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위한 기도

by Geoff Jung



내가 언제부터 하느님을 알게 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아마도 기독교 재단의 중학교에 다니게 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듯하다. 그전에는 종교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중학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전교생 예배가 있었고, ‘성경’이라는 과목이 정규 수업으로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원해서 선택한 학교도 아니었는데, 종교적 선택의 자유를 고려했을 때는 조금 적절치 않은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역시 기독교 재단이 운영하는 학교에 배정받았다.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있다. 성경 시간에 교목 선생님이 짝끼리 손을 잡고 눈을 감으라 하며 “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맞혀보라”라고 하셨다. 학급 서기였던 나는 지명을 받았고,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순진함인지, 당돌함인지 알 수 없지만 선생님은 조용히 다른 학생을 다시 지명하셨다. 그분은 내가 재학 중일 때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는데, 예수님과 같은 나이인 33세였다. 장례 차량이 학교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떠나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난다.


6년 동안 매주 두 시간씩 기독교 교육을 받았음에도 나는 기독교 신자가 되진 않았다. 그 당시의 나는 기독교 교리가 조금은 배타적으로 느껴져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던 것 같다.


아버님은 어린 시절 함경도에서 성당 복사를 하셨을 만큼 천주교와 가까웠지만, 월남 이후 여러 사정으로 오랫동안 성당을 떠나 있었다. 그러다 70세 무렵 다시 성당에 나가셨고, 신부님은 “50여 년 만에 냉담에서 돌아오신 신자”라며 강론 중 언급했다고 한다. 어머님도 오랜 세월 절에 다니시다 아버님과 함께 천주교로 개종하셨다.


나에게는 기독교보다 천주교 교리가 마음에 더 편안하게 다가왔고, 결국 부모님의 영향도 있어 캐나다로 이민 간 후에 자연스럽게 성당에 나가게 되었다. 2005년, 에드먼턴 한인 성당에서 아내와 함께 세례를 받았다. 나의 세례명은 제프리(Geoffrey), 아내의 세례명은 그레이스(Grace)였다.


아내의 투병과 흔들리는 마음


아내가 항암 치료를 시작한 뒤 나는 매일 성당에 가서 묵주 기도를 드렸다. 성전은 늘 개방돼 있어 언제든 기도할 수 있었지만, 내부 모임이 있을 때는 조용히 기도하기 어려웠다. 꾸준히 다니다 보니 성당의 일정도, 늘 비슷한 시간에 기도하러 오는 분들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분들 역시 나처럼 간절함을 품고 있었겠지.


하지만 기도를 드린다고 해서 아내의 병세는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아내의 병은 항암 치료 후 관해 판정 (치료로 암이 보이지 않는 상태)이 나와도 금세 재발했고, 그 과정이 반복되자 마음속에서 회의가 밀려왔다.


“내 기도는 아무 필요가 없나?”

“하느님의 뜻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기도한다고 바뀌는 것이 있을까?”

나중에는 “우리는 혹시 버림받은 존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러던 중, 신앙이 깊은 절친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았고 (그 친구는 기독교 신자다), 친구의 말이 내 마음을 열어 주었다.

“기도는 내 뜻을 관철시키는 방법이 아니라, 내 마음을 하느님께 여는 과정이다.”

사실 그런 말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내 상황이 급박하다 보니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동안 나는 내 삶 속으로 하느님을 끌어들여 내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 달라고 청했던 것이고, 그것이 얼마나 미숙한 신앙이었는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느님의 뜻은 인간이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결국 그분의 결정대로 흘러간다는 것.

인간은 그 뜻을 헤아리며 살려고 노력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

그 사실을 마음에 담게 되었다.


아내에게 선물한 ‘기도문’


작년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투병 중인 아내에게 용기를 줄 선물을 고민하다가 내가 직접 쓴 ‘아내를 위한 기도’를 액자로 만들어 주기로 했다. 글은 내가 쓰고 디자인은 딸에게 부탁해, 성탄절 하루 전날 액자가 완성되었다. 포장지와 테이프를 사서 직접 정성껏 포장한 뒤, 크리스마스 새벽에 운동을 나가며 식탁 위에 조용히 올려두었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는 환하게 웃으며 “언제 이런 걸 만들었수?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그 미소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날 아침, 아내는 그 액자를 거실 벽의 패널에 걸어두었지만, 내가 청소하다 실수로 떨어뜨려 한쪽 귀퉁이가 조금 금이 가고 말았다. 마음이 철렁했지만 아내는 금세 “괜찮아요”라며 웃어주었고, 이후 그 액자는 아내 방 침대 옆 벽에 자리 잡았다.


아내가 떠난 뒤 방을 정리하며 그 액자를 마주했을 때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기도문에 담았던 내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아쉬움 때문이었는지, 결국 조용히 폐기했다. 아내도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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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은 나의 기도


아내가 떠난 지금도 나는 매일 묵주 기도를 드린다. 그 시간은 온전히 아내를 마주하는 시간이고, 나의 삶을 다잡는 시간이다. 오랜 시간 여러 내용으로 기도를 드려 왔지만, 결국 세 가지로 귀결되는 것을 깨달았다.


1. 감사의 기도


– 42년 동안 아내가 나에게 베풀어 준 사랑, 헌신, 따뜻함에 대한 깊은 감사.

아내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누렸던 기쁨, 위로, 웃음…

그 모든 순간이 내 삶을 얼마나 빛나게 했는지 이제야 또렷이 보인다.


2. 사죄의 기도


– 너무 늦게 깨달은 미안함에 대한 고백.

아내는 착하고, 따뜻하고, 나를 가장 사랑해 준 사람이었다.

그런 여인을 아내로 삼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운이었는지 진작 깨닫지 못하고 당연한 존재로 생각했던 미숙함과 무심함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무너지고 눈물이 난다.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그저 ‘괜찮은 남편’이 아니라 아내가 자랑스러워할 만큼 ‘좋은 남편’이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마음을 저리게 한다.

더 따뜻한 사람으로 거듭나서 아내를 다시 만났을 때, 아내가 느꼈을 아쉬움을 채워주고, 미완으로 남은 내 사랑을 완수하리라.


3. 사랑의 기도


– 그리고 내가 하느님의 부름을 받아서 아내와 다시 만날 그날을 향한 사랑의 마음.

우리의 이별은 영원이 아니라 잠시의 이별이라는 믿음.

그날이 오면, 아내가 내가 선물했던 스카프를 두르고 밝은 웃음과 함께 마중 나와서 나를 안으며

“어서 와요. 기다리고 있었어요.”라고 말해줄 것이라는 희망.

나는 아내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남아 있는 시간들을 더 성실하게, 더 따뜻하게 살아가려고 한다.

그날까지 흔들리지 않고 나의 하루를 채워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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