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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tle Latte 젠틀라떼 Jan 02. 2019

[퇴사일기 #12] 취미는 독서

뻔한 거짓말을 일상으로

  최소 6개월, 길게는 1년 정도 백수생활을 예상했다. 빡빡한 직장생활 때문에 놓쳤던 여러 일들을 하려면 그 정도의 시간은 필요했다. 1순위는 책을 많이 읽는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지만, 대학 시절 그 중요성을 더 깊이 깨달았다. 책을 읽을수록 대화의 즐거움은 진해졌다. 나의 매력을 높이고, 상대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책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문, 사회, 경영, 과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두루 펼쳐 보았다. 독서는 인간이 지식과 시야의 폭을 넓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한다. 시간만 낸다면 비용도 많이 들지 않는다.


  대학생 시절에는 1년에 100권 읽기를 시도했다.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했다. 읽은 책은 블로그에 꼭 후기를 남겼다. 꾸준히 포스팅하다 보니 몇몇 출판사에서 정기적으로 책을 보내주기까지 했다. 도서계의 인플루언서였다고나 할까. 어느 순간 블로그를 하기 위해 책을 읽는 건지 헷갈리기도 했지만, 그만큼 책을 많이 읽은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한 달에 한 권 읽기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책을 읽고 난 후 주변 사람들과 감상을 나누기란 더욱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영화는 같은 작품을 본 사람들이 많아도 책은 그렇지가 못했다. 그래서 독서모임을 해보고 싶었다. 같은 책을 읽고, 같거나 다른 생각들을 치열하게 공유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트레바리라는 독서클럽을 만났다. 독서모임을 콘텐츠로 하는 스타트업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독서토론과 다양한 분야 사람들과의 교류에 니즈가 있는 사람, 즉 나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인 기업이었다. 회비가 적지 않았지만 고민 없이 가입했다. 첫 모임은 어색했다. 자기소개를 하는데 직업을 묻는 질문에 백수라고 대답하고 멋쩍게 웃었다. 모임에는 회사원에서부터 의사, 변호사, 교사, 작가, 바리스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직업만큼이나 이야기의 폭도 넓었다. 1년 간 정치, 페미니즘, 과학 등 각기 다른 장르와 주제의 책을 읽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평생 함께 교류하고 싶은 사람들도 얻었다. 이후 몇몇 멤버들과 별도의 독서모임을 꾸려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의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삶의 활력소 가운데 하나이기에 계속 잘 꾸려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난 주변 사람들에게 독서모임을 꼭 해보라고 권한다. 어떤 사람들이 모여 어떤 컨텐츠로 진행하든 좋다. 친한 지인들의 모임이어도 좋고 트레바리와 같은 서비스도 괜찮다. 지인들끼리 모였더니 잡담 위주로 흘러갈 수도 있고, 유료 독서모임에 가입했는데 책보다는 인적 네트워크에 관심 많은 사람들로 인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시도 자체만으로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타인의 다른 의견을 청취하면서 시야를 넓힐 수 있다. 지적 자극을 얻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고전이나 철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편인데, 그 분야에 풍부한 독서경험과 지식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서 많은 자극을 얻었다.


  하지만 만약 그동안 책과 너무 멀리 떨어져 살았다면, 독서모임부터 시작하는 것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 대화를 따라가기 어렵거나 적응이 안 되어 책과 더 멀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선 책과 친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서점에 자주 들르자. 많은 사람들이 카페나 영화관에는 자주 가면서 서점은 잘 가지 않는다. 물론 인터넷으로도 책을 쉽게 살 수 있지만, 서점에 가면 다양한 책을 직접 읽어볼 수 있는 데다 최신 트렌드도 만날 수 있다. 요즘 서점에는 책 외에 디지털기기나 디자인 문구도 볼 수 있어 눈이 즐겁다. 1석 3 조 이상의 benefit이 있는 곳이니 서점을 카페처럼 가보는 습관을 적극 권한다.


  서점에 가는 습관을 들였다면, 책을 사는 습관으로 넘어가길 추천한다. 읽어야 할 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것도 좋은 독서 방법이다. 내용이 가장 중요하지만 표지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살 수도 있고 우연한 기회에 저자 사인회가 있어서 살 수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마음에 드는 책들을 사서 책장에 꼽아두었다가 책을 읽고 싶을 때 골라서 읽는 것이다. 과소비라고 할 수도 있지만, 책에 대해서만큼은 과소비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충동구매에 비하면 금액도 크지 않다. 게다가 읽고 나서 중고서점에 되팔거나 관심 있는 친구에게 선물할 수도 있다. (단, 책을 선물 받고 기뻐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내가 그렇게 책을 안 읽는 사람으로 보이나' 하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서평을 쓰는 것도 좋다. 글을 쓰면 본인의 생각을 더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다만 서평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또한 연관성 있는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는 것도 책에 애정을 갖는 좋은 방법이다. 책을 본 후에 영화를 보거나 영화를 본 후에 책을 읽는 것 모두 나름의 매력이 있다. 디테일한 서술에 있어서는 책이 앞서지만, 화면이 전해주는 생동감은 막연히 상상만 했던 책 속의 장면을 현실로 만들어 준다. 이 외에도 독립출판 책들이 가득한 동네 책방이나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 같은 핫플레이스를 가보는 것도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방법들 중 하나다.  


  흔히 이력서를 쓸 때 취미란에 독서(물론 요즘 이력서 양식에는 잘 없지만)라고 적곤 한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그때마다 스스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름 다독을 하고자 했음에도 독서를 취미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얼마나 자주 독서를 해야 취미라고 할 수 있을까', '독서가 취미일 수는 있을까'를 자문해보기도 했다. 그러던 내가 백수생활 동안에는 분명 독서를 취미로 삼았다. 이력서 취미 란에 독서라는 단어를 처음 써 본 지 10년 만의 일이다. 1년 동안 거의 매일 책을 읽었다. 하루 종일 책만 본 날도 있었다. 침대에 누워서도 보고, 카페에 앉아서도 보고, 심지어 동네 펍에서 혼술을 하면서 보기도 했다. 그 순간순간이 정말 행복했다. 다시 직장생활을 하는 지금, 그때만큼 책을 읽지 못하는 현실이 아쉽다. 비단 퇴사가 아니더라도 인생에 여유로운 순간이 찾아온다면, 나는 다시금 독서를 취미로 만들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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