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아내

by Geoff Jung

※ 2025년 7월에 쓴 글입니다.


1년 반 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 왔다.

26층 건물이지만 우리가 사는 곳은 2층. 1층에는 상가가 있어서 아래층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층간소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 또 하나 좋은 점은 거실 창 밖으로 화단이 보인다는 것이다.

비록 2층이지만 마치 1층처럼 자연이 가까이 느껴지는 집이다.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는 보안이 조금 걱정되었지만, 이중창이 설치되어 있어 큰 문제는 없겠다는 생각에 계약을 결정했다. 사실, 우리 집에 도둑맞을 만한 귀한 것도 별로 없다.


지난봄에는 아내와 함께 양재동 꽃시장에 들러 여러 색깔의 튤립 스무 송이를 사서 거실 밖 화단에 심었다.

꽃이 피는 동안 그 화려한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작은 호사를 누렸다.

무엇보다 내가 직접 꽃을 심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돌이켜보면, 평생 처음으로 꽃을 직접 사서 심어본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작업은 아내의 지시와 감독하에 이루어졌고 나는 단지 그녀의 작업 아바타였다.

20250306_150017.jpg?type=w773 양재동 꽃시장에서 꽃을 고르는 아내
20250411_122316.jpg?type=w773 거실 밖 화단에 심은 튤립

그리고 오늘, 일요일 아침. 새벽 배드민턴을 다녀와 아침식사를 하던 중, 우연히 거실 창 밖을 내다보다가 작은 꽃 하나를 발견했다.

사랑초였다. 아내가 좋아하던 꽃 중 하나이다.

‘저 꽃이 왜 저기서 피었지?’

'작년에도 저기에 있었던가?'

아니면, 하늘나라에 있는 아내가 보내준 거라고 생각하면 너무 나간 거겠지?

20250720_104127.jpg?type=w773
20250720_102127.jpg?type=w773 사랑초

이 이야기를 처형에게 하니, 아내가 올해 초봄에 집 안에서 키우던 사랑초가 얼마 남지 않아 시들해졌는데, 없애기보다는 밖의 화단에 옮겨 심었다고 했다.

그런데 왜 오늘에서야 내 눈에 띄었을까?

어쨌든 분명한 건, 그 사랑초는 아내의 손길이 닿은 꽃이라는 것이다.


아내는 꽃을 좋아했다.

넓지 않은 집에서 아내의 모습이 안 보일 때면, 대부분 거실 창 앞 바닥에 앉아서 화분을 손질하고 있었다.

(식탁에 가리면 잘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그 사랑스러운 뒷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아내가 가장 좋아하던 꽃은 도라지꽃과 안개꽃이었다.

젊은 시절의 나는 꽃을 선물할 줄 몰랐다.

아내에게 꽃을 자주 선물하게 된 것은 한국에 돌아오고나서 부터니까, 고작 한두 해 전의 일이다.

지하철 역에 꽃집이 있어서 귀가길에 자주 들러 꽃을 샀다.

하지만 꽃집에 도라지꽃은 없었고, 안개꽃만 덩그러니 선물하기가 망설여져 주로 장미를 사곤 했다.

bluebell-1429817_1280.jpg?type=w773 도라지꽃

어느 날, 아내의 휴대폰에서 단체채팅방 내용을 보게 되었는데 (우리 부부는 서로의 전화기를 자유롭게 보곤 했다), 아내가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장미가 별로인데, 남편은 꼭 장미만 사와.

그래도 그 마음이 고마워서 이 사실은 무덤까지 가지고 갈 거야.”


그 글을 보고 나는 더 이상 장미를 사지 못했다.

요즘은 아내를 보내준 곳에 갈 때면 안개꽃을 들고 간다.

오늘도, 꽃을 좋아하던 아내가 그립다.

mist-flower-2170794_1280.jpg?type=w773 안개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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