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워놓기

by 김말뜻

따뜻한 햇살에 모두가 노곤해졌던 어느 날, 가정 선생님은 조는 학생들을 앉혀두고 영아 보육에 대해 가르치고 계셨다. 신생아가 얼마나 연약하고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인지 강조하셨는데 낭랑 17세들에게 그 말이 와 닿을 리가. 하지만 일찍이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나는 선생님이 구구절절 풀어놓으신 개인적인 양육법까지 받아 적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목욕 전, 따뜻한 이불 밑에 아기 옷을 넣어 데워놓아야 목욕을 끝낸 아기에게 차갑지 않은 옷을 입혀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생각해보면 너무 바빠서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 뿐, 어른도 그렇지 않은가! 장롱에 잘 개어 넣어둔 뽀송한 새 옷이라도 샤워 후 물기를 갓 닦아낸 몸엔 차갑게 느껴지니 말이다. 신생아에겐 차가운 정도가 아니라 얼음장같이 느껴질 것이다. '그냥 얼른 입히고 따뜻하게 해 주면 되는 걸?'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식의 여린 살결에 닿을 옷의 온도까지 미리 헤아리는 것, 진정한 사랑이 없으면 우러나올 수 없는 어머니의 섬세함 아닐까? 사소해 보이지만 섬세한 그 사랑이 나에겐 눈물겹게 감동적이었다.


그날 저녁, 엄마와 단둘이 마주 앉아 가정 선생님이 들려준 얘기를 했다. 감동의 도가니에 빠진 내 모습에 엄마는 풉-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말했다.


"너 어릴 때도 엄마가 그렇게 해줬어~."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늦게 귀하는 요즘, 현관문을 열고 방으로 직진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엄마와 마주치면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잔소리가 몸서리칠 정도로 싫다.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여도 문 닫히는 소리는 왜 그리 큰 건지, 엄마는 그 소리에 자다가도 뛰쳐나와 취조에 가까운 질문을 쏟아낸다.


"오늘도 서울시 임용 수석 할 만큼 하고 왔어? 매일매일 하는 공부가 1등이어야 결과도 1등인 거 알지? 도시락은 먹었어? 너 밖에서 또 기름진 거 사 먹으면 다이어트 실패하는 거다. 그리고..."


"내가 11시까지 놀다 왔겠어? 그것도 학교에서? 오늘도 1등 할 만큼 공부 열심히 하고 왔냐는 그런 짜증 나는 질문 좀 하지 마! 엄마 임용 본 적 있어? 수석 해봤어? 나 잘 거야, 나가."


- 쾅!


방문이 닫히고, 엄마가 보이지 않아야 비로소 긴 한숨과 함께 고된 하루를 털어낼 수 있다. 침대에 풀썩 누워 푹신한 이불에 서서히 파묻히는 게 온몸으로 느껴질 즈음, 난 행복해진다. 적절한 온도로 데워져 있는 따뜻한 침대가 좋다. '이러니 내가 침대를 떠날 수 있나'하며 두 손으로 이불을 움켜쥐다 문득, 내 귀가 시간에 맞춰 온수매트를 켜 놓는 사람은 엄마라는 게 떠올랐다.


"어? 딸 왔네! 일찍 오는 줄 모르고 매트를 안 켜놨는데 어쩌지?"


괜찮다는 대답과 함께 방문을 닫기 바빠 귀로 흘려들었던 엄마의 말. 그렇지... 추운 겨울날부터 그 한기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이 봄날까지, 난 엄마 덕에 따뜻한 침대에 누워 잘 수 있었는데. 조금 전 매섭게 닫았던 방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마음이 무거워졌다.


밖이 너무 춥다, 안방 온수매트 좀 켜 놓으란 당신 부탁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외출하는 딸. 바깥 한기를 품고 들어온 당신은 오들오들 떨리는 손으로 전원이 꺼진 채 냉랭한 매트를 만져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퉁명스럽다 못해 악에 받친 딸의 얼굴을 뒤로하고 쾅 닫혀버리는 문 앞에서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뒤돌아섰을까. 그럼에도, 매일 밤 딸의 침대를 정돈해주고 매트 온도를 살핀 당신은 어떤 마음이었나요?


당신의 사랑이 깃털처럼 너무 부드럽고 섬세해서, 느끼지 못했던 걸까.

끝없는 생각의 꼬리를 문건 '미안함'이란 슬픔이었다.


그날 밤, 환한 달빛마저 꾸짖는 곁눈질로 느껴지던 밤에, 못난 딸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끅끅 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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