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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tle Latte 젠틀라떼 Jan 04. 2019

[퇴사일기 #13] 여행 어디까지 가봤니

유럽 배낭여행의 한을 풀다

  퇴사 이후 6개월 동안은 구직활동을 하지 않기로 했다. 전직장인 K사의 상사와 동료들로부터 재입사 권유도 받았지만 지원하지 않았다. 대신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추진했다. 바로 유럽여행이었다.

  유럽 배낭여행은 오랜 로망이었다. 대학시절, 방학이면 유럽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어학연수 중에 틈틈이 여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저마다 SNS에 각 도시의 매력적인 모습과 유구한 역사적 장소, 그리고 축구경기를 자랑했다. 나 역시 유럽으로 향하고 싶었지만 여건이 되질 않았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 몇몇 국가를 가보긴 했지만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가보지 못한 아쉬움이 가슴 한켠에 남아 있었다.

  유럽을 처음 가본 건 퇴사 한 달여 전이었다. 바쁜 업무 때문에 미루던 뒤늦은 여름휴가였다. 고민 끝에 서유럽과 동유럽의 한 도시씩 가보기로 했다. 목적지는 런던과 프라하로 정했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 처음 발을 내디딘 순간, 엄격한 입국심사에 살짝 쫄기도 했지만 설렘이 가득했다. 4일 동안 도심 곳곳을 누볐다. 타워브릿지와 템즈 강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고, 대영박물관을 둘러보며 이집트 국민들의 '빡침'을 예상하고, 대대적 공사가 예정된 빅벤을 배경으로 많은 사진을 찍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인터넷 카페를 통해 만난 동행과도 스타일이 잘 맞아 더 즐겁게 다닐 수 있었다.(진호야 고맙다) 런던에서의 모든 시간이 한순간에 지나간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행복했다.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보지 못한 게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프라하로 이동했다. 동유럽 특유의 건축물과 야경은 단연 최고였다. 프라하성과 까를교의 야경을 보며 마시는 흑맥주는 잊지 못할 맛이었다. 연인과 함께라면 절로 사랑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도시였다. 그래서인지 웨딩포토를 촬영하는 커플이 많기도 했다. 프라하에서는 동행이 없어 살짝 외롭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독일 출장 중이던 친구가 나를 보러 비행기를 타고 와준 일은 정말 감동이었다.(대근아 고맙다) 3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렇게 나의 첫 유럽여행은 마무리됐다.

  퇴사 후 곧장 유럽으로 떠나고 싶었지만, 날씨가 추웠고, 연말 일정이 많았다. 고민 끝에 여행하기 좋은 날씨일 3월 말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당장 여행이 그리웠기에 가까운 싱가폴로 떠났다. 야경도 즐기고, 칠리크랩도 먹고, 현지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우연히 만나 기대 이상의 알찬 시간을 보냈다. 여행도 즐거웠지만 좋은 인연을 만나 더 뜻깊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유럽 여행을 준비했다.

  목적지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스페인이었다. 국경이 접해 있어 이동이 수월했고, 남부 유럽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여행하고 싶었다. 비록 배낭이 아닌 캐리어와 함께였지만 오랜 로망을 실현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그들의 위대한 역사를 느끼고, 포지타노의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됐다. 세계 3대 미항이라는 나폴리는 부산항을 연상케 했다. 피렌체 두우모에 올라 냉정과 열정사이 OST를 듣던 순간은 평생 잊을 수 없다. 베니스의 바다는 날씨 탓에 을씨년스러웠고, 니스와 칸의 바다는 지중해에 대한 환상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파리의 에펠탑은 매일 봐도 좋았고, 친한 동생과 어머니를 파리에서 만나 반가웠다.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가우디의 천재성은 가히 놀라웠고, 비를 맞으며 관람한 축구경기에서 메시가 골을 넣어줘서 기뻤다. 세비야의 탱고는 열정적이었다. 마드리드는 활기가 넘쳤고, 호날두와 그리즈만의 만남은 그 자체로 나를 흥분케 했다. 다시 찾은 런던 역시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환상적인 한 달이었다. 여담 하나를 덧붙이자면, 파리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났다. 한국에 돌아오면 찾아가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귀국했을 때 그녀는 이미 남자 친구가 생긴 상태였다. 아픈 마음을 삼켜야 했다.


  여름에 찾은 오키나와까지, 1년 동안 6개 국가 13개 도시를 여행했다. 퇴사 후 세계여행을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내세울 것 없지만 행복한 기억이다. 인생에서 여행은 중요하다. 나에게 휴식을 주는 동시에 시야를 넓힐 수 있다. 여행에서의 다양한 경험은 살아가면서 다양성을 존중하고 새로운 사고를 하는데에 도움이 된다. 비용이 많이 들고 휴가를 길게 내기 어려워 여행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가능할 때 많이 다녀보라고 말하고 싶다. 시간은 돈을 주고 살 수 없기 때문에 미래만을 기약하며 여행을 미루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까지 여행과 출장으로 미국, 중국, 일본, 홍콩, 대만, 필리핀, 태국, 베트남, 싱가폴, 인도네시아, 카자흐스탄, 요르단,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체코에 가봤다. 아직 발을 디뎌보지 못한 북유럽이나 남미, 아프리카도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 올해에는 유럽 1개 나라 이상을 가보는 것이 목표다.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올해 꼭 떠나보자. 특히나 퇴사를 했다면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이라는 선물이 생긴다. 현실적인 고민도 중요하지만 한 번쯤은 길게 여행을 떠나보길 바란다.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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