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엉덩이에 '험한 것'이 자리 잡았다.
"꼬리뻬(뼈)가 아파아”
처음 들었을 땐 말 그대로 꼬리 ‘뼈’의 문제인 줄 알았다. 누워있는 자세가 잘못됐나? 자다가 침대 난간에 부딪혔나? 몸을 옆으로 돌려 엉덩이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고 이곳저곳을 눌러보아도 도무지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할머니의 몸 안에서 ‘욕창’이라는 고약스런 병이 자라고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의학에 무지했던 나는 욕창을 ‘피부병’으로 알았으니까.
와상 환자는 누워 있을 수도, 서 있을 수도 없다.
욕창이란 돌출된 뼈에 오랜 시간 압박이 가해질 경우 혈액순환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조직이 괴사하는 병으로, 뼈 근처 깊숙한 곳에서 발생해 피부 표면으로 진행된다. 육안으로 궤양이 보일 정도라면 이미 증상이 심각한 것으로 봐야 한다. 할머니 같이 거동이 불편한 와상 환자들은 주로 침상에 누워 생활하는 탓에 필연적으로 욕창의 위험에 노출된다. 간병인이 욕창 방지를 위해 주기적으로 체위를 바꿔주지만, 이마저도 뼈가 부러져 있는 와상 환자는 한계가 있다. 할머니의 경우 작년 급성 신우염이라는 합병증으로 대학병원에 한 달간 입원했을 때 욕창을 얻어온 것으로 보였다.
그날부터 그 험한 것과 나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일단 제대로 싸우려면 ‘무기’가 있어야 하는 법. 엉덩이 밑에 끼우는 ‘도넛베개’(꼬리뼈 부분이 도넛처럼 뚫려있는 동그란 베개)부터 삼각 쿠션(모로 누웠을 때 등을 받쳐주는 쿠션) 크기별 3개, 발뒤꿈치 보호대(뼈가 튀어나와 있는 발뒤꿈치도 욕창이 잘 생기는 부위이다)까지 일괄 구비하고 할머니 몸에 장착하기 시작했다. 입원 전까지 몸무게가 나의 2배는 나갔던 할머니인지라, 몸 밑에 도넛 베개를 욱여넣는 것만도 꽤나 힘이 드는 일었다. 간혹 움직이다가 고여둔 것이 빠지기라도 하면 처음부터 다시 자세를 잡아야 했다.
두 번째 해야 할 일은 ‘드레싱’이다. 상처 부위를 매일 아침저녁마다 소독하고 반창고를 붙여주어야 하는데, 궤양이 워낙 깊어 통증이 심한 듯했다. 간호사에게 엉덩이를 보인 채 “손 좀~”하며 내 손을 꼬옥 잡고는 “아이고~ 아이고~” 곡을 해대는데, 열심히 어르고 달래 봤지만 별로 소용이 없었다. 드레싱을 마친 후 기진맥진한 할머니는 한동안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끙끙 앓곤 했다.
상처에서 작은 꽃봉오리가 피어나다.
하루 두 번씩 드레싱을 한 지 몇 달이 지났는데, 어느 날은 짜증과 설움이 북받쳤는지 갑자기 눈알이 벌게지며 눈물방울을 똑똑 흘리는 것이었다. “괜찮아~ 다 끝났어”하고 달래 봐도 꺽꺽거리며 좀체 진정하지 못했다. 그러더니 체념한 듯 “나는 인체(이제) 고만 살아도 만족이야”하질 않는가. 아프다고 징징거릴 때보다 몇십 배는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치열한 전투를 치르던 어느 날 간호사가 “많이 나았어요. 좀 보세요”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상처 안쪽을 들여다보니, 정말! 저 안쪽에서 분홍빛 무언가가 보였다. 고름이 가득 차 있을 줄 알던 살 구덩이는 물기 하나 없이 깨끗했고, 그 안쪽에서 꽃잎같은 새살이 켜켜이 차오르고 있었다! 94살 노인의 몸에 이런 회복력이 남아있을 줄이야! 감동과 흥분에 휩싸여 저절로 돌고래 소리가 절로 났다. 지나가는 아무나 붙잡아 자랑하고 축하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산다는게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닌가 보다.
직장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너무 힘이 난 나머지 지금 당장 사무실을 뛰쳐나가 지구 끝까지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고 했던가. 종착역을 눈앞에 둔 할머니의 인생에도 경이로운 성취와 희망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둘이 몸으로 일군 것이었다. 그동안 고통과 불편을 잘 견뎌준 할머니와, 쿠션 더미 속에서 고군분투했던 나 자신을 위해 기쁨의 축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