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혈모세포이식: 희망과 한계, 그리고 우리의 선택
※ 2025년 8월에 쓴 글입니다.
조혈모세포이식이란
조혈모세포이식은 흔히 ‘골수이식’이라고 불리며, 혈액을 만들어내는 줄기세포를 이식해 손상된 혈액 체계를 새롭게 회복시키는 치료법이다. 주로 백혈병이나 림프종 같은 혈액암 환자에게 시행되며, 환자 자신의 세포를 쓰는 자가이식과 공여자의 세포를 쓰는 동종이식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이식 과정은 먼저 고강도의 항암·방사선 치료로 암세포와 기존 골수 기능을 최대한 제거한 뒤,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정맥주사로 주입한다. 주입된 세포가 골수에 자리를 잡으면 다시 혈액세포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말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 치료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치료 효과가 큰 만큼 감염이나 거부 반응 같은 합병증의 위험도 존재한다. 수 주에서 수개월 동안은 감염 위험이 커서 무균실 생활과 강력한 항생제·항바이러스제 투여가 필수적이다.
이식의 성공률은 환자의 나이, 건강 상태, 질환의 종류, 그리고 공여자와의 적합도(HLA 매칭)에 따라 달라진다. 젊고 건강한 환자는 완치에 가까운 결과를 얻기도 하지만, 고령 환자나 불응성 암 환자는 위험이 크다.
처음 들었던 낯선 단어
아내의 투병 기간 동안 우리가 처음 ‘조혈모세포이식’이라는 단어를 들었던 것은 첫 항암치료 (CHOP)가 끝난 뒤 암이 재발해 두 번째 항암치료 (GDP)를 준비하던 2023년 8월이었다. 상담간호사와 향후 치료 옵션을 논의하던 자리에서 마지막 방법으로 조혈모세포이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생전 처음 듣는 낯선 용어였기에 곧바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설마 그 단계까지 가겠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어 그냥 흘려들었다.
마지막 보루, 이식을 향한 선택
하지만 몇 차례의 추가 항암과 방사선 치료에도 암은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2025년 초에 주치의는 말했다. “이제 남은 방법은 조혈모세포이식밖에 없습니다. 환자가 이식을 받으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아내의 경우 혈액에 암세포가 잔존해 있었기에 자가 이식은 불가능했고, 동종 이식만 가능했다. 아내는 망설였지만 나는 마지막 보루라 생각하고 이식에 도전하자고 설득했다. 다만 이식 이후의 모든 치료 결정은 아내의 뜻에 따르겠다고 약속했다.
공여자를 찾는 과정
이식 준비의 첫 단계는 공여자 찾기였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100% 일치하는 공여자를 찾는 것이지만, 최근에는 50% 일치(반일치) 공여자의 세포를 이식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부모·자식 간은 최대 50%만 일치할 수 있고, 100% 일치는 형제자매 사이에서만 기대할 수 있다. 확률상 4명의 형제자매 중 1명이 100% 일치한다고 한다. 아내에게는 5명의 남매가 있었기에 가능성은 충분했다.
우선 3명의 형제자매에게 HLA 검사를 부탁했다. 나머지 한 명은 지방에서 일하고 있었고 또 한 명은 건강 문제로 일단 제외했다. 조혈모세포 공여가 헌혈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기에 부탁하기가 망설여졌지만, 세 사람 모두 주저 없이 검사를 받아 주었다.
한 달 후에 나온 결과는 한 명이 50% 일치, 나머지는 불일치였다. 주치의는 “요즘은 형제가 많지 않아 반일치로도 이식하는 경우가 많고, 경우에 따라 비혈연 100%보다 형제 반일치가 더 나을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우리는 남은 두 명의 자매에게도 검사를 요청했고, 역시 모두 흔쾌히 동의했다. 또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사실 그 무렵 아내의 내부 장기로 전이가 진행되고 있었고,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런 결정을 내렸었다.)
두 번째 결과는 4월 중순에 나왔다. 한 명은 100% 일치, 또 한 명은 50% 일치였다. 완전 일치라고 이식 수술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큰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그 무렵 아내의 몸은 급격히 쇠약해졌고, 통증으로 응급실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의료 대란으로 의료 인력이 부족해 진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고, 다음날 다시 입원 절차를 밟으며 응급실에서 며칠을 보내야 했다. 대한민국 최고 수준이라는 대형병원에서 겪은 현실은 참담했다.
