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사랑 이상이야

간병생활이 시작됐다.

by 순한 사람


할머니와 나는 아주아주 먼 옛날, 우주를 떠돌던 하나의 미립자 덩어리였던 것 같다.

우주 탄생과 함께 만들어진 우리는 137 억년 간 이 은하 저 은하를 고요히 떠돌다가, 어느 날 강력한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둘로 쪼개져 버렸고, 반쪽이 된 두 미립자 덩어리는 다른 입자들과 엉기며 우연히 둘 다 ‘인간의 몸’으로 형상화되었을 것 같다. 성격 급한 할머니 입자는 조선이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 있던 1921년 강원도 한 시골 마을에, 다소 느릿한 편인 나는 강산이 6번이 바뀌도록 시간을 지체하다 1984년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 내려오게 되었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이 가설이 아니고선 도저히 우리 사이의 이 분명하고 강력한 ‘연결의 느낌’을 설명할 길이 없다.


내 근원적 반쪽인 할머니가 아프다.

올해 나이 94세. 낙상으로 골반 뼈가 부러진 후 각종 합병증이 겹쳐 1년째 요양병원과 종합병원을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이제 그럴 때도 되었다는 걸 안다. 그래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는 ‘쿵’하는 소리와 함께 머릿속이 멍해졌고, 이내 가슴에 깊은 웅덩이가 생긴 듯 속이 속이 무거워졌다. 내 반쪽이 떠난다면 무슨 힘으로 나머지 인생을 지탱한단 말인가. 할머니가 6.25 전쟁부터 민주화 운동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온갖 풍파를 겪는 동안 나라는 인간은 뭘 하다가 63년을 허비했단 말인가.


할머니는 늦게 온 자신의 반쪽을 품에 안자마자 알아본 듯 눈을 반짝였다고 한다.

할머니 역시 그 재회의 감정을 마땅히 설명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영겁의 시간을 지나 우주를 건너 할머니와 손녀딸로 다시 만났다. 그리고 다시는 헤어지지 않겠다는 듯 어디든 서로 꼭 붙어 다녔다. 할머니의 '양육' 방식이 때로는 소위 ‘젊고 똑똑한 부모’들이 보기에 이상하고 심지어는 어린아이에게 해롭기까지 한 것이었지만, 우린 서로 익숙한 듯 만족했다. 예를 들면 어린 나를 포대기에 업고 담배를 피운다던가, 넘어져 상처 난 부위에는 된장을 듬뿍 얹어준다던가, 체했을 때는 시원한 물에 밥을 말아 먹이는 따위의 것들이었다.


나보다 63년을 더 살았지만 내 반쪽은 세상 일에 서툰 점이 많았다.

빵 먹기, 화투 치기, 소주 마시기는 수준급이었지만 한글이나 구구단 따위는 세상에 갓 나온 나보다 딱히 잘한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내가 5살이 되자 우리는 '구몬 학습'이라는 유아용 교재를 펼쳐놓고 인간 삶에 필요한 기초지식을 처음부터 함께 익혀갔다. 오래 지나지 않아 내 학습 속도가 할머니를 저만치 앞질러 버려 어린 마음에 조금 미안했다. 할머니는 바위 사이에 몸이 끼어버린 거북처럼 애만 쓸 뿐 학습 진도가 나가지 못했으며, 어느 시점이 되자 체념한 듯 나에게 먼저 가라고 손짓했다.


철이 들어가면서 나는 우리의 두 번째 이별이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했다.

할머니의 몸이 너무 늙어버려 우주를 떠도는 미립자로 돌아갈 때가 된 것이다. 우리가 재회하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지는 나도, 할머니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에는 드넓은 우주에서 길이 엇갈려 다신 만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이 슬프고도 무서운 사실을 부정할 시간마저 없다.


사랑 말고는 하지 말자.

나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둘만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득 채우기로 결심했다. 우주로 돌아갈 할머니가 긴 시간 추억을 벗 삼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한점 후회 없이 사랑하자. 언젠가 이별이 오면, 담담하게 받아들이자. 그리고 재회의 시간이 오길 신께 기도하자. 나의 사랑, 나의 반쪽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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