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병명과 나의 오해 (CTCL vs PTCL)
※ 2025년 7월에 쓴 글입니다.
요즘도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맴도는 두 단어가 있다. CTCL과 PTCL.
아내의 병명은 림프종(Lymphoma)이었다. 림프종은 혈액암의 일종으로, 림프계를 구성하는 림프구에 생기는 암이다. 일반적으로 호지킨 림프종과 비호지킨 림프종으로 나뉘며, 세포의 기원에 따라 B세포, T세포, NK세포 림프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혈액암 하면 백혈병을 떠올리지만, 실제로 백혈병은 전체 혈액암의 20~30% 정도에 불과하고, 림프종이 70~80%를 차지한다고 한다. 림프종은 다른 암에 비해 비교적 치료가 쉽고 완치율도 높다는 인식이 있지만, 이것은 대개 B세포 기원의 호지킨 림프종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아내가 앓았던 T세포 기원의 비호지킨 림프종은 치료가 그리 쉽지 않은 병이었다.
진단까지의 길
2022년 봄,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온 직후부터 아내는 피부의 한 부위에 이상 증세가 생겨 동네 피부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호전되지 않아, 겨울 무렵에는 큰 대학병원 진료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부과 전문의인 고등학교 동창의 도움으로 강북의 S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처형에게 아내의 보살핌을 부탁하고 딸과 사위에게 운영을 맡기고 온 비즈니스의 연말 성수기를 돕기 위해 캐나다에 한 달간 체류 중이었다.
어느 날 아내와 통화 중, 아내는 울면서 말했다.
“치료를 받아도 낫지도 않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평생 함께 살아온 아내가 그렇게 무너지듯 말한 건 처음이었다.
나는 그날 밤 거의 한숨도 자지 못하고,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즉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내는 다시 전화를 걸어와 말했다.
“어제는 내가 너무 감정적이었어요. 미안해요. 당신이 지금 돌아와도 달라지는 건 없어요. 예정대로 월말에 와요.”
나는 12월 마지막 날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림프종이요? 설마... 암?”
강북 S병원에서는 다양한 검사를 시행했지만, 뚜렷한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12월 하순, 피부과 담당의가 처음으로 “혹시 림프종일 수도 있다”라고 언급했다.
‘림프종? 그럼... 암이란 말이야? 설마 그럴 리가...’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몇 차례의 추가 조직검사를 거쳐, 실낱같은 희망을 뒤로하고 2023년 2월 초 T세포 림프종으로 진단을 받았다.
그날은 장모님이 돌아가신 다음 날이었다.
장례 절차에 집중하고자, 다른 가족들에게는 이 사실을 장례가 끝날 때까지 알리지 않았다.
모든 가족들이 밤새 빈소를 지켰지만 나는 그날 암판정을 받은 아내를 빈소에서 재울 수 없어서 가까운 호텔을 예약했다. 가족들은 내가 불편함을 견디지 못해서 호텔로 갔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것은 아내를 위한 나의 작은 배려였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한계에 이르렀던 아내는 장모님의 발인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여보, 힘들지?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치료받는 것이고 그 이후의 일은 모두 하느님께 맡깁시다. 이 어려움을 함께 이겨냅시다. 내가 끝까지 당신 곁에 있을게.'
병원 옮김과 첫 번째 치료
진단 이후에도 강북 S병원은 계속 정밀검사를 시행했다. 12월 초부터 2월까지 치료는 시작되지 않았고, 검사만 이어졌다. 담당 의사는 “병명을 정확히 알아야 치료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며 성급한 치료의 위험성을 설명했지만, 우리는 답답함을 느꼈다.
결국 형의 초등학교 동창이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강남의 S병원으로 병원을 옮겼다. 이곳에서는 바로 검사가 이루어졌고 곧바로 표준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비유하자면 “정확히 신사동인지 삼성동인지는 몰라도 강남구인 건 확실하니, 일단 강남구에서 가능한 치료부터 하자”는 전략이었다. 우리도 이 접근 방식에 동의했다.
총 6번의 항암치료를 4개월간 마친 후, 2023년 7월 초에 '관해 (검사를 해도 암세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라진 상태)' 판정을 받았다. 그 당시에도 나는 비즈니스를 운영하던 딸과 사위의 여름휴가 기간 동안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서 캐나다에 한 달간 체류 중이었다.
