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에 쓴 글입니다.
이제 이틀 후면 이사다.
아파트 계약을 할 때만 해도 아주 먼 일처럼 느껴졌는데, 어느새 그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모든 일은 잡아놓은 날이 결국 닥쳐오기 마련이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면 묘한 긴장감이 생긴다.
내일 오후에는 이사 전 청소 상태를 확인하고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새 집을 방문해야 한다.
얼마 전부터 조금씩 이사 준비를 해왔다.
그 과정에서 많은 물건을 버리고, 온라인으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기도 했다.
냉장고 안의 오래된 음식들과 유효기간이 지난 식재료, 내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거나 앞으로도 쓰지 않을 것 같은 물건들을 모두 정리하니 냉장고가 텅 비었다. 깨끗해진 냉장고를 보며, 지난 시간을 정리하는 내 마음도 조금은 비워지는 듯했다.
아내가 쓰던 물건들은 이번 이사와는 별개로, 지난 여름 캐나다 다녀온 이후 대부분 정리했다.
아내 (혹은 내가)가 좋아하던 옷, 핸드백, 신발 중 몇 가지씩만 남기고 나머지는 나눔 하거나 처분했다.
태우고 싶었지만 요즘은 그런 일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보니, 결국 쓰레기 봉투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마음이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이사 준비 중에도 아내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었다.
손지갑 안에서 발견된 오래된 사진들, 바느질과 뜨개질 도구들, 머리핀과 머리띠, 복용하던 건강보조제들…
모두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처분했다. 아내도 이해해 줄 거라 믿는다.
설치업자를 불러서 안마 의자도 분해했고, 이사 후에는 현지 설치업자를 불러서 재조립해야 한다.
거실 벽에 설치했던 자석판도 철거했다. 설치 당시, 콘크리트 벽에 해머드릴로 구멍을 내며 설치했기에 혹시 큰 흠이 남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상태가 괜찮았다. 포장이사 업체에서 재설치를 도와주기로 했지만, 잘 해낼지 조금 걱정이다.
� 마지막 인사들
이제 한국에 돌아와 4년여 살아온 이 동네와도 작별이다.
며칠 전부터 문득문득 “아, 이것도 이번이 마지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근처 재래시장에서 김밥을 사는 일,
단지 내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일,
집에서 세탁기로 빨래를 하고 같은 건물 지하 빨래방에서 건조기를 돌리는 일,
동네 성당에 가서 미사 드리는 일들 모두 이제 추억이 된다.
나는 한 성당만 꾸준히 다니진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갔던 곳은 아무래도 집에서 가까운 자양동 성당이다. 아내가 항암치료를 시작했을 때 매일같이 나가 기도드렸던 성당, 그리고 아내의 유해에 신부님의 기도와 축성을 받았던 성당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 오전에는 이사 전 마지막 미사로 자양동 성당 교중미사에 참석하고 왔다.
아내가 절친과 나눈 카톡에는 이런 문장이 남아 있었다.
“나는 내가 아픈 것보다 더 슬펐던 때가,
네가 나를 위해 음식을 해와도 나를 보지 못하고 남편에게 전해주고 돌아갔을 때,
우리 딸이 나와 통화할 때는 울지 못하고 이모와 통화하면서 울었다는 걸 알았을 때,
그리고 남편이 매일같이 성당에 가서 기도드린다는 걸 알았을 때야.”
아내는 왜 내가 매일 기도하는 것을 슬퍼했을까.
아마도 나에게 기쁨보다 슬픔을 주었다고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부란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는 존재다.
그녀는 몰랐나 보다.
나의 기도는 슬픔이 아니라, 사랑이었음을.
� 떠남, 그리고 다시 시작
이 집의 곳곳에는 여전히 아내의 흔적이 배어 있다.
식탁에 앉으면 아침마다 삶은 달걀 껍질을 까서 내 접시에 놓던 아내의 손이 떠오르고,
창가의 화분을 돌보던 아내의 뒷모습이 보이며,
침대에 누워 자던 모습, 침대에 앉아서 나를 향해 손 흔들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외출할 때 문 앞에서 배웅하던 모습,
외출에서 돌아온 나를 향해 “어서 와요” 하며 웃던 그 표정이 선하다.
요즘은 문을 열며 내가 아내 사진을 향해 “어서 왔어요” 하고 인사하곤 한다.
이사를 하면, 아내의 모습이 스며 있던 이 공간을 떠나야 한다.
그리움이 더욱 깊어지겠지만, 아내의 사랑과 추억은 새 집에도, 내 마음속에도 함께 옮겨갈 것이다.
비운다는 것은 잊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새로운 자리에 다시 놓는 일임을 나는 이제 조금은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