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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tle Latte 젠틀라떼 Dec 02. 2018

[퇴사일기 #3] 야근은 이별을 싣고

월급을 얻고 소중한 것들과 이별하다

  연이은 야근은 나를 소중한 세 가지 것들과의 이별로 이끌었다. 첫 번째는 연인과의 이별이다. 중장기 사업계획을 세우기 위해 열심히 야근하던 중이었다. 몇 시에나 퇴근할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을 하면 할수록 퇴근시간은 점점 더 뒤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자정이 거의 다 된 시간에 카카오톡 알람이 떴다. 여자친구였다. 잘 자라는 인사를 해야겠다싶어 앱을 열었는데 메시지가 상당히 길었다. 요약하자면 본인은 항상 기다리는 입장인 것에 지쳤으니 헤어지자는 말이었다.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했다. 답장을 할 수가 없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잠시 후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무슨 생각으로 일을 마치고 퇴근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은 끝이 없고, 소중한 사람은 이별을 이야기하고, 저녁에 억지로 들이킨 순댓국은 소화가 잘 되지 않고, 여러모로 최악의 순간이었다.


  결국 헤어졌다. 헤어진 원인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바쁜 회사생활 탓이 컸다. 특히 퇴사 직전 3개월 정도가 그랬다. 평일 저녁에 약속을 잡기란 쉽지 않았고, 잡았다가도 갑작스러운 야근 때문에 취소해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퇴근을 준비하고 있다가 회의에 불려 들어가는 경우도 잦았다. 오늘은 일찍 퇴근할 수 있겠지라는 기대감은 저녁 먹으러 가자는 상사의 한 마디에 실망으로 바뀌고는 했다. 한 번은 주말 출근 후 저녁에 데이트를 했는데 만난 지 1시간 만에 굳은 표정으로 집에 가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영문을 몰라 애를 먹었다. 나중에야 이유를 들어보니 오랜만에 만난 내가 너무 피곤한 기색을 드러내서 화가 났었다고 했다. 평일에도 나의 퇴근을 기다렸는데 주말에도 또 오랜 시간을 혼자서 기다려야 했고, 만나서도 되려 내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 짜증이 났다는 것이다. 이해했고 미안했다. 그다음 주에 있을 서울 불꽃축제는 함께 보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날도 나는 출근을 했고, 불꽃은 퇴근길에 집까지 걸어오며 혼자 감상했다. 조금 늦더라도 만나서 함께 보자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은 그렇게 내게서 떠났다.


  두 번째 이별의 대상은 날씬했던 몸매다. 이전 직장을 다닐 때는 퇴근 이후에 꾸준히 운동을 했었다. 자랑할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름 복근도 있었다. 하지만 애지중지하던 복근과 이별하고 말랑하고 볼록 튀어나온 뱃살을 맞이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선 운동할 시간이 부족했다. 물론 잠을 더 줄이고 다른 스케줄보다 운동을 우선시했다면 관리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일면 핑계를 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근로계약서 상의 퇴근시간 이후로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본의 아니게 집 근처 Gym에 1년간 기부를 하다시피 했다.


  운동만 부족했던 것이 아니다. 야식과 반주의 시너지도 대단했다. 잦은 야근이 미안해서 술이라도 사주고 싶었던 건지 팀장은 종종 치맥을 제안했다. 밤 11시에 퇴근을 하다가도 회사 앞 치킨 집에서 간단히 한잔 기울이고 집으로 향하고는 했다. 야근을 위해 저녁식사를 하러 가서도 소주 몇 잔을 자연스레 곁들였다. 소주는 팀장의 기본 반찬과도 같았다. 본래 좋아하지 않는 소주를 갖은 스트레스 속에 꾸역꾸역 마셨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사무실에서 바지가 터졌다. 허리는 벨트로 안전장치를 마련해둔 덕에 무사했지만 문제는 엉덩이였다. 바닥에 떨어뜨린 종이를 줍기 위해 몸을 굽히는 순간 짧고도 강렬한 소리와 함께 바지 사이즈에 여유가 생겼다. 그런 일이 두 번이나 일어났다.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이 교복 하의를 스키니로 입어도 나만은 힙합을 고수했던 관계로 일생 동안  바지가 터진다는 건 생각조차 못해본 일이었다. 급기야 양치 중에 치약이 배 위에 안착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계속되는 충격에 식사량을 줄이고 틈틈이 조깅을 했지만 이미 자리 잡은 뱃살은 쉽사리 나를 떠나지 않았다.