마지막 3주와 연명치료 의향서
입원 이후 마지막 3주는 하루가 멀다 하고 긴박한 상황이 이어졌다.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란 쉽지 않았고, “그때 그 선택이 최선이었을까?”라는 의문은 지금도 남아 있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결정은 내 몫이었다.
아내와 나는 2024년 8월에 연명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오래 미뤄왔던 일이었는데, 그날 아내가 “오늘 꼭 하자”고 해서 건강보험공단 지사를 찾아가 서류를 작성했다. 하고 나니 오랫동안 밀린 숙제를 끝낸 듯한 홀가분함이 있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기 열흘 전, 위중한 상태가 되자 의료진은 중환자실 집중치료를 권했다. 나는 고심 끝에 거부했다. 집중치료로 당장의 위기는 넘길 수 있더라도, 림프종은 여전히 남아 있을 테고 마지막 보루로 생각하고 있는 조혈모세포이식조차 불가능해질 상황이었다. 집중치료는 아내의 고통을 연장하는 선택일 뿐이라 판단했다.
그 선택에 대한 마음의 무게
그 결정은 지금도 내 마음 한편에 무겁게 남아 있다. 과연 옳았을까?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결정을 내릴지 확신할 수는 없다. 아내는 ‘더 오래 사는 것’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이었고 나는 아내의 그런 의사를 존중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사랑의 마지막 표현이라고 나는 믿었다.
아내는 평소 대화 중에 늘 말했다.
“연명치료는 하지 말아 줘요.
고통의 시간을 줄여 줘요.
빈소를 차리지 말고 바로 화장해 줘요.”
그것은 아내뿐 아니라 나의 뜻이기도 하다. 나는 아내의 그 바람을 기억했고, 결국 그 뜻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만약 집중치료를 받았다면 몇 주 혹은 몇 달은 더 살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삶의 질은 완전히 무너지고 림프종으로부터의 회복은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내를 고통 속에라도 곁에 두는 길이 아니라, 평안한 곳으로 보내주는 길, 존엄을 지켜주는 길을 선택했다.
그 선택이 완전히 옳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때 나는 최선을 다해 고민했고 아내가 바랐던 길을 존중하려 했다. 그리고 언젠가 아내가 “당신은 할 수 있는 만큼 했어요”라고 나를 토닥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이식은 왜 ‘마지막 수단’인가
지인들은 왜 처음부터 이식을 하지 않았느냐, 시기를 놓친 것은 아니냐고 묻곤 한다. 그러나 의료진에게 조혈모세포이식은 언제나 최후의 수단이다. 그만큼 위험과 부작용이 크기 때문이다.
이식 과정은 환자를 극도로 쇠약하게 만든 뒤 새로운 혈액 체계를 심는, 말 그대로 ‘다시 태어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과도로 깎을 수 있는 과일을 처음부터 큰 도끼로 내려칠 수는 없는 것처럼, 조혈모세포이식은 다른 방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치료이다.
그리고 암세포를 완전히 사멸하지 못한 상태에서 조혈모세포이식을 시행하면, 이후 암이 재발할 확률이 60~70% 이상에 이른다고 한다. 사력을 다해 회복의 길을 걸어낸 환자에게 암이 다시 찾아온다면, 그 절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주치의의 말, 그리고 회고
아내가 세상을 떠나던 아침, 주치의가 당직이어서 직접 사망 선고를 하러 병실에 왔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았더라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치료 과정에서 주치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이식을 하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었다. 아마도 환자의 희망을 꺾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부정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던 것일까 싶다.
돌이켜보면, 주치의는 이미 첫 두 번의 항암 치료에도 암세포가 사라지지 않았을 때 아내의 림프종이 불응성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경과를 밟게 될지도, 치료의 끝이 언제쯤 찾아올지도 예측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희망을 지켜주고, 그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주려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아내에게 전하는 마음
만약 투병을 시작할 때 주치의가 “남은 시간은 2년”이라고 말했다면, 우리는 그 시간을 온전히 견뎌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내가 나에게 드러내지 않은 정신적·육체적 고통이 분명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시간을 ‘최선을 다한 투병 생활’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자신이 아픈 것보다 아픈 자신을 보며 슬퍼하는 나와 딸을 보는 것을 더 힘들어했다.
그 힘든 시간을 꿋꿋하게 버텨주고, 내 뜻에 따라 치료를 끝까지 성실히 받아준 아내가 오늘따라 더욱 고맙고 사랑스럽다.
덧붙이는 말
이 글은 아내와 함께한 투병의 기록이며, 동시에 제 개인적인 회고입니다. 같은 병을 겪는 분들께 작은 참고나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