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은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S사를 퇴사하기 전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인 업무가 월별 경영실적보고였다. 매달 프로젝트별 실적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회사의 현황과 연간 전망을 분석해 그룹 회장에게 보고했다. 각 부서로부터 매출과 원가, 이익, 이슈 등에 대한 자료를 받는 것이 업무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항상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자료를 취합한 다음 분석을 해야 보고서를 만들 수 있는데 가장 기본적인 취합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제출이 늦어지는 건 예사였고, 어렵사리 독촉을 하며 받아낸 자료도 부정확할 때가 부지기수였다. 실무자가 정확한 자료를 보내면 간단한 취합으로 끝날 일을 ERP에서 매출명세서나 계약서를 직접 확인하며 대조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료를 재요청하면 영업부서에서는 영업활동만으로도 바쁜데 불필요한 페이퍼 워크가 많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일견 맞는 부분도 있었지만 애초에 자료를 정확하게 준비했다면 같은 일을 두 번 하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회계적으로 마감한 실적이야 번거롭더라도 근거자료를 확인하면 될 일이었지만 더 큰 문제는 추정실적이었다. 프로젝트별로 향후 실적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에 대한 추정치는 사실 답이 없다. 하지만 시장 상황이나 과거의 추세 등 여러 환경들을 고려해보면 어느 정도 합리적인 추정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영업부서에서는 어떻게든 KPI를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가득 담아 자료를 내놓았다. 사업환경이 개선될 거란 어떠한 시그널도 없는 상태에서 의지만 충만한 경우도 많았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남은 기간 동안 달성해야 하는 실적 규모가 커져만 간다는 점이다. 3분기 동안의 실적보다 남은 3개월의 실적 목표치가 더 높은 경우도 상당수였다. 물론 계획에 없던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해 목표 이상의 성과를 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팩트가 아닌 불확실한 가정에 불과했다. 퇴사 이후에 전해 들으니 뜬구름 같은 전망을 외치던 부서 가운데 연간 목표를 달성한 곳은 없었다.
K사에서 홍보를 담당할 때도 문서 상에 다소 과장된 사실들을 종종 접했다. 사업 수주나 기술 개발, 제도 개선과 같은 성과가 생기면 홍보실에서는 언론보도나 사내방송, 사보 등을 통해 대내외에 홍보한다. 보통 담당부서에서 보도자료 초안을 작성해 홍보실로 보내면 검토와 수정을 거쳐 자료를 완성하게 되는데, 이때 특히 세심하게 체크한 것이 기대효과였다. 해당 부서에서는 업무성과를 보다 부각하기 위해 기대효과를 부풀리는 경우가 있었다. 세계 최초’ 혹은 ‘국가 경제에 크게 기여한다’ 등의 문구를 사용하기도 했고, 기술이나 제도와 관련해서는 부가가치 창출과 비용절감 등에 있어 최대한 높은 수치를 기재하고는 했다. 그래야 성과가 더욱 부각되어 보이고, 관련 간부들의 평판이나 입지에도 좋은 영향이 있기 때문이었다. 입사 초기에는 이를 모르고 담당부서에서 작성한 자료의 수치를 그대로 홍보자료에 반영했다가 낭패를 보기도 했다.
언론에 실린 잘못된 기사 때문에 부서는 물론 회사 전체가 곤혹스러웠던 적도 여러 번이었다. 예를 들면, K사는 매년 정부 경영평가 발표 시점이면 방만경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직원 1인당 평균 수천만 원의 성과급이 월급으로 입금됐다는 기사들이 연이어 올라왔다. 그런데 나는 물론이고 주변 간부들 중에도 그 큰 액수의 성과급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팩트체크를 해보자면(아주 자세한 설명은 어렵지만) 기사에서 언급한 성과급 액수에는 연봉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었다. 평가에 관계없이 연봉으로 받아야 할 일정 금액을 성과급이라는 명목으로 분류해놓고, 평가 결과에 따른 실제 성과급을 합산해 지급했다. 따라서 순수한 성과급은 그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또한 분할 지급하기 때문에 한 순간에 큰 금액이 입금된 것도 아니었다.
매년 반복되는 기사였기에 회사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기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했지만 기사에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기자 입장에서야 금액은 다를지라도 성과급을 과하게 받지 않았느냐는 비판을 할 수는 있다. 다만 비판은 수용하더라도 정확한 팩트에 근거해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자 스스로도 방만경영이라 생각했는지 데스크의 판단이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옹호를 하든 비판을 하든 팩트만은 정확해야 한다. 한 번은 옆 팀 동료가 새벽 이른 시간에 출근해 언론 기사 모니터링을 한 후 탓에 오후에 자리에서 잠시 눈을 감고 쉬고 있었다. 이때 기자실을 찾았던 모 인터넷신문 기자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역시 방만경영이라는 식의 기사를 올린 적이 있었다. 이미 퇴근을 했어도 무장한 시간이었다. 기자가 아주 간단한 사실 확인만 했어도 됐을 일인데, 본분을 지키지 않은 행동에 황당함과 분함을 느낀 일이었다.
보고서든 기사든 게시판에 올리는 글이든 구두로 전하는 사안이든 상관없이 팩트는 항상 정확해야 한다. 이건 업무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팩트가 정확하지 않으면 보고를 받는 모든 사람들은 물론 차후에 보고서를 참고하는 사람들까지 잘못된 정보를 받아들이게 된다. 누군가 잘못 알고 있는 정보가 회사의 이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 잘못된 기사라면 기사를 접한 국민 모두가 피해자라고 볼 수도 있다. 때문에 틀린 정보를 담을 바에야 아예 누락시키는 편이 낫다. 간혹 당장의 두려운 상황을 피하고자 거짓 정보를 보고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없다. 조삼모사일 뿐이다. 시간을 벌어보겠다는 의도가 나중엔 시간이 부족해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으로 끌고 가기도 한다.
의도적으로 틀린 정보를 기재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내가 다루고 있는 업무 내용이나 데이터가 정말 정확한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팩트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거나 거짓으로 보고했으면서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는 등의 핑계를 대는 것은 자기 자신을 깎아먹는 일일 뿐이다. 업무가 서툴러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약간의 실수를 할지언정 팩트를 이야기하는 사람에게는 신뢰가 생기지만 아무리 일을 잘해도 거짓을 제시하는 사람에게는 신뢰가 떨어진다. 거짓은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다. 회사와 나 모두를 위해 항상 팩트체크를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