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하던 날의 기억
얼마 전 TV에서 ‘미스트롯4’라는 트로트 경연 프로를 시청하다가 내 마음이 흔들리는 장면을 접했다.
한 참가자가 팀 경연을 앞두고 항암 치료를 받게 되었고,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빠져 결국 팀원들과 함께 미용실에 가서 삭발을 하는 장면이었다. 그 자리에서 그 참가자는 팀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함께 와줘서 고마워. 나 혼자 왔으면 울었을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내가 삭발하던 날이 떠올라 마음이 울컥했다.
2년여의 투병 기간 동안 아내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비교적 정상적으로 살아냈다. 물론 항암 치료를 받고 돌아온 뒤 며칠 동안은 힘들어했지만, 이내 다시 컨디션을 회복하곤 했다.
처음 항암 치료를 결정하고 상담 간호사와 치료 일정을 상의하던 날, 항암 치료의 부작용에 대한 설명이 A4 용지 세 장에 빼곡히 적혀 있었다. 모든 부작용이 다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환자마다 다르다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다행히 아내는 가장 흔한 부작용인 구토도 한 번 하지 않았다.
아내는 2년여 동안 총 네 차례의 항암 치료를 받았다. 첫 항암 치료는 2023년 2월 하순부터 시작되었다.
첫 항암 주사를 맞던 날, 긴장과 두려움, 그리고 희망이 뒤섞인 묘한 감정을 안고 주사실로 들어섰다. 맞은편 침대에 있던 중년 남성은 계속되는 구토로 몹시 힘들어 보였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리도 자연스럽게 몸을 움츠리게 되었다.
이때 받은 치료는 CHOP 항암 요법으로, 세 가지 약제를 약 두 시간에 걸쳐 투여하는데 중간중간 수액을 맞아야 해서 전체 주사 시간은 약 여섯 시간이 걸렸다.
항암 주사를 맞는 동안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나중에 아내는 절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첫 항암 때 남편이 손을 꼭 잡고 계속 나만 보고 있어 줘서 좋았어. 그래서 아픈 것도 괜찮았어.”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한동안은 머리가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약 열흘쯤 지나자 눈에 띄게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고, 결국 2주가 되었을 때 삭발을 하기로 했다.
병원 지하 미용실에 갈지,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우리가 늘 지나던 길에 있는, 늘 손님이 뜸해 보이던 작은 미용실이 떠올랐다. 미용실 안에는 파마를 하고 있던 손님 한 분이 있었다. 아내는 항암 치료로 머리가 많이 빠져 삭발을 하려고 한다며 옆 의자에 앉았다.
그 손님은 우리보다 나이가 많은 할머니였는데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나도 15년 전에 항암 치료로 머리가 다 빠졌었어요. 머리는 다시 자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의 말이라 그런지, 그 위로는 유난히 따뜻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삭발을 하면 머리가 반들반들해지는 줄 알았지만, 그것은 면도까지 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아내는 항암 치료로 두피가 약해져 있어 면도는 할 수 없었고, 짧은 스포츠형 정도로 머리를 잘랐다.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던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두상이 예뻐서 그런가? 생각한 것만큼 나쁘지 않네.”
농담을 할 만큼 마음이 괜찮아 보여 다행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아내는 마치 예쁜 여전사 같았다.
‘당신은 어떤 모습이어도 나에게는 예뻐.’
첫 번째 항암 치료 (6회 항암 주사 치료)를 마친 뒤 PET 검사에서 관해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부위에서 암이 다시 발견되었다.
큰 실망을 한 아내는 더 이상 항암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나는 아내를 설득해 치료를 이어가기로 했다.
두 번째 항암 치료는 2023년 8월 말, GDP 항암 요법으로 진행되었다. 이번에는 머리가 많이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고, 실제로 머리를 비교적 지킨 채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2024년 상반기에는 전신 항암이 아닌 방사선 치료를 총 60회 받았다. 그럼에도 암세포는 사멸되지 않았고, 결국 2024년 9월부터 세 번째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외래 치료가 아닌 5박 6일 일정의 입원 항암 치료였다.
‘얼마나 힘들면 입원 치료를 해야 할까...’
