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타운 입주기 #2

혼자 맞이한 새 집, 그리고 새로운 일상

by Geoff Jung

※ 2025년 11월에 쓴 글입니다.


벌써 용인에 있는 S 실버타운으로 이사 온 지 일주일이 넘었다. 시간이 참 빠르다.

포장이사를 하면 크게 손이 갈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살아보니 주인 손이 한 번은 닿아야 하는 자잘한 일들이 끊이지 않는다.


예전에는 아내와 함께 일을 나누었기에 수월했는데, 이제는 모든 것이 내 몫이 되다 보니 아내의 빈자리가 새삼 크게 느껴진다. 그래도 이사 당일 처제가 와서 부엌 정리를 도와주어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 새 집, 새 물건, 새 배움


새로 이사한 집은 17층 건물의 11층에 위치해 있다. 남서향이라 하루 종일 햇살이 잘 들어오고, 창밖으로는 시야가 탁 트여 전망이 좋다.

거실 창을 통해 멀리 성당이 보이는데,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지난 주말에는 직접 걸어서 성당 미사에 다녀왔는데, 약 10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었다.

1761867302806.jpg?type=w773 거실에서 내다본 전망


아버지가 살고 계신 서울의 C 실버타운과 달리, 이곳은 가구나 가전제품이 비치되어 있지 않아 모든 물품을 입주자가 직접 준비해야 한다. 일반 아파트와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이전에 사용하던 물건들을 대부분 그대로 가져왔고, 새로 장만한 것은 거실 블라인드와 소파, 그리고 세탁기 정도다.


소파는 처음엔 중고 제품도 알아보았지만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았고, 하루에도 여러 번 몸이 닿는 물건이기에 결국 새 제품으로 구입했다.


세탁기는 집 앞 중고물품점에서 샀는데, 첫 세탁 후 세탁물에 검은색의 작은 이물질이 여기저기 묻어나 걱정이 되었다. ChatGPT에게 문의하니 “중고 세탁기는 곰팡이나 세제 찌꺼기가 남아 있을 수 있다”며 세탁조 청소 방법을 알려주었다. 현재 세탁조 세제를 넣고 청소 중이다.


판매자가 “이미 내부 청소를 마쳤다”고 했지만, 몇 번 청소 후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교환이나 환불을 요청할 생각이다. 혼자 살다 보니 예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하나씩 배우며 익히는 중이다.


� 식사와 생활의 패턴


짐 정리와 적응으로 일주일이 빠르게 지나갔다. 아직 실버타운을 완전히 파악하진 못했지만, 한 달 30끼의 ‘의무식’ 제도가 있다.


하루 한 끼 정도는 식당에서 먹는데, 한 끼 11,000원으로 33만원이 관리비에 포함되어 있다. 남은 금액은 월말일 전에 단지내의 편의점에서 사용할 수 있어, 말일에는 편의점이 붐빈다고 한다. 장기 여행이나 입원 등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식대는 면제된다니 합리적인 제도라 느껴진다.


아버지께서 계신 C 실버타운과 비교하면, 이곳 식당은 조금 소박하다. C 실버타운 식당이 호텔식 뷔페라면, 여기 식당은 구내식당에 가깝다. 식당 직원 서비스, 음식 종류나 질, 내프킨의 세심함까지도 다르지만, 한 끼 16,000원과 11,000원의 차이를 생각하면 납득이 간다.


나는 매번 감사한 마음으로 식사하고 있다. 영양사가 칼로리를 조절하고 간도 자극적이지 않아서인지, 예민한 내 속이 편안하다.

20251105_083034.jpg?type=w773 아침 식사
1762301365441.jpg?type=w773 점심 식사
1762301343998.jpg?type=w773 저녁 식사

� 시설과 일상의 리듬


이곳의 부대시설은 피트니스 센터, 실내 골프연습장, 사우나장(하루 2회 이용 가능)을 비롯해 다양한 취미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둑·장기실, 마작실, 당구장, 탁구장, 영화관, 노래연습실, 종교실 등 다양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입주자들이 취향에 맞게 여가를 즐길 수 있다. 대부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지만 스크린 골프장, 노래연습실등 몇몇 시설은 별도의 이용 요금이 부과된다.


