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데이의 하얀 꽃

by Geoff Jung

벌써 용인 실버타운으로 이사 온 지도 다섯 달이 되어 간다.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은 한 번씩 다녀갔다. 실버타운이 궁금하기도 하고, 또 내가 어떻게 혼자 살아가고 있는지 걱정이 되어서였을 것이다. 방문한 사람들은 집도 둘러보고 식당에서 함께 식사도 했다. 대부분은 생각했던 것보다 환경이 좋아서 걱정을 덜었다고 말한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집을 두 번 방문한 사람은 아직 없다. 한 번 와보았지만 너무 멀어서 다시 오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서울에서 차를 가지고 와도 빨라야 한 시간이 걸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거의 두 시간이 걸리니까.


어제 늦은 오후에는 군산에 사는 처형이 처음으로 우리 집에 다녀가셨다. 내가 이사하던 날에도 와서 도와주겠다고 하셨지만, 나는 강하게 만류했다. 처형은 아내의 투병 기간 동안 아내와 내가 가장 의지했고, 또 가장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이다.


아내가 떠난 뒤 처형은 나를 보면 아내 생각이 나는지 자꾸 눈물이 난다고 하셨다. 그래서 한동안 나를 만나는 것이 힘들다고도 하셨다. 이제는 감정이 많이 가라앉았겠지만, 어제도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눈물을 참는 듯 보였다. 사실 아내의 지인들 중에도 나를 보면 아내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다.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서인지 나와 아내의 분위기가 어딘가 닮아 있는 모양이다.


처형은 아내가 좋아할 하얀 꽃을 사 오셨다. 그런데 그 꽃을 사게 된 과정을 듣고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처형은 우리 실버타운 앞 상가 건물에 주차를 하고 꽃집을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건물에는 꽃집이 없다. 결국 눈에 띄는 의류 상점에 들어가 꽃집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았다. 마침 영업을 마치고 문을 닫으려던 그 상점의 여주인은 꽃집이 큰 도로 건너편 상가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곳까지 차를 몰고 가는 것이 번거로우니 차는 그냥 주차장에 두고 걸어서 다녀오라며, 아무것도 사지 않았는데도 한 시간 무료 주차 등록까지 해주었다고 한다.


그 친절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 일이었는데, 감동은 그다음에 있었다.

처형이 걸어서 5분 거리의 꽃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문이 닫혀 있었다. 그때가 오후 7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다. 처형이 난감해하고 있는데 차 한 대가 멈추더니 창문이 내려갔다. 그 차 안에는 조금 전 의류 상점의 여주인이 앉아 있었다.


“손님이 가신 뒤에 생각해 보니 이 꽃집이 닫을 시간인 것 같더라고요. 마침 저도 이 근처에 일이 있어서 왔어요. 저쪽에 다른 꽃집이 하나 더 있는데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타세요.”

평소 웬만하면 타인의 도움 없이 일을 처리하는 처형도 감동하여 “염치 불고하고 도움을 받겠습니다” 하고 차에 올랐다고 한다.


몇 분 후 도착한 다른 꽃집은 다행히 아직 영업 중이었다. 의류 상점 여주인은 “제가 다시 주차장까지 태워드릴 테니 걱정 말고 꽃을 사 오세요”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처형은 그 친절까지는 받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친절을 베풀어 주시는 건가요?”

그 여주인은 잠시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손님이 꼭 꽃을 사야 할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여서요. 그래서 돕고 싶었습니다.”

처형은 감사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고, 그 여주인은 떠났다.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인 것 같다.


꽃집에 들어가 보니 강렬한 색의 화려한 꽃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고 한다. 처형이 차분한 색의 꽃을 찾는다고 하자 꽃집 주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늘이 화이트데이라 남자 손님들이 화려한 꽃다발을 많이 찾으셔서 앞쪽에 전시해 두었어요. 차분한 색의 꽃들은 이쪽에 있습니다.”

처형은 아내가 평소 좋아하던 하얀 꽃을 골라 사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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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도 그 꽃집을 안다. 최근 몇 주 동안 그 꽃집에서 세 번이나 꽃을 샀기 때문이다. 지난달 발렌타인데이, 아내와 내가 처음 만난 날인 2월 19일, 그리고 아내의 생일인 3월 1일에 아내에게 꽃을 선물했다. 나는 아내가 좋아하는 보라색 꽃을 두세 송이씩 샀다.


어느 날 꽃집 여주인이 나를 알아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자주 꽃을 사 가는 남자 손님은 처음이에요. 남자분들은 가끔 큰 꽃다발을 사 가시는데 사실 여자분들은 그런 것보다 몇 송이라도 자주 꽃을 받는 걸 더 좋아하세요. 그래서 제가 남자 손님들을 교육하기도 해요. 이 꽃을 받는 사모님이 어떤 분인지 한번 뵙고 싶네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미소만 지었다.


처형이 집으로 돌아간 뒤 나는 아내와 나의 첫 번째 화이트데이를 떠올렸다. 무려 43년 전의 일이다.

그때 아내는 이태원에서 주한미군 부인에게 원어민 영어 회화를 배우고 있었다. 수업이 끝난 뒤 우리는 이태원에서 만났고, 걸어서 반포대교를 건넜다.


아직 추위가 남아 있던 3월 밤, 한강 다리를 걸어 건너는 일은 낭만적이라기보다 조금 추운 일이었다. 그래도 서로 잡은 손의 따뜻한 온기가 그 추위를 잊게 해 주었다.

다리를 건너 반포의 어느 찻집에 들어가 얼어 있던 손을 녹이며 나는 아내에게 초콜릿을 건넸다. 아마 그것이 내가 아내에게 준 첫번째 선물이었을 것이다.


요즘 나는 아내와 함께했던 42년의 시간을 천천히 돌아보게 된다. 그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했는지 이제야 더 또렷하게 보인다.

어제 처형이 먼 길을 와서 놓고 간 하얀 꽃, 그리고 요즘 내가 가끔 사다 놓는 몇 송이의 꽃들. 그 모든 것들이 결국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함께 있을 때는 미처 다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


인간은 언제나 지나고 나서야 그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소중함을 늦게라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을.

오늘도 아내 사진 앞에는 꽃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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