항암치료 후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한 아내의 진료 시간에 맞추어서 온 신경이 핸드폰에 쏠려있었는데 마침내 "치료 성적 100점!"이라는 아내의 메시지를 받는 순간,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한 기쁨이 밀려왔고, 함께 있던 지인과 기쁜 마음으로 축배를 들었던 그날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피부의 다른 부위에 새로운 병변이 생겼고, 조직검사 결과 같은 종류의 림프종으로 판명되었다.
실망과 두려움, 그리고 설득
재발인지, 잔존 암세포의 활동인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아내의 실망은 컸다.
아내는 “두려운 건 세상을 떠나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고통스럽게 병과 싸우는 것”이라며 더 이상 항암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이대로 포기하는 건 억울하지 않냐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치료받자며 설득했다.
간신히 동의를 얻고, 치료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CTCL? PTCL? 혼란 속의 오해
T세포 림프종은 드물고 치료가 어려운 림프종이다. T세포 림프종의 여러 아형 (subtype)중에서 CTCL (Cutaneous T-Cell Lymphoma, 피부 T세포 림프종)과 PTCL (Peripheral T-Cell Lymphoma, 말초 T세포 림프종)이 있는데, 둘 다 비호지킨 림프종에 속하지만 병의 양상과 예후는 전혀 다르다.
CTCL은 주로 피부에 국한되어 내부 장기 전이가 거의 없고, 생존율도 높은 편이다.
CTCL 환자의 생존율은 치료와 관리를 잘하면 보통 사람들만큼의 수명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반면 PTCL은 예후가 나쁘고 초기엔 장기에 없더라도 시간이 지나며 간, 폐, 골수, 소화기관 등으로 빠르게 전이되기도 한다. PTCL 환자의 평균 생존 기간은 고작 3~4년이다.
담당 주치의에 따르면 T세포 림프종에는 여러 종류의 아형이 있는데 그 어떤 아형에도 속하지 않는 T세포 림프종은 모두 말초 T세포 림프종으로 구분한다고 한다.
담당 주치의는 아내의 림프종이 비교적 순한 편이고, “생명을 위협하는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어느 날, “아내 병명이 CTCL이지요?”라고 물었고, 그는 “PTCL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때 나는 CTCL이 PTCL의 한 분류쯤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확인하니, CTCL과 PTCL은 서로 다른 독립된 아형이었다.
중추신경계로의 전이
아내는 투병 기간 내내 병변이 피부에만 있었고, 여러 차례 PET scan에서도 내부 장기로의 전이는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PET scan은 2024년 10월에 시행되었고, 나는 그 결과를 믿고 안심했다.
“이 병은 피부에만 있는 병이니 내부 장기로의 전이는 없을 테고, 우리는 더 오래 함께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아내가 세상을 떠나기 10여 일 전, 척수액에서 림프종 세포가 발견되었다.
이는 중추신경계로의 전이를 의미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제야 나는 상황의 무게를 온몸으로 실감했다.
결국...
나는 아내의 병명을 CTCL이라 믿었지만, 사실은 PTCL이었다.
아니, 어쩌면 CTCL이기를 바랐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믿음이 주는 희망 속에서 나는 아내가 오래오래 곁에 있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 작은 믿음 하나가 나를 버티게 했고, 그 믿음이 꺾이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어떤 말로도 스스로를 위로할 수 없었다.
이제야 깨닫는다.
병명보다 더 중요한 건, 그 병을 마주하며 함께했던 시간들이었다.
그 순간순간, 우리는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버텼다.
그렇게 우리는 마지막까지 '함께'였다.
지금도 여전히 CTCL과 PTCL이라는 두 단어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그 단어들이 단지 의학적 개념이 아니라, 아내의 투병기간 내내 아내와 내가 함께했던 기억의 이름들처럼 느껴진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묻는다.
‘그때 내가 조금 더 빨리 알았더라면 뭐가 달라졌을까?
조금 더 정확히 이해했다면...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러운 길이 있었을까?’
물론 나의 오해가 의료진의 아내 치료 과정에 미친 영향은 없다.
삶도, 죽음도, 병마도… 언제나 결과를 보고 뒤늦게 배우는 수업인 것 같다.
덧붙이는 말
이 글은 의학적인 글이 아닙니다. 의학적 오류가 있다면 양해 바랍니다.
단지 한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한 투병의 기록이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배운 것, 놓친 것, 후회되는 것을 되돌아보는 작은 고백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 비슷한 길을 걷고 계신 분이 있다면 그분에게 위로가 되기를, 그리고 그 시간이 외롭지 않기를 조심스럽게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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