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지만 먼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우리가 꼭 봐야 할 영화「플랜 75」
이 글은 영화의 후기가 아니다. 물론 영화를 본 후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적을 것이고 일부 영화의 내용이 담겨 있지만 꼭 한 번은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영화의 내용은 최소한으로 담으려고 한다. 죽음, 누구나 인생에서 겪게 되는 일이다. 피할 수도 없는 일이다. 기원전 259년에 태어난 중국의 진시황제는 영원불멸한 삶을 위해 전 지역에서 몸에 좋다는 약이라는 약은 다 먹었다고 하지만 결국 그도 죽음이라는 영면(永眠)을 초월할 수는 없었다. 나는 무겁지만 안 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 영화는 이미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지 오래된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 노년층의 숫자가 점점 많아지고 청년들의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75세 이상 국민의 죽음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인「플랜 75」을 시행한다. 75세 전부터 가입할 수 있고 가입을 하게 되면 정부에서 10만 엔을 지급하면서 남은 여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게 지원을 해준다. 본인이 신청한 시점이 되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정부 시설로 이동해서 수면 유도제와 같은 가스를 마시고 잠이 든 것처럼 죽음을 맞이한다. 이 과정 속에서 올바른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갈등하는 4명의 주인공의 이야기가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이다.
최근 MBC PD수첩에서 조력 사망이라는 주제를 다룬 적이 있다. 조력 사망은 회복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 의학적인 도움을 받아 생을 마감하는 것을 말한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으로 보고 있지만 스위스에서는 조력 사망이 합법이기 때문에 이미 조력 사망을 위해 스위스로 간 사람들이 국내에서는 12명 정도가 된다고 했다. 어쩌면「플랜 75」도 조력 사망의 방식 중의 하나인 것은 아닐까?
병마와 싸우면서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기보다는 외롭고 쓸쓸하게 남은 생을 마감하기보다는 그래도 걷고 보고 느낄 수 있을 때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죽음에 드는 것, 이것도 인간으로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나는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첫 번째 나는 나의 부모님의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두 번째 나는 나이가 들어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가? 세 번째 나는 고령화 사회에 맞춰서 어떻게 지금 현재를 살아갈 것인가?
세 번째 질문은 사실 죽음과 관련이 없는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도 지금 나의 부모님을 봐도 70, 아니 60세만 넘어가도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제한적이다. 베이비시터, 요양보호사가 아니면 대부분 식당, 청소 같은 일을 한다. 영화 속의 여자 주인공 미치도 호텔 같은 숙박업소에서 객실을 청소하는 메이드 일을 한다. 그런데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동료가 일하다가 객실에서 쓰러지게 된다. 결국 나이가 많은 청소 메이드들은 한순간에 직장을 잃게 되고 다른 직업을 구하려고 하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된다. 이 이야기는 결코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현실도 노년층이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노년기에 어떤 일을 하면서 보낼 것인가?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지금부터 찾아야 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 그 일이 미래의 나를 덜 외롭게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 번째,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부모님의 의견과 나의 생각에 달려있다. 부정하고 싶지만 언젠가는 이별하게 될 나의 부모님과 이전에는 나누고 싶지 않았던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떤 마지막을 보내고 싶으신지, 그 이후에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으신지 등 현실적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마음은 아팠지만 감사하기도 했다. 부모님 없이 남을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배려? 걱정?이라고 해야 될까?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기에 부모님의 생각과 의견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만 했다.
나도 나의 죽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누가 나의 마지막을 정리해줬으면 하는지? 내가 가진 것들은 어떻게 할 것인지? 나는 어떤 곳에서 마지막을 마무리하고 싶은지? 등 만약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시점이 지금 부모님의 나이 정도가 된다고 가정했을 때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과 사회적인 트렌드가 어떻게 바뀌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나만의 신념은 지금부터 고민해야 될 문제이다. 그 시기가 왔을 때는 이미 올바른 사고나 신체적인 행동이 원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을 아주 먼 미래의 일이라고 여긴다. 나이가 40이 넘으면 결혼식 문자보다는 부고(訃告) 문자를 더 많이 받는 것처럼 우리에게 죽음은 앞으로도 먼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오래전에 나는 아주 크게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다. 그때가 나의 두 번째 인생의 시작이라고 할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나는 그 경험을 하고 난 뒤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이 생겼다. 그래서인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씩 했다. 들어보면 아마 낭만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붉은 석양빛이 들어오는 통창이 있는 서재에서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보다가 조용히 잠들 듯이 죽는 것. 어떤 모습일지 머릿속으로 그려질 것이다. 나는 이런 모습으로 나의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떤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하고 있을까? 미리 생각하고 준비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마지막은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가끔이라도 나 자신의 마지막을 꼭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어두운 그림자가 옆에 드리워졌을 때는 이미 늦은 뒤라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