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에 누워있는 할머니에게 애인이 생겼다.
언제부터 인가 할머니가 자꾸만 옆을 돌아본다.
옆에 꿀이라도 발라 놓았는지, 밥을 먹을 때도 한 숟갈 입에 넣고는 슬쩍 옆을 돌아보고, 누워있을 때도 몸은 그대로 둔 채 고개만 살살 옆으로 돌린다. 그것도 오른쪽으로만. 목이 불편해서 그러는 것 같아 베개를 고쳐 베어 주어도, 조금 있으면 희한하게 아까의 위치로 돌아가 있다. 하도 이상해서 “왜 자꾸 옆을 봐?” 하고 물어도 “허허” 웃기만 한다. 그때 알아챘어야 하는데...
이유인즉슨, ‘옆집 양반’(실제로는 옆 침상 할머니)과 ‘사랑’에 빠졌단다.
하루는 후식으로 과자를 먹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 이한테 과자 좀 몇 개 갖다 줘~” 하며 옆 침상(할머니는 6인실에 입원해 있다)에 누워계신 양금희 할머니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양 할머니께서 과자를 드실 수 있는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는데, 보다 못한 할머니가 갑자기 발그레해진 얼굴로 나지막이 “내가 저 이를 사랑하게 됐어”라고 고백을 하지 않는가!!!! 그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할머니는 그동안 양 할머니를 남자로 착각하고 ‘플러팅’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할머니의 애인(양금희 할머니)은 뇌출혈로 언어능력을 잃으셨다.
양 할머니는 이 병원에 입원한 지 벌써 2년 가까이 되셨는데, 뇌출혈로 인한 사지 마비와 언어능력 상실을 같이 겪고 계신다. 오랜 병원 생활로 몸은 마르고 얼굴은 푸석해졌지만, 눈빛만큼은 여전히 맑고 따스해 건강하실 때 분명 선한 분이셨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양 할머니 입장에서는 매일 옆 침상에 붙어 앉아있는 내가 싫을 법도 한데, 가끔씩 병실문으로 들어오는 나를 바라보며 눈을 두세 번 끔벅이거나, ‘어 어’하는 의성어를 내며 아는 척을 해주신다.
할머니는 요즈음 막무가내로 애인에게 애정표현을 쏟아내고 있다.
“금희 할머니는 여자야~ 이 병실에는 할머니들밖에 없어~” 하고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다. 애인이 남자라고 우기면서 심지어 제 눈으로 ‘그것’을 똑똑히 봤단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 상황에서 난처해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할머니가 식사 후 오른쪽을 바라보며 “맛있게 자셨어요?”하고 배시시 웃으면, 양 할머니도 “어 어”하고 따뜻한 눈빛으로 호응하는 것이었다. 서로를 무엇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두 할머니는 정말로 ‘연애’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이건 ‘플라토닉 러브’?
이젠 할머니의 요상한 연애를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매일 아침 눈떴을 때 옆 침상에 멋진 할아버지가 있다면, 지루한 병원 생활이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겠는가? 그래서 요즘은 “할머니, 애인이랑 꽃구경 가려면 밥 잘 먹고 기운 내야지?”라며 하얀 거짓말도 잘만 한다. 그러면 할머니는 눈을 반짝거리며 “응~ 아!” 하고 밥을 넙죽 받아먹곤 한다. 이상해도, 틀려도 좋다. 사랑 자체가 판타지인데, 맞고 틀리고를 따져 무엇하랴. 바라는 것이 있다면, 부디 두 할머니께서 오래오래 건강히 사시며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만들어 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