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할머니의 저 세상 옛날이야기가 시작됐다.
“그때 네가 용연(삼촌)이를 들쳐 업고 왔는데, 이래이래 머리를 벅벅 긁더라구~ 그래서 큰 엄마가 참빗을 가져오래서, 머리를 빗깃더니만, ‘이’가 기냥 바닥에 새카맣게 떨어지는거야~ 그래서 내가, 속상해서 네를 안고 펑펑 울었지~”
“잉????? 또 나를 고모로 착각했구먼! 할머니, 나 누구야???”
“윤~아~ 내 손녀딸이지~!”
“?!?! 근데 무슨 머리에 이야~? 도대체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는겨?”
“(눈물이 고이며) 네가 그르케 고생을 많이 해서 내가 생각만 하믄 뭉클뭉클해 ~”
“..........”
할머니의 이야기는 작은 통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무늬를 만들어내는 만화경 같다.
할머니가 한번 옛날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하면, 시간, 공간, 등장인물들이 사방팔방으로 헤쳐 모인다. 과거와 현재가 폴더처럼 합쳐지고, 다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방금 전까지 분명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던 내가 어느새 어린 아빠의 등에 업혀 있기도 하고, 시간이동을 해서 6.25 때 미군의 총에 맞을 뻔한 할머니 동생이 되기도 한다. 분명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인데도 의외의 등장인물과 롤러코스터 같은 전개에 몇 시간을 듣고 있어도 지루하지가 않다.
시간개념은 제멋대로인데, 아이러니하게도 할머니는 시계를 참 좋아한다.
할머니는 종종 이야기를 갑자기 멈추고는 ‘몇 시니?’하고 한동안 병실 벽시계를 빤히 바라본다. 내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이런 거 하나 사다 줘’ 하기도 한다. 내가 벽시계를 가리키며 ‘할머니 지금 몇 시야?’ 물어보면, 완전히 틀린 답을 내놓기 일쑤다. 그럼에도 시계가 눈에 보이는 곳에 있어야 마음이 편안한 것 같다. 할머니를 위해 숫자판이 제법 큰 손목시계를 구입해 채워주고, 밤에 어두운 곳에서도 볼 수 있도록 작은 전자시계도 머리맡에 놔주었다. 조용히 움직이는 시곗바늘을 바라보며 혼자 있는 시간의 외로움과 불안감을 떨쳐내길 바라며...
의사는 할머니의 머릿속에 기억의 편린들이 떠다니는 것이라 한다.
워낙 고령인 할머니에게는 약간의 치매기가 있는데, 이러한 경우 최근 일어난 일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며, 젊은 시절의 단편적인 기억들은 남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를 자주 혼동한다고 한다. 80대 노인이 본인의 나이를 40대로 착각하기도 하며, 과거의 시간을 현재로 착각하거나 최근의 일을 오래전 일과 연결시켜 말하는 현상들이 나타난다. 이 때문에 듣는 사람도 혼란에 빠지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해하기도 한단다.
주인공이든 엑스트라든, 심지어 관객이라도 상관없다.
할머니가 만들어내는 연극 무대에서 나는 조연이든, 행인 1이든, 배경의 나무 또는 돌덩이이든 상관없다. 나무가 살아 움직여 배고프다고 우는, 극한 난이도의 배역도 거뜬히 해낼 수 있다. 언젠가 할머니 인생에서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내가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져 버리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난 기꺼이 한 명의 관객이 되어 1년 365일 재미있게 연극을 봐줄 것이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할머니의 이 기상천외한 연극이 늘 해피엔딩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