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다 사람 사는 곳

낯선 요양병원에서 익숙한 사람냄새를 맡다.

by 순한 사람

할머니를 처음 요양병원에 떼어놓고 오던 날은 추위가 매서웠다.

엄마랑 처음 떨어지는 아이처럼 “나 언제 데려갈 거야?”하며 울먹이는 눈을 보고 있자니 이성과 감성이 서로 싸우듯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애매하게 웃으면서 “내일 또 올게. 조금만 참아”하고는 복도 끝으로 멀어져 가는 침상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입원 전 쓰던 2G 핸드폰을 쥐어주었지만 손이 불편한 할머니가 혼자 전화를 걸 수 있을 리도 만무했다. 할머니가 낯선 병실에서 외롭고 불편한 밤을 보낼 생각을 하니 속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돌아오는 길 한강 불빛을 바라보며 하늘이 떠나갈 정도로 울었다.


그날부터 1년, 병원은 제2의 직장이 되었다.

혼자 밥숟가락을 뜨지 못하는 할머니의 식사 수발을 위해 매일 점심시간마다 병원을 찾고 있다. 직장인인 나에게 평일 점심시간 중 병원 왕래는 정말 빠듯하다. 점심을 근무 중 간단한 빵으로 때우는 것도 이젠 적응이 되었다. 힘들어도 간병인 손에 맡기기보다 내 손으로 한 숟갈 한 숟갈 떠먹여 주는 것이 낫지 싶다. 때로는 숟가락 위에 쌓인 하얀 밥알을 바라보며 할머니 뱃속에 들어가 생명의 불씨가 되어 달라고 주문을 걸어보기도 한다.


익숙해지니, 병실 사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병실에는 총 6명의 환자와 2명의 간병인이 상주하고 있다. 사람이 늙으면 생김새가 거의 대동소이 해지나 보다. 분명 젊었을 때에는 잘나고 못나고가 달랐을 터인데 침상에 나란히 누운 것을 보면 쪼그라들고 굳어진 것이 거의 비슷한 모양이다. 특히 식사시간이 되어 자잘한 꽃무늬가 그려진 분홍색 턱받이를 똑같이 두른 채 입을 다시고 있을 때면 마치 6마리의 주름진 병아리들을 보는 느낌이다. 헐레벌떡 병실에 들어서서 그 광경을 보곤 ‘쿡’ 하고 웃음이 나왔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생김새는 고만고만하나 성격은 천차만별이다.

가장 인상적인 분은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공 할머니’이다. 하루 종일 고무공을 꼭 쥐고 있어 그러한 별명이 붙었는데, 흐릿한 기억속에서도 시시 때때로 냉소적 유머감각을 발휘하신다. 하루는 아들이 찾아와 ‘엄마, 아버지 저희가 잘 모시고 있어요’라며 안심시키자, 갑자기 정신이 돌아온 듯 눈을 치켜뜨더니 ‘그 양반 아직 안 죽었냐?’며 촌철살인을 날려 모두를 뒤집어지게 하기도 했다.

2명의 간병인은 남자와 여자로, 부부지간이라고 한다. 조선족인 둘은 생계를 위해 딸을 중국에 두고 한국으로 건너왔다고 한다. 여자는 고된 노동 탓인지 등이 굽은 데다 주름, 탈모에 치아도 엉망이어서 외모만으론 누가 간병인이고 누가 환자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남자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피부 상태에 술배가 불룩 나와 있다. 두 명 모두 조선족 억양이 진해 잘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손녀딸이 극진히 간병하는 모습을 대견해하며 가끔 100원을 넣으면 5분을 돌릴 수 있는 코인 전자레인지를 사용하게 해주기도 한다.


이 병동 최고의 포식자는 ‘실장님’으로 불리는 수간호사이다.

그녀는 유유하고 근엄하며 치명적인 존재이다. 미간에는 V자 모양을 한 ‘경멸의 눈썹’을 장착하고 있으며, 눈동자는 항시 감시하는 듯 아래쪽 사선으로 흘겨 있다. 병실 점검이 그녀의 역할인 것으로 보는데, 2~3일에 한번씩 식사 시간에 병실에 들어와 ‘23호 잘하고 있어요’라고 한마디 하면 여자 간병인이 ‘네~네~’하며 조아린다. 그러한 ‘권위의 의식’을 보고 있자니, 나는 미안하게도 자꾸만 자잘한 꽃무늬가 그려진 턱밭이를 하고 입을 다시는 수간호사님의 먼 미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누구든 3명 이상만 모이면 사회라고 했던가.

적막감만 돌 것 같았던 요양병원 병동 한 켠에도 권력과 욕망, 갈등과 질서가 작동하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간호사들은 서로 눈을 흘기며 신경전을 벌이고, 할머니들은 은밀한 시선을 주고받으며 소통 중인지도 모른다. 갑자기 신입직원 시절 사무실에서 느꼈던 긴장과 압박감이 느껴져 머리가 어지러웠다. 우리가 처음 발 디딜 이 ‘작은 사회’가 너무 낯설어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아 보았다. 사람 사는 게 별건인가! 우린 늘 하던 대로 잘할 거야. 나만 믿고 힘내자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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