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틀파이, 챗봇, AI, 인공지능, 에이전시, 트렌드 리포트
기억 속 연말연시는 분명히, 따뜻한 방에서 차가운 귤 까먹으며 새해 맞는 기대로 마음이 설렜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전염성 바이러스가 모두의 일상을 멈췄고 희망이나 따뜻함은 어디서도 느낄 수 없다. 넋 놓고 멈춰 선 우리네 일상과 달리 세상을 바꿔 나가는 기술은 혼자서도 전력질주 중이다. '나 혼자 산다'에서 김광규는 AI 스피커와 세 시간 동안 끝말잇기를 하고, 가수 헨리는 커튼을 음성명령으로 열고 닫는다. 한 챗봇 인지도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8.6%가 챗봇을 인지하고 있고, 소비자 54.4%는 직접 이용해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AI 봇이 일상에 터를 잡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제 소비자는 챗봇이 낯설지 않고, 기업 등 서비스 제공자는 챗봇 보유 여부보다 이 봇이 얼마나 제대로 일을 해결하는 가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나날이 익숙해져 가는 봇 서비스에 세대를 가르는 빅 트렌드가 쑥쑥 나올 리 만무하다. 현재 시점은 초등학교 3학년이 4학년 되듯 연속성을 가진 변화 속에서 가치와 기능을 차곡차곡 쌓아 가는 단계라 이해하고, 눈여겨볼만한 챗봇 트렌드를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몸과 마음은 약해지지만 누굴 만날 수도 어딜 나갈 수도 없다. 장기전으로 치닫는 코로나 시대는 챗봇의 실생활 적용을 가속했다. 이전엔 생각지도 못했던 코로나 19 안내, 코로나 블루 케어 등 헬스케어 분야의 봇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미국의 코로나 자가 진단 서비스, 클라라(Clara, 한국어 가능)와 대화해보자. 확진자 접촉 가능성, 증상, 연령, 위치 등을 질문하고, 현재 상황을 분석해 질문자가 해야 할 일을 제안해 준다. 코로나 테스트를 받아라, 며칠 더 기다려봐라, 당장 병원에 가봐라 등 개인 상황별 가이드를 접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유사하게 국가트라우마센터 카카오톡 챗봇이 등장했다. 이 서비스는 코로나로 인한 마음 건강 상태를 자가 진단하게 도와주고, 결과에 따른 마음 안정 방법을 알려준다. 대면이 어렵고 의료진은 모자란 상황에서 대중의 셀프 진단 및 대처를 도와주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 중이다. 이밖에 복잡한 DNA 카운슬링을 대신해주는 유전자 상담 챗봇 등 다양한 분야의 의료전용 봇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 헬스케어 봇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비대면 서비스를 리드하는 주축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AI 봇이 대중화되면서, 챗봇 주 사용자층이 밀레니얼 세대에서 키즈 및 시니어까지 확장되었다. 타깃이 확장 세분화되었으니, 해당 사용자의 연령이나 사용 패턴에 맞는 특화 서비스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아동층을 대상으론 특히 교육 쪽에서 다량의 신규 서비스가 등장했다. 대표적인 서비스로 EBS와 교육부 산하로 개발된 AI펭톡이 있다. 영어 단어, 문장, 대화를 연습할 수 있도록 만든 대화형 영어 교육 서비스로 지난 11월 시험테스트를 거쳤고, 2021년부터는 초등학교 수업교재로도 활용한다고 한다. 아이들과 친근한 펭수 캐릭터 활용, 게임화된 인터페이스로 무장한 AI펭톡은 대화형 영어학습의 대중화 시작점으로 볼 수 있겠다. 또 다른 챗봇 타깃 시니어를 위한 서비스를 보면, 보다 다각화된 접근법을 발견할 수 있다. 간단하게는 세브란스 챗봇처럼 큰 글씨 모드를 추가로 지원하거나, 약 복용 알람 챗봇처럼 고령 만성질환자를 메인 대상으로 약을 제 때 복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해당 카카오톡 봇은 복약 알림이나 처방이력을 관리, 고연령자의 특수한 생활패턴에 밀착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아이들에겐 디지털 서비스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고 연령층은 복잡한 기기보다 그나마 대화로 하는 게 편하니 앞으로 더 많은 대화형 서비스가 이 두 계층을 겨냥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OOO아, 랩 해줘' 했을 때, AI 봇이 리듬감있게 랩을 해서 놀랐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일회성 놀라움보다, '하이 OO, 조명 꺼줘'처럼 특정 상황에 특정 업무를 지속적으로 제대로 해 내는 것- 즉, 지속적인 서비스 효용감이 서비스 사용의 가장 중요한 동력임을 안다. 지난 10월 책을 읽어주는 용도(텍스트 인식)의 네이버 클로바 램프가 나왔다. 모든 것을 알려주는 AI 비서가 아닌, 텍스트를 인식해 종이책을 소리 내어 읽어주고, 기기를 조명 스탠드로 활용하는 게 주 용도인 서비스다. 램프를 실행시키는 방식이 음성 발화인 셈인데, 실제로 사용해보니 '대화'로 불 켜고 끄고 조명의 모드를 원하는 대로 바꾸는 경험이 좋았다. 비슷하게, 집전화를 음성으로 실행하는 T전화도 집에서 사용하는 집전화의 사용성을 높인다. 조금 더 실험적으로, 오토바이 헬멧에 들어가 내비게이션이나 음악 등을 제어하거나 홈트레이닝 기구에 포함되어 사용자와 기기간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봇 등, 제한된 상황을 해결하는 AI 봇이 계속 늘어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하루 종일 나에게 붙어 모든 걸 다 해결해주기보다는 특정 상황에 특정 업무를 해결해주는 디바이스와 음성 봇이 향후 몇 년간(봇의 퀄리티가 극적으로 향상되기 전까지) 더 많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것이다.
