생각보다 인생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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