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남긴 두 벌의 코트

by Geoff Jung

지난번 글에서도 말한 적이 있지만, 아내는 매우 검소한 사람이었다. 세상 대부분의 엄마와 아내가 그러하듯, 아내 역시 평생 자신보다 자녀와 남편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정해진 수입 속에서도 늘 가족이 먼저였고, 그러다 보니 정작 자신을 위해 쓸 돈은 늘 부족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모두 우리 품을 떠나고, 아내와 나 둘만 남았을 때도 그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함께 쇼핑을 가면 아내는 늘 내 물건부터 살펴보느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보다 못한 내가, 내 것을 하나 살 때 당신 것도 하나 사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사지 않겠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 아내는 마지못해 새 옷이나 새 신발을 함께 샀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물건이 어느새 딸에게 가 있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작년 겨울 어느 날,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봐 둔 겨울 패딩이 있는데 사달라고. 내가 기억하기로는, 예전에는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물론이지. 당장 갑시다.”


백화점에 도착해 보니, 아내가 봐 둔 연한 연두색 코트가 딱 하나 남아 있었다. 미디엄 사이즈였다. 내가 보기에는 조금 커 보였지만, 아내는 그냥 사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혹시 서울 다른 매장에 스몰 사이즈가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고, 여의도 현대몰에 남아 있다는 답을 들었다. 우리는 대기를 걸어 두고, 바로 여의도로 향했다.


여의도 현대몰은 워낙 커서 매장을 찾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예약해 둔 코트를 구입할 수 있었다. 스몰 사이즈도 넉넉했으니, 만약 미디엄을 그냥 샀다면 몸에 맞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는 무척 만족스러워 보였다. 우리는 기분 좋게 코트를 사고, 몰 안에서 저녁 식사까지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평범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따뜻한 하루였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난 어느 평일 저녁, 우리는 집 근처 쇼핑몰을 함께 걷고 있었다. 그때 내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아내에게 말했다.
“저기 의자에서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요.”

화장실에서 나와 의자를 보았을 때, 아내는 없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잠시 당황해 서 있을 때,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근처 옷가게에 있으니 오라고 했다.


멀지 않은 여성 의류 매장에서 아내를 발견했다. 나를 보자마자 아내가 말했다.
“이 코트 사줘요.”

얼마 전에 코트를 샀는데, 또?
그 생각이 스쳤지만, 나는 주저 없이 말했다.
“마음에 들면 사요.”


평소와는 조금 다른 아내의 모습에 순간 낯설기도 했지만, 아무 말 없이 카드를 꺼냈다.
“남편분이 너무 멋있으시네요. 주저 없이 사주시고요. 아내분을 많이 사랑하시나 봐요.”
직원의 말은 조금 낯간지러웠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코트는 소매 길이 수선이 필요했고, 매장에서 그것까지 맡아 주었다.


지금도 문득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다.
아내는 마음만 먹으면 스스로 사도 되었을 텐데, 왜 굳이 나에게 사달라고 했을까.

어쩌면 단순히 물건이 필요해서라기보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사주는 그 마음을 받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물욕이 거의 없던 아내였지만, 그래도 살면서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마음 한쪽이 아려왔다. 그래서 나는, 아내가 건강을 회복해 남은 삶만큼은 자신을 위해 살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아내가 떠난 뒤, 옷장을 정리하다가 그 두 벌의 코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차마 처분할 수 없었다. 캐나다로 돌아가는 딸에게 입겠냐고 물었더니, 그중 하나는 입겠다고 했다. 우리 딸은 취향이 분명한 사람이다. 한 벌은 딸이 가져갔고, 다른 한 벌은 아직도 옷장에 걸려 있다.


가끔 옷장을 열면, 그 코트가 조용히 나를 맞이한다. 손으로 천을 한 번 쓸어보면, 마치 그때의 시간과 공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만 같다. 매장에서 거울을 보며 미소 짓던 아내의 얼굴이 떠오른다.


언젠가 내가 아내를 다시 만나러 떠나는 날, 그 코트를 함께 가지고 가려고 한다.
그때는,“당신, 이 코트 참 잘 어울렸어.”
이 말을 꼭 다시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