답변 구성의 정확도, 효율성 부분에서 AI 자연어 처리는 많은 발전을 이뤘다. 준비된 답변이 없는 경우에도 MRC 기술(기계 독해)을 적용하여 질문에 알맞은 답을 제공하며 봇의 유연한 대응 가능해졌다(MRC 기술은 제품설명서, 상담 매뉴얼 등 방대한 분량의 다양한 문서를 자연어 엔진이 독해해서 답변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기존 기술이 정확한 답을 찾아내던 장점은 취하되, MRC 기술을 추가하여 챗봇 답변 생성에 드는 리소스를 최소화할 수 있다. 즉, 보다 효율적으로 챗봇 서비스를 운영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기술은 수년 전부터 사용 고려대상이긴 했으나, 작년에는 더 많은 기업에서 채택했다는 있다는 소식이다.
또 하나의 기술, 지난 한 해를 뜨겁게 달궜던 GPT-3 기술은 노동집약적인 답변 생성 분야에 새로운 희망을 보게 한다. GPT-3는 인터넷에 올라온 모든 문서를 학습 데이터로 쓰고, 그중 일부 데이터로 성능을 테스트하여 1,750억 개의 파라미터를 학습시킨 딥러닝 네트워크다. 방대한 데이터 학습을 통해 인간 수준처럼 보이는 다양한 자연어 답변을 자동으로 생성하는 기술로, 답변을 미리 사람이 준비하는 기존의 챗봇 운영 업무를 상당히 줄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이 기술도 아직까지는 불완전해서, 현재의 자연어 처리 방식을 대체한다기보다 부가적으로 사용될 것 같다. 그러나 기술이 완성도를 높이면, 앞으로 일반상식은 알고 있는 봇(GPT-3 기술을 이미 습득한)에 특수 지식을 얹는 방식으로 봇 개발 효율성을 비약적으로 높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한 해는 실험적인 투자나 어떤 가능성을 테스트해보는 시기가 아니었다. 장기화된 팬더믹으로 사용자는 어쩔 수 없이 사람 대신 봇과 대화해야 했고 기업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끌 수 있는 서비스만 선별해 개발했다. 몇 년에 걸쳐 기술에 적응할 시기를 한해로 압축하면서, 사용자도 공급자도 AI 봇에 대한 환상을 급속도로 없애버린 한 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2021년도 코로나에서 자유롭지 않다. 집에서 택배만 받는 사람들, 집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직원들, 공부하러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 집안에 갇혀있는 어르신, 이런 사람들이 필요한 서비스가 집중적으로 나오고, 팬데믹 속 활로를 찾고 싶은 기업들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AI 봇 구축에 더욱 열을 올릴 것이다. 이 가운데 무엇이 우리 서비스를 다르게 만들까? 앞에서 이미 답을 말했다. 특정 상황에 처한 특정 타깃을 위한 특정 요청을 제대로 처리해주는 것이다. 여기서 '제대로'의 의미는 각자 다르다. 끊김없이 논스톱으로? 사람처럼 친근하게? 아니면 단계를 확 줄여서? 2021년, 제대로 날을 세워야 할 한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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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년째 쓰고 있네요. 함께 봐주신 독자분들 덕분입니다. 한결같이 지켜봐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2017, 2018, 2019, 2020년 AI 봇 트렌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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