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눈을 뜬다. '아 오늘도 출근하기 참 싫네.' 하루를 시작하는 첫 순간, 나에게 떠오른 생각이다. 모든 직장인들이 나와 같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나처럼 출근하기 싫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출근하기는 싫지만 출근을 해야 되는 운명이기에 무거운 몸과 잠자고 있는 감각을 깨워가며 어렵게 이불을 박차고 나온다.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기대보다는 걱정과 두려움, '오늘은 제발 평온한 하루였으면'하는 소원을 빌며 출근 준비를 한다.
간단한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선다. 마스크를 쓰고 다닌 지 2년이 넘어가지만 답답하고 귀가 아픈 것은 변하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고 어제 못 봤던 책이나 오늘 최신 인터넷 기사를 읽으며 출근을 하는데 자꾸 잠이 온다. 만성피로인가? 자도 자도 잠은 계속 오고 쉽게 지치는 것은 나이가 한 살 더 먹어서일까? 보던 책을 덮고 환승을 위해 내려서 다른 노선의 지하철로 갈아탄다.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앉을 자리가 생길 기회를 잡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아싸! 자리가 났다!' 잽싸게 가서 자리에 앉는다. 이런 것에 기쁨을 느끼는 내가 참 한심해 보였다. 그래도 회사에서 체력을 다 써야 하니 출근시간이라도 체력을 비축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자리에 앉자마자 눈을 감는다. 보던 책은 자다가 떨어질 수 있으니 가방에 넣는다.
도착지에 정차하면 내려서 10분 정도 걸어간다. 나는 걸어가면서 주변 건물, 사람들, 나무와 새 등 눈에 보이는 것들의 변화나 모습을 관심 갖고 본다. 그렇게라도 눈에 모니터나 일과 관련된 숫자, 글자가 아닌 형태와 물체를 보면서 여유를 찾는다. 별것 아니지만 간판의 위치가 바뀌고 나의 출근시간과 동일한 시간대에 매번 마주치는 사람들의 옷차림과 표정을 보면서 '내가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자기 인식을 하게 된다. 어쩌면 출근길의 이 순간이 하루 중 내가 좋아하는 순간 중의 하나이다. 출근을 해서 책상에 앉아 어제 못 했던 일과 오늘 할 일을 생각하고 팀장과 주변 동료들의 시선이나 감정에 영향을 받으면서 조금씩 방전되어 갈 나를 위한 마음의 힐링 타임이 바로 이 출근길의 10분이다.
회사에서 열심히 하든 안 하든 시간은 간다. 점심시간이 되면 하던 일을 잘 정리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식사를 하러 간다. 그리고 좋아하는 메뉴가 나온다면 발걸음은 더 빨라진다. 식당에 도착해서 맛있는 밥을 순식간에 해치운다. 그리고 식사 후에 팀원들 또는 혼자 하는 잠깐의 산책이 나에게 또 잠깐의 여유를 선물해준다. 팀원들이랑 다니는 것도 물론 좋지만 나는 혼자 음악을 들으며 점심시간 끝날 때까지 회사 주변 골목 이곳저곳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알지 못했던 길을 발견하고 어제와 다른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면서 바빠서 놓치고 있었던 변화가 주는 신선함과 함께 평소 고민하지 못했던 개인적인 걱정과 고민들을 생각하게끔 허락해주는 시간이다. 그리고 점심시간 이후 퇴근시간까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퇴근길에 오르면 나의 하루는 모두 마무리가 된다.
[ 잠깐의 여유가 만든 성장의 힘 ]
직장인이라면 나와 비슷한 일상, 어쩌면 거의 똑같은 하루를 보낼 것이다. 집, 직장, 집. 이런 동일한 레퍼토리 속에서 살아가는 직장인에게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퇴근하고 나서 집에서 먹는 맛있는 저녁, 아내와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는 순간, 퇴근 후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보내는 순간 등 다양한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의 반 이상을 보내는 직장인의 일상에서 퇴근 후에 삶도 물론 중요하지만 나는 회사에 있는 시간 안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로 출근길의 10분, 점심시간 동안의 짧은 20~30분의 산책 시간이 나에게 가장 좋은 순간이자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고 잠깐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최근에 워라벨이라는 말보다는 워라블(Work-Life Blending의 줄임말)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워라블은 일과 삶을 융합하는 것으로 업무와 일상의 적절한 조화를 추구하는 최신 라이프 스타일 트렌드이다. 워라블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업무시간 외에도 업무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다양한 취미 생활이나 자기 계발을 지속적으로 하여 자신의 커리어를 성장시키는데 초점을 맞춘다.
출근길의 10분, 점심시간의 산책이 워라블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의아해할 수 있다. 커리어의 성장이라는 관점에서는 산책이 전혀 관련성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짧은 시간들 속에서 워라블을 할 수 있는 힘을 얻고 바쁜 업무 속에서 잠깐의 시간 동안 여유를 찾고 일에 몰입되어 있는 생각과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서 새로운 것을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 준다고 본다. 마치 학창 시절 50분 수업한 뒤에 있는 짧은 10분이라는 쉬는 시간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김혜령 작가가 쓴 <각자의 리듬으로 산다>>라는 책이 있다. 작가가 직접 글과 아기자기한 그림까지 그린 아주 귀엽지만 메시지는 분명한 책이다. 이 책의 부제는 '나를 지키기 위한 적당한 거리 두기 연습'이다. 삶에서 만나는 다양한 관계, 상황 속에서 온전히 나를 지키는 방법을 작가의 에피소드와 이야기를 꾸린 책이라 더 읽기 쉽고 가슴에 와닿았다. 이 책의 '느긋한 인간의 하루'라는 책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나만의 적당한 거리에서 느긋하게 사람들을 바라보면
미워할 것은 적어지고 구경할 귀여운 것은 많아진다.
우리의 삶에서 적당한 거리는 필요하다. 그 거리는 인간관계도 업무도 개인의 삶도 될 수 있지만, 하루의 반 이상을 보내는 직장 안에서는 특히 더 적절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출근길의 10분이든 점심 식사 이후의 20~30분이든 중간중간 업무에 몰입하고 있는 시간 안에서 잠시 여유를 찾고 멀찌감치에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면 된다. 그 시간은 분명 놓치고 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해주고 찾지 못했던 답을 찾게 해주며 나의 성장과 성공에 한 걸음 다가가게 해주는 힘을 비축하게 해 준다.
이 시간들이 바로 하루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고 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어주는 순간이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각자의 시간에 맞춰서 우리가 몰입하고 있는 순간에 잠깐의 여유 시간을 찾고 가져보기 위한 연습과 도전을 꾸준히 해야 한다. 그 시간은 버리는 시간이 아니고 내가 발전하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