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발끝에 머문 인사
※ 2025년 6월에 쓴 글입니다.
아내는 마지막 열흘 동안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
이름을 묻는 간호사의 질문에 간신히 대답하는 정도.
간호사가 옆에 있는 나를 가리키며 아내에게 물었다.
"이 사람 누구예요?"
아내의 대답. "남편"
간호사가 다시 물었다. "남편분 이름이 뭐예요?"
아내는 또렷하게 내 이름을 말했다.
평생 아내에게서 들었던, 가장 아름다운 '내 이름'이었다.
아내는 나와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떠났겠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내가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전했는지에만 마음을 쏟아왔다.
하지만 정작, 아내는 나에게 어떤 말을 남기고 싶었을까?
“진심은 꼭 말로만 전하는 게 아니지 않냐”는 딸의 말처럼,
나도 아내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아내가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날 밤, 잠결에 누군가 내 양쪽 발을
따뜻하게 감싸는 듯한 느낌에 잠에서 깬 적이 있었다.
꿈이었을까, 현실이었을까.
나는 그 순간이 아내의 마지막 인사였다고 믿는다.
하늘나라로 가기 전에, 잠시 들러 나를 다녀간 듯한 그 밤의 온기.
지금도 내 발끝에 아련하게 남아 있다.
아내와 함께 나눴던 대화들을 곱씹다 보면
내 마음속에 이렇게 말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여보, 나 이제 하늘나라로 떠나요.
당신 혼자 두고 먼저 가서 미안해요.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내가 떠났다고 너무 오래 슬퍼하지 말고,
내 몫까지 씩씩하게 잘 살다 와요.
우리 딸도 잘 부탁해요.
하늘에서 당신과 딸을 늘 지켜볼게요.
그리고 당신이 하느님의 부름을 받는 날,
내가 마중 나갈게요.
그때 우리 다시 만나요.
사랑해요.”
나는 이 말을 아내의 목소리로 듣고 싶어졌다.
요즘 같은 AI 시대에는 그런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유명인들의 음성을 AI로 만들어 악용한다지 않는가.
ChatGPT에 물어봤더니
윤리적·법적 이유로 직접 제작은 어렵지만
목소리 생성이 가능한 사이트를 알려주었다.
원하는 음성 파일을 제공하면
그 목소리로 내가 쓴 문장을 읽어주는 시스템이었다.
유명인들의 목소리는 무료지만,
내가 가진 음성 파일을 사용하려면 유료 가입이 필요했다.
한 달에 만 원.
망설임 없이 결제했다.
다행히 아내와의 전화 통화 녹음 파일이 몇 개 있었다.
하지만 AI가 제대로 학습하려면 상대방의 목소리를 제거하고
오직 아내의 음성만 남은 파일이 필요했다.
딸과 사위의 도움으로
아내의 목소리만 담긴 파일을 만들어 시도해 봤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몇 구절은 아내의 느낌이 살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음색도, 말투도, 속도도
내가 기억하는 아내와는 달랐다.
아직은 기술이 충분히 따뜻하지 못한 걸까.
아니면, 내 기억이 너무 따뜻해서일까.
기술은 부족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아내의 목소리가 살아 있다.
생전처럼 또렷하고,
늘 나를 위로하던 그 따뜻한 목소리로
지금도 내 귓가에 이렇게 속삭이고 있다.
“여보,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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