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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tle Latte 젠틀라떼 Apr 22. 2021

[첫 번째 편지] 엄마, 저 운동 열심히 하고 있어요.

술은 마시지만 건강 잘 챙기고 있답니다.

엄마, 전 서울에 잘 도착했어요. 주말의 끝자락이라 고속도로가 많이 막혔는데 누나, 매형과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면서 재미있게 올라왔어요. 휴게소에 들러 핫도그랑 통감자도 먹었어요. 코로나 조심하려고 포장해서 차 안에서 먹었어요. 


엄마가 환자복 입은 모습을 오랜만에 봤네요. 2017년에 혈당 조절이 안 돼서 입원하셨던 이후로 3~4년 만인 것 같아요. 그때 아빠 전화를 받고 고속도로를 마구 달려 병원으로 갔던 기억이 나요. 평소엔 안전하게 운전하는 편인데 그날만큼은 속도를 내지 않을 수 없었어요. 엄마도 아시죠? 아빠가 엄마 걱정이 많으시잖아요. 병원에 입원하신 건 큰 일이지만, 아빠 목소리만 들으면 실제보다 더 위급한 상황이었거든요. 그만큼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제가 스무 살 때죠. 엄마가 큰 수술을 하신 게. 수술 후에 중환자실을 거쳐 입원실로 오셨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몸에는 왜 그리 많은 관이 연결되어 있는지. 가끔 그때가 생각나면 눈물이 나요. 몇 달 간의 병원생활은 참 어려운 시간들이었어요. 아픈 엄마에게 비할 수는 없지만 가족들도 많이 고생했던 날들이었어요. 저는 매일 병원을 오가던 그 길이 참 싫어서 그때부터 신촌을 잘 안 갔던 것 같아요. 


몇 년의 회복기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시고, 가끔 입원도 하시면서 20년 동안 병원과 가까이 지내오셨네요. 정말 힘들고 지겨우실 텐데 그래도 잘 해오셨어요. 수술 이후에 엄마만큼 건강을 잘 관리해온 사람도 드물 거예요. 수술 후유증이나 혈당 관리로 여전히 어려운 점이 많지만 잘하고 계시니까 오래도록 건강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고생하며 키운 자식들 모두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고, 오래 꿈꿔온 우리 가족만의 집도 이제 곧 터를 닦을 테니 행복한 날들만 있을 거예요. 엄마는 건강하시기만 하면 돼요. 


어릴 적부터 엄마 닮았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었는데요. 얼굴만이 아니라 체질도 제가 3남매 중에 가장 많이 닮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엄마처럼 아플까 봐 걱정이 많으신 것 잘 알고 있어요. 술 마시는 걸 싫어하시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요. 친구 그렇게 좋아하지 말라는 말씀을 100번도 넘게 들은 것 같네요. 그렇게 싫어하시는데 자꾸 술을 마셔서 죄송해요. 술을 끊는다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사회생활이라는 핑계도 있고, 저도 가끔 반주하는 걸 좋아해서요. 아빠 닮아 술을 못할 줄 알았는데, 술은 유전자랑 상관이 없나 봐요.


술은 종종 마시지만, 저도 건강을 챙기려고 많이 신경 쓰고 있어요. 요즘은 약속도 잘 잡지 않고, 친구를 만나 술 대신 커피를 마실 때도 많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턱걸이랑 팔 굽혀 펴기, 스쿼트, 실내 사이클 타기는 매일 하고요, 퇴근을 일찍 한 날 공기가 좋으면 한강까지 조깅을 다녀와요. 주말엔 관악산에 오르기도 하고요. 혈행에 좋은 오메가-3를 매일 챙겨 먹고, 홍삼이나 흑마늘 같은 건강에 좋은 식품도 꾸준히 먹고 있어요. 집에서 식사할 때는 닭가슴살이나 계란, 그리고 샐러드를 주로 먹고, 샐러드가 지겨워지면 배달음식을 먹더라도 탄수화물이나 고염분, 고지방은 피하려고 해요. 덕분에 근육량은 늘고 체지방은 빠지는 중이에요. 걱정 안 하셔도 될 만큼 잘하고 있죠?


엄마, 제가 건강검진에서 좋지 않게 나오는 수치들이 있으면 그건 제 생활습관이 잘못되어서 그런 거예요. 절대 엄마가 안 좋은 체질을 물려줘서 그런 게 아니에요. 엄마가 아프신 건 정말 싫은 일이지만, 엄마로 인해 저도 더 건강에 관심을 갖고 관리하게 됐어요. 그러니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은 갖지 마세요. 엄마 눈엔 아직도 어린 아들이지만 제법 나이도 들었고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방향도 잡았고, 그에 맞게 건강을 비롯해서 제 자신을 잘 가꾸며 살고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건강 외에 엄마의 큰 걱정인 내 집 마련이랑 결혼에 대해서도 다른 편지에서 이야기해볼게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많아요. 


병원에서 코 고는 다른 환자분들 때문에 잠을 통 못 주무셨다는데, 오늘은 푹 주무시길 바라요. 저도 이만 잠을 청해볼게요. 사랑해요 엄마. 아프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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