각 호실마다 지하층에 전용 창고가 마련되어 있어, 자주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보관하기에 편리하다. 또한 방문객을 위한 9개의 게스트룸이 있으며, 1박 요금은 8만 원에서 10만 원 정도다. 딸네 가족이 캐나다에서 방문하면 이 게스트룸을 이용하면 좋을 것 같다.


이곳에는 여러 동호회도 운영되고 있다고 들었지만, 아직 어떤 모임들이 있는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이번 주에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두 번 운동했고, 실내 골프연습장도 둘러보았다. 이용객이 많지 않아 쾌적했다.

백내장 수술 후 회복 중이라 아직 사우나는 미뤄두었지만, 다음주의 마지막 안과 진료를 마치면 이용해볼 생각이다.

aaa.jpg?type=w773 피트니스 센터
20251103_112413.jpg?type=w773 골프 연습장
20251106_181045.jpg?type=w773 지하층 전용 창고

☕ 새로운 관계, 새로운 시선


어딜 가나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지만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도 간혹 보인다.

아직은 아는 사람이 없어 혼자 식사하지만, 나는 혼자 식사하는 것을 어색해하지 않는다.

한 번은 한 어르신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짧은 대화를 나눴다. 그 짧은 인사 속에서도 묘한 따뜻함이 느껴졌다.


몇몇 지인들은 “노인들만 있는 곳에서 생활하면 우울하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나는 이제 우리 세대가 이미 ‘노인’ 반열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교류보다도, 오히려 조용하고 편안한 일상 그 자체가 내가 찾는 평화의 형태다.


� 서울 나들이와 이동의 리듬


며칠에 한 번씩 서울에 다녀오는데, 왕복만 해도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집 앞 동백역에서 용인경전철을 타고 기흥역까지 네 정거장 — 무인 1량 열차라 6분마다 운행돼 기다림이 짧다.

그 후 수인분당선으로 갈아타 강남구청역에서 7호선으로 환승하면 건대입구역, 아버지의 집이 나오는데 거의 두 시간이 소요된다.


서울 지하철에서는 주로 경로석 자리에 여유가 있고 나도 흰머리가 많아서 경로석에 자리가 있으면 주저없이 앉는다. (물론 나이 많으신 어르신이 타시면 일어나지만.) 수인분당선에는 노년층이 유난히 많아 경로석은 거의 빈자리가 없다. 서서 가도 큰 불편은 없지만, 영상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여유롭게 가려면 앉는 것이 좋다.


어제는 광화문에 다녀왔는데, 가는 길에만 세 번 환승에 두 시간이 걸렸다. 길지만, CNN 라디오와 음악을 듣거나 유튜브 영상을 보며 지루하지 않게 보냈다. 이동 시간이 늘다 보니 이어폰을 자주 쓰게 되어, 요즘은 더 좋은 제품으로 바꿀까 고민 중이다.


� 마무리하며 – 새로운 평화의 자리에서


이사 후 며칠은 낯선 공간 탓에 잠을 설쳤지만, 이제는 숙면을 취한다. 며칠 전에는 이사 후 처음으로 꿈에서 아내를 보았다. 떠난 직후에는 거의 매일밤 꿈에 나타나던 그녀가 요즘은 가끔만 찾아온다. 이제는 내가 혼자서도 잘 지내는 모습을 지켜보며 안심한걸까.


밤마다 기도할 때면 “오늘도 꿈에서 만나자”고 속삭이지만, 아내가 하늘나라에서 평안히 영원한 안식을 누리며 나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이사한 이곳에서의 새로운 일상은, 내 삶을 한 단계 더 단정하고 균형 있게 가꾸어가는 또 하나의 시작이다.

조용한 이곳에서, 남은 시간들을 새롭게 채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