  마지막은 지성과의 이별이다. 경영기획 업무에 대한 지식과 스킬은 조금씩 늘어간 반면 전반적인 지식수준은 하향세였다. 회사에서 강제적으로 읽게 한 사사 외에는 독서를 거의 하지 않았다. 대학시절 1년에 100권 읽기를 시도하고 책 블로그를 운영할 만큼 책을 가까이했었지만 직장인이 된 이후로는 해가 갈수록 독서량이 줄었다. 자기 계발을 위한 학원 수강이나 세미나 참석과 같은 활동들도 없었다. 운동과 마찬가지로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를 반복했다. 회사의 외부 위탁교육을 활용해보고자 했지만 원하는 교육은 듣지 못하고 회계 수업만 며칠 들었을 뿐이었다. 취미로 생각했던 글도 잘 쓰지 않았다. 홍보를 할 때는 일로서라도 매일 글을 썼었는데 그런 기회마저도 사라지고 말았다.


  시간의 부족함보다 의욕의 저하가 더 문제였다. 발전 없이 소모되고만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여유시간이 나면 쉬기 바빴을 뿐 생산적인 일에 투자하지 못했다. 정체하는 사이 지인들은 책을 내고 강의를 하고 학위를 취득했다. 그런 소식들을 접할 때마다 부러움과 자책이 교차하곤 했다. 공부 못 하는 학생들의 특징이 계획만 세우고 실천을 하지 않는 것인데 내가 그랬다. 머리로는 욕구를 느끼면서도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많은 직장인들이 나와 같은 이별을 경험한다. 어쩔 수 없는 이별도 있고 자각하지 못하거나 노력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겪는 이별도 있다. 이별의 과정이나 결과는 다르지만 공통적인 원인이 한 가지 있다. 과도하게 많은 근무시간이다. OECD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가 멕시코 다음으로 근로시간이 길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니 연애나 자기 계발을 하기 어려운 것이다. 화려해 보이는 고층빌딩의 유리창 안에는 오래 앉아있어야 충성도가 높고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라는 고루한 생각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당연히 야근할 테니 업무를 천천히 처리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진 직장인들이 생각보다 많다. 집에 일찍 들어가도 환영받지 못하니 차라리 야근하거나 술을 마셔야겠다는 중년의 관리자급도 상당수다. 본인이 야근을 하면 일이 없어도 함께 저녁을 먹고 어느 시간 정도는 자리에 남아있어야 한다는 꼰대 발언을 일삼는 임원도 있다. 동료나 후배들이 그런 사고방식을 조금씩 닮아가면 어쩌나 무섭기까지 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야근이나 주말에 출근하는 일은 생기기 마련이다. 야근과 주말근무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맡은 직무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 때로는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업무시간 외 추가 근무가 반드시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효율적이지 않거나 과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이 없는데도 상사의 강요 혹은 스스로의 눈치 때문에 밤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은 아닌지, 개인 시간을 활용할 줄 몰라 업무시간 안에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일부러 지연시키지는 않았는지, 일의 프로세스가 효율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등을 고민해봐야 한다. 이를 통해 개인차원에서든 회사의 문화나 시스템 차원에서든 아니면 국가가 나서 서든 개선방안을 찾아야 한다. 52시간제 도입 이후 많이 변한 건 사실이지만, 한국사회의 여전한 문제다.


  우리는 저녁이 있는 삶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개인의 삶이 풍족해지고 회사도 건강하게 성장한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2~3일 정도는 과감하게 칼퇴를 하자고 자신만의 기준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당연히 본인의 업무는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다.  ‘우리 회사에서는 그런 게 불가능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마음을 먹고도 실행하지 못했던 적이 많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시도들이 모여 시스템을 만들고 문화를 만든다. 연인, 건강, 지식, 그 외의 소중한 많은 것들과 또다시 이별하는 아픔을 겪지 않으려면 당장 실천이 필요하다. 난 더 이상 이별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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