그 생각에 걱정이 컸지만, 치료를 받아보니 꼭 힘들어서라기보다 매일 병원을 오가는 환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이 치료도 큰 부작용 없이 견뎌냈다.
세 번째 항암 치료 기간 동안 나는 매일 밤 집에 돌아가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 다시 병원으로 갔다. 내가 코를 심하게 고는 편이라 병실에서 함께 자면 아내도,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도 불편해질 수 있다며 아내가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위한 아내의 세심한 배려였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번에도 첫 항암 치료 때와 마찬가지로 약 2주가 지나자 머리가 많이 빠지기 시작했다. 예전에 갔던 미용실에 다시 가자고 했더니, 이번에는 아내가 직접 머리를 잘라보겠다고 했다. 평소 아내가 내 머리를 다듬어 주던 터라 집에는 이미 미용 도구가 있었다.
1년 반 만에 다시 삭발을 해야 했던 아내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예순을 넘긴 나이라 해도, 머리를 삭발하는 여인의 마음을 나는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한 시간쯤 지나 욕실에서 두건을 쓰고 나온 아내의 얼굴은 의외로 평온해 보였다.
‘이 사람의 멘탈은 어디까지일까...’
정말 내유외강 한 사람이었다.
아내는 내 앞에서 두건을 벗은 적이 없었다. 가끔 잠든 사이 침실을 들여다보면 두건을 벗은 머리가 보이곤 했지만, 나는 그것이 흉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내가 아내를 사랑하는 이유는 외모가 아니라, 그 사람의 착하고 따뜻한 마음, 그리고 나를 가장 아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떤 모습이든, 그녀는 나에게 늘 사랑스러운 아내였다.
첫 번째로 삭발했을 때, 나는 아내에게 가발을 써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럽게 권했다. 평소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과감한 스타일을 시도해 보라고도 했다. 하지만 아내는 내키지 않는 듯했고, 대신 조신한 모자를 쓰고 다녔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발 착용에 대해 훨씬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내는 절친과 함께 남대문시장에 가서 가발을 두 개나 골라 왔다. 그래도 선택한 것은 화려한 스타일이 아니라, 차분하지만 서로 다른 분위기의 가발 두 개였다.
마침 그 무렵 우리는 삼보사찰 투어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찍은 사진들을 다시 보면 가발이 제법 잘 어울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예정된 여섯 차례의 세 번째 항암 치료는 세 번만 시행한 뒤 중단되었다. 주치의의 설명에 따르면, 이 항암 치료는 이전 치료들에 비해 부작용의 위험이 매우 컸고, 기대만큼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세 번째 항암 치료가 아내의 투병 과정에서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것 같다. 표준 치료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고, 이제 선택지는 표적 치료, 면역 치료, 신약 투여, 조혈모세포 이식과 같은 비표준 치료뿐이었다.
2025년이 되면서 표적 치료와 면역 치료를 시도하려 했지만, 우리가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운 의학적 이유로 모두 불발되었다. 결국 마지막 방법인 조혈모세포 이식을 결정한 것이 2월 초였다.
그 사이 현상 유지를 위한 소극적인 항암 치료를 받았지만 큰 효과는 없었던 것 같다. 전문적인 의학 지식은 없지만, 내 판단으로는 세 번째 항암 치료를 마친 2024년 10월 말부터 아내의 상태는 악화되기 시작한 것 같다. 당시 PET SCAN 검사에서는 내부 장기로의 전이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후 급격한 전이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아내의 투병은 병과의 싸움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몸이 약해지는 과정 속에서도 아내는 끝까지 무너지지 않으려 애썼다. 두 번의 삭발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겉모습이 아니라 삶을 지키고 싶어 했기 때문일 것이다.
TV 속 참가자의 “혼자였으면 울었을 것”이라는 말이 마음에 남은 이유도, 아내가 그 시간을 혼자가 아니라 나와 함께 견뎌냈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는 늘 강해 보였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두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 앞에서는 끝까지 평온하려 했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곁에 있어 주는 것뿐이었지만, 그 시간이 우리 부부가 끝까지 함께 했다는 증거라고 믿고 싶다. 아내는 머리카락을 잃었지만,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사랑은 끝까지 지켜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내를 평생 사랑할 수 있었